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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線美感 .3부] (9) 순천만

눌재 2009. 11. 2. 04:03

[曲線美感 .3부] (9) 순천만
(제자: 一思 석용진) 갈대밭 열리는 그곳, 굽이진 수로
그림이다, 더없이 맑고 푸른 저 곡선
어떤 미인이 저렇게 마음 지워 두고 누웠으랴
순천만의 가을은 오달지다. 허술한 구석이라곤 없다. 그다지 멀지도 않은 여수, 고흥반도와 보성땅을 업고서 둥그스럼 태어난 기상이 벌써 다부지게도 생겼다. 여기다 하늘의 순리대로(順天) 살라는 이름 값이라도 하듯 만(灣)의 형상은 한없이 순리적이고 부드럽다. 깎아지른 바위절벽으로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험살궂은 바다 표정은 전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적당하면서 그리고 당연하게 연안의 질서를 지키며 안온하게 펼쳐진 포근함이 그저 감동적이다.


그림이다. 수채화일까 아님 파스텔화? 뭍과 갈대밭. 그 곁에는 일곱 번 색깔이 변한다는 염생식물 칠면초와 질퍽한 갯벌. 그런 다음 모래밭을 지나면 마침내 바다. 이런 수순으로 천혜의 질서가 잡혀 있는 순천만. 여기에 흰 구름 실은 더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보태져 조화롭다. 그래. 세상 어디 이만한 그림 있으랴. 뭍에서 바다 쪽을 들여다볼수록 갈대밭은 갈대밭대로, 칠면초는 그들끼리, 갯벌은 또 갯벌끼리, 모래밭은 그들대로. 그러다 한꺼번에 혹은 칠면초와 갯벌이, 이번에는 갈대밭과 모래밭이, 한참후에는 갯벌과 모래밭이 함께 노래를 한다. 자잘자잘. 서로를 다독이며, 보채며, 의식하며 시를 읊는다. 어떤 시일까. 호라티우스는 "그림은 말 없는 시다. 그리고 시는 말하는 재능을 가진 그림"이라고 했다는데 순천만을 두고 한 말은 아닐까.


그뿐이랴. 연안의 질서는 계속된다. 농게, 철게, 짱뚱어가 개펄의 넓이를 재며 갯개미취, 비쑥, 갯질경이, 나문재, 해룡나물, 퉁퉁마디를 이부자리 삼아 기고 뛴다. 그러다 진객인 흑두루미가 찾아들면 순천만은 또 한 번 윤회의 바퀴에 온 전신을 맡기며 화폭에서 붓을 놓는다. 붓을 놓는다고 그림이 어디 완성일까. 아니다. 그것은 미완의 완성. 이것이 순천만이다. 순천만의 맛이다. 블라맹크는 "경이로운 그림은 맛있는 요리. 맛 볼 수는 있지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했다.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순천만의 맛. 테너 박종열이 부른 '순천만의 꿈'에 그 맛들이 은근슬쩍 배어 있다.


장윤호가 작시하고 테너 조성호가 작곡한 노래. 그 1절. "순천만 포구에 가면 마음문을 활짝 열어서 갈대숲 소곤거리는 이야기를 듣지요/ 귀대고 가만 들으면 숲 사이로 바람 지나고 사람들 내려놓는 한 숨을 거르네/ 밤마다 가슴엔 그리움이 가득하고 우리가 버린 생각에 빈자리를 채우며 갈대밭 바람소리 사각사각 그려요". 노랫말이 바닷바람에 실려 잔잔히 만으로 퍼질때. 꼬막, 피조개, 바지락도 노래 듣고 움틀거리며 갯벌을 헤집는다. 물결은 그 소리에 또다시 그림을 그리듯 화답하며 시를 읊는다.


이윽고 적금도, 둔병도, 남도, 조발도, 백일도, 소백일도, 원주도, 저도, 해하도, 진지도, 장도, 지주도. 해도, 대여자도, 소여자도, 대운둔도, 소운둔도. 정감 가는 이름들이 즐비하다. 좀 멀고 가까운 작고 큰 섬들. 그들이 하나씩 둘씩 어느새 노래에 동참한다. 노래는 일몰보다야 낙조 때가 제격이다. 낙조(落照). 이태극이 절묘하게 표현한 그런 낙조. 그의 '낙조'라는 시다.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둥 원구(圓球)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 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큰 바퀴 피로 물들며 반 남아 잠기었다./ 먼 뒷섬들이 다시 환히 얼리더니,/ 아차차, 채운(彩雲)만 남고 정녕 없어졌구나.// 구름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艦)을 따라 웃는고."


외로운 섬 혼자 부르기도 하고 섬들끼리 합창도 한다. "순천만 포구에 가면…" 그렇다. 가면 무슨 좋은 일이 있을랑가? 그 기대. 그게 뭘까? 노랫말처럼 우리들 버린 생각에 빈자리를 채우는 갈대밭 소리겠지. 갈대밭. 이미 히끗히끗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며 허튼 미련을 불어 버리는 갈대. 순천만으로 향한 갈대밭이 열리는 그 곳에는 아름다운 S라인 수로가 빼어난 곡선미를 자랑한다. 어떤 미인이 저렇게 마음 비워 두고 누웠으랴. 저 곡선. 이 시월의 마지막 주말을 풍요롭게 적시며 흥건히 흐르는 저 물줄기와 함께 누운 미인. 그 곁에는 아무도 없다. 시월처럼 아무도 없다.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은 걸어가면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문태준의 '시월에' 전문).


당연하지. 오늘은 다들 집에 있을 리 없지. 순천만에 있으니까. 야트막한 오름길. 계단이 잘 닦인 오름길. 30여분이면 이르는 용산전망대. 그곳서 바라본 순천만은 진실로 벅차다. 감격. 순전히 자연에 대한 감흥이다. 만리장성을 여기에 견줄 수 있으랴. 피라미드인들 이를 감당하랴. 미켈란젤로인들 이에 가당치 않으리. 그런 순천만은 물질적 역량으로 자연에 대항하고 정복하려는 아무런 낌새도 없다. 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에의 종속을 추구하고, 복종하며 일치하는 것이 이미 버릇일테지.


그 굽이진 곡선 물길을 감싸 안는 순천만은 오늘도 늘 그렇듯이 눈 깜짝 할 사이에 가버리고 마는 세속의 온갖 못된 과제나 공적들을 턱없이 괴거나 하는 일 없이 무심히 스스로를 자연에 던지고 있다. 저 붉은 낙조와 함께. 저 어질게도 굽이진 곡선의 물길과 함께.


사진=순천시청 제공

뭍과 갈대밭/그 곁에는 일곱 번 색깔이 변한다는 염생식물 칠면조와 질퍽한 갯벌/그런 다음 모래밭을 지나면 마침내 바다/이런 수순으로 천혜의 질서가 잡혀 있는 순천만/여기에 흰 구름 실은 더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보태져 조화롭다/그래, 세상 어디 이만한 그림 있으랴

협찬 : 대구예술대학교



/글=김채한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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