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구절초 박기섭 | ||||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 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지 못해 눈먼 하 세월에 절간 하나 지어놓고 구절초 구절초 같은 차 한 잔을 올립니다 삼오사삼, 이건 시조의 종장 처리법입니다. 시조를 읽으면 항상 마지막 행에 눈길이 갑니다. 나도 모르게 교과서적인 시조 읽기에 익숙해 있다는 뜻입니다. 시조란 무엇일까라는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시와 시조의 간격이란 시와 수필의 간격처럼 장르 간의 격차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 시조에서 시라면 어떻게 구절초의 정서를 보였을까요. 물론 정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와 시조는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형식은 분명 달라야 할 겁니다. 아니라면 시조나 시 둘 중 하나는 시대에 의해 도태되어야겠지요. 시와 시조의 차이를 선명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시는 시조의 후기형입니다. 즉 시조로 도달하지 못했던 세계관의 표출입니다. 형식이란 세계관의 차이를 잉태합니다. 물론 시조에도 형식의 일탈을 부추긴 사설시조란 하위 갈래가 있지만 그 역시 기본적으로 시조의 형식미라는 미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형식미란 이처럼 많은 간격을 만듭니다. 자수에 갇힌 시조의 세계관이란 분명 시의 세계관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형식미란 무엇일까요. 형식미란 외형적인 틀을 뛰어넘어 내용까지 섬세하게 간섭합니다. 시조의 형식미를 정의하는 것이 시와 시조의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09년 11월 09일 - |
'◀문학 및 독서▶ > 명문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회 每日 한글백일장 당선작] 산문 고등부 장원 '엄마의 강' (0) | 2009.11.20 |
---|---|
[22회 每日 한글백일장 당선작] 대상-남복이 作 '가을걷이' (0) | 2009.11.20 |
1. [구활의 고향의 맛]콩잎 김치 [칼럼][현재창] 2009-11-05 (0) | 2009.11.08 |
해무꼬 (구활의 고향의 맛) (0) | 2009.11.08 |
[매일춘추] 신문 예찬 (0) | 2009.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