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죽이 이렇게 맛있다니!' 한 지인이 병원에서 수술 나흘째 되던 날 아침을 먹으며 감격에 겨워하며 하던 말입니다.
그때 그에게 한 그릇 죽은 그냥 텅 빈 속을 채워주는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병에서 놓여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삶을 이어갈 존재의 확인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에 나이와 사회적인 지위도 잠시 망각한 채, 친구들에게 전화로 한 그릇 죽의 감격을 이야기 한 것이죠.
엊그제 여든 다섯 번째 생일상을 받으신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내가 받은 밥상이 너무 많구나.' 그 때 아버지의 밥상은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사회인으로 살아오면서 인간적으로의 애환으로 점철된 생의 뒤돌아봄이 아닐까요.
예전에 사람들이 만난 첫 인사로 '밥은 먹었습니까?' 하는 말이 단순히 과거 어려웠던 시절의 가장 절실한 필요불가결의 행위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제의 시간이 불안정했다면 오늘은 새로운 희망으로 시작하자는 서로의 격려일 수도 있고, 아끼고 위하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반가움과 배려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가장 구체적인 삶의 행위임과 동시에 가장 사소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아름다운 밥상에 대해서 시인이자 소설가인 원재훈의 에세이는 그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의 특별한 경험, 즉 백철 선생의 '문학개론'을 주신 큰 아버지가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면서 짬뽕을 사준 것이 부와 가난의 모호한 구분법이 되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 또는 첫 원고료로 친구들이랑 혜화동 포장마차의 떡볶이를 '도리'했던 일이라든가,추운 겨울날 선배와 영등포 사창가에서 늙은 창녀가 허름한 성욕보다 한 그릇 뜨거운 기계국수를 선택하는 모습 등을 통해 삶의 애잔함을 돌이켜봅니다.
또 저자의 추억담 속에는 잘 알려진 문인들과 먹은 밥상에 대한 일화도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광주에서 먹은 갈치정식은 생선 갈치의 속성처럼 '가둘 수는 있으나 길들여지지 않는다' 라는 화두를 이끌어내며 광주 항쟁의 역사를 짚어보기도 하지요.
안동에 살던 동화작가 고 권정생 선생이 차려주던 쌀밥에 간장 한 종지가 놓인 밥상은 두고두고 감동합니다. '인간은 저마다의 그릇이 있다고 하지만, 크기보다 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하다. 작은 그릇에 이슬이 담긴 것과, 큰 그릇에 오물이 담겨 있다면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가'라는 성찰을 이끌어내기도 하지요.
'먹는다는 행위는 가장 세속적이면서 가장 고결한 영혼의 행위이다.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수도승이 되기도 하고, 돼지가 되기도 한다. 나는 권정생 선생과의 점심식사를 통해서 그 맛을 보았다. 잊을 수 없다.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과의 만남, 그리고 그 식사 시간은 내 인생에 있었던 행운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하는 저자는 맑은 영혼과 고귀한 작가정신을 추구할 것을 다짐합니다.
밥은 추상이 아닌,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며 정서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행위보다도 절박하고도 간절합니다. 함부로 밥알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은 이미 그 밥의 가치와 삶의 절실함을 알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강문숙<시인·예술가곡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