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성산산성
-
연개소문이 647년 당태종의 고구려 침략에 맞서 직접 농성전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성산산성(城山山城)=석성(石城)을 찾았다. (647년 水軍을 이끌고 온 당의 牛進達군이 요동반도 남쪽 해안에 상륙한 다음에 이곳에 이르러 100번의 전투가 이루어졌다. )
성산산성은 중국 요녕성 대련 장하시 성산향(城山鄕) 사하촌(沙河村) 만덕둔(萬德屯) 북쪽의 성아산(城兒山) 에 있으며 산성 둘레는 2,898m이다.
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산성 가운데 가장 잘 남아있는 산성으로서,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볼 수 있는 문터, 치성, 장대, 천단, 봉화대, 깃대 봉, 못, 병영 터, 암문등 대부분 갖추고 있다.
한편 이 성은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인 연개수영이 지키던 곳이라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데 정상의 능선에 있는 요망대와 관계가 깊다.
산성의 완벽한 모습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그도 잠시 거의 많은 부분이 새로이 쌍은 성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남아있는 기존의 고구려 성 위에 다시 완벽하지 않으나마 축성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요망대(천단) 이 석조조형물의 원형은 알 수 없고 용도도 분명치 않다. 건물의 위치, 남아있는 당시의 석축 등을 고려하면 제사를 올리는 천단일 가능성도 있다.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인 연개수영이 머물면서 전쟁을 지휘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천단 건물 안으로 멀리 보이는 건물이 점장대 이다. 최근에 다시 중국식으로 쌓은 것이다.
아래 쌓은 화강암 단은 고구려 당시의 것이다. 화강암을 곱고 둥글게 다듬어 굽도리양식을 만들면서 퇴 물림 양식으로 쌓았다. 백암성, 국내성, 환도산성 등의 치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이다.
산성 내부의 동쪽 벽 근처에서 바라다본 점장대
내성 안에 여러 건물들과 함께 점장대가 보인다. 이러한 건물들은 창고 무기도 등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근거는 없다.
점장대를 올라가는 돌계단. 여장(성가퀴)을 복원해 놓았다. 동벽에는 고구려 당시의 여장들이 일부 남아있어, 이곳도 이러한 형식으로 되어있었을 것이다.
북벽과 내성이 한 번에 보인다. 북벽은 아래로 천 길 낭떠러지이며 뒷산과의 사이에 狹河가 흐르는 협곡이 있다. 뒷산에는 성산산성보다 규모가 큰 後城(고구려 성)이 있는데, 연개소문이 직접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남문에서 점장대로 이어지는 동벽에 있는 거대한 치(雉)이다. 윗부분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지만 색깔이 더 거무스레한 아래 부분은 고구려 당시의 것이다. 전형적인 굽도리양식으로 되어있다.
산의 자연 능선을 활용했기 때문에 절벽이나 거대한 바위가 있는 곳도 잘 활용하여 오히려 방어력이 높게 성벽을 쌓았다.
내성으로 연결되는 문의 모습. 물론 최근에 복원된 것이지만 북한에 있는 평양성과 유사하다.
/윤석하 (사진작가) 2908y@naver.com
사진 원본은 http://www.beautia.co.kr/ (昔河사진문화연구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기사입력 2008.09.03 (수) 11:14, 최종수정 2008.09.03 (수)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