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재상주사랑 2008. 11. 23. 23:42

  심원사 나들이

 

 평일임에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 한답시고 외지에 나가있던 아들녀석 성묵이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 집사람이  바람이라도 쐬러가자는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그러자면 먹을거리라도 챙길요량으로  김밥을 좀 말자하니 집사람은 시중 김밥집에서 사서 가잔다. 워낙이 계획에 없던 일정인지라 그 말도 내심 그럴듯하다 여겨, 시내 김밥집에서 김밥을 몇 줄 사서 챙겼다.  마침 고등학교 재학중인 막내 인묵이 녀석도 중간고사 시험을 치른 날이라 집에서 미적대고 있기에 너도 가자며 부추겨 데리고 나선 산행! 

 코스를 어디로 잡을까고 잠시 머리속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여지껏 가을 기운이 남아있으며 단풍을 볼만한 곳으로써 오후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면  심원사가 제격이리라. 물길이 화북 상오와 시어동에서 시작하여용유천을 휘감아, 문경쪽 농암면 내서리를 꿰뚫어 흐르는 어간즈음에 있는 심원사가  머리속에 퍼뜩 떠올랐다. 몇 년전 도로 공사로 새로 뚫은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오른쪽 하천를 가로질러 문경시에서 건조한 다리를 만난다,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서 얼마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속리의 곳에 자리한 심원사를 제격이라 여겨 오후 일정을 심원사로 정했다.

 앞서가는 두 아들 녀석들이 이젠 몸집이 꽤나 장성해 보였다. 너스레와 애교를 떠는 장난질은 어쩌면 징그럽기까지 하단 생각이 떠올랐으나 그 짓거리도 우리 내외에겐  즐거움이었다, 집사람은 늘 절집으로 방향을 정하면 풍경이나 테마보다 절과 관련한 신앙 얘기를 많이 섞어서 자기 색깔을 드러냈지만  오랜만의 나들이는 이도저도 애교라 다 묻어버렸다.  가을 양명한 햇살이 웃음으로 만발한 가족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비쳐 주었고, 그럭저럭 가파른 산길을 20 여분 오른 끝에 다다른 곳  그곳 심원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심원사 ! 평일을 택해 이곳에 들면 시간이 멎은 듯 착각이 든다, 오늘도 이곳은 주변정경이 서리 기운을 머금은 듯 차가운 가을 정취를 고즈넉이 드러내고 있다. 붉고 노랗게 익어가는 삼성각 아래 서있는 돌감 나무. 그 가지엔 돌감이 자그맣지만 많이도 달렸다. 참으로 알알이 헤맑다. 흡사 티없이 반들거리는 소년의 이마를 닮았다......

 

 몇 년전 이곳을 찾았던 일이 떠오른다. 당시는 여름이 채 끝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고목이 되어가는 감나무 기둥이 밑둥 아래로 점점 내려가며 짙은 먹빛으로 비늘 무늬를 그려가고 있었다. 가지는 온통  잎새가 무성해 그 빛깔은 절한켠을 푸달지다싶게 녹색으로 물들이며 몇 해전 여름을 생각나게한다. 나무는 감 닢 만큼이나 두꺼운 그림자 키가득 이고서 작은 곁마당을 뒤덮듯이 서있었다. 흙기운은 나무 그늘 아래 보드랍기 그지 없어 보이고, 바닷가 조가비처럼 감 꽃이 자욱하게 빠져 땅을 노랗게 뒤덮어서는 너무나 앙징맞았던 기억이 여즉 새롭다. 원래 이 절의 꽃은 여늬 감 꽃에 비하면 크기가 절반이 채 되지 않아서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법하지만 상상을 불러일어ㅣ키게하지만  그예 꽃들은 시절을 따라 지고 말아, 이제 더는 그 앙징맞은 모습들을 볼 수가 없었다.

  법당에 참배를 하고 마루를 내려 서는 데 이 절을 지키는 나이가 지천명은 조금 넘어 보이는 여스님이 미소를 띄고서 그 때보다 더 반가워하는 낯빛으로 우리 일행을 반겨주신다.  이 절의 신도도 아니고 안면이 친숙하지도 않은 방문객인 우리를, 수박을 속살만 각을 떠서 가지런히 썰어서는 작은 접시에 하나 담뿍 담으시고, 쑥빛 살갗에 하얀 고물을 묻혀서 만든 인절미를 접시에 또 하나 되도록 담아 둥근 쟁반을 받쳐서 내어오셨다. 스님은 몇 년전 이 절에 오신 첫 해에 보고 그 이후론 절을 찾지 않아서 못 본 탓에 더욱 반가웠다. 정말 오랫만이라고 여기는 내 머리속 독백을 받아 읽기라도 하듯 

 '전에 우리 절에 들렀던 적이 있지요' 하신다.

 '스님 오시던 해에 이 아이하고 찾았을 때도 오늘처럼 좋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옆에서 생각없이 서있는 막내 아이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스님 말씀에 맞받아 말을 건냈다. 그렇게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중에도 절집 처마 밑에서는 노란 왕벌이 몇 마리 무리지어 어른의 머리통 보다 더 큰 제 집을 뻔질나게 드나 들며 오후 햇살의 물결이라도 가르듯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으며 스님은 우리가 서 있는 마당에서 조금 아래 샘가에 놓인 의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친절히 염려를 아끼지 않으신다.
 '저기 저 자리로 가서 앉아 드세요'

 '여긴 벌이 날아들어서 ....'

 '가만히 있음 해치지는 않지만요'

 이 절은 도장산 품에 들어있다. 도장산은 화북의 진산 청화산의 동북으로 마주한 조산이다. 이산은 남동쪽의 대궐터가 앉아있는 청계산을 자산으로 포용하고서 그 서북을 뻗어 쌍용계곡의 호위를 받듯이 함께 감아 도는 형국이지만, 절이 있는 큰 골을 가마솥처럼 에워싸고있는 국면은 이 산의 내면이라 할 만한 산세이다.그 산세는 절마당에서 마주보는 정면 봉우리를 바라볼라치면,때로 솟구치기도하고 맥이 뻗어 내닫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모습을 눈앞에 펼치며 보여주고 있다. 산주름을 치마홀기 접듯 남쪽으로 여러 골짜기를 안아서는  큰 원을 그리며 갈무리하는 그 등성이의 거리는 시골 릿 수로 홑 오리 어름은 좋게 되어보인다. 휘돌아 끝나는 지점 북편 등 날에서닿아서는 다시 남향을 한 기슭에  자리잡아 단정하게 다듬듯 최초의 가람 자리를 정한 이는 지리에도 아마 예사 안목을 가진 분이 아닐것 이란 생각을 문득 해본다. 

 

 절집 치고는 작은 지붕하며 그 지붕도 사치스런 기와나 웅장한 부목 자재들을 쓰지않고 그저 함석을 입혀서 마감한 민가 모습을 하고있다. 예전 어느 비구니 주지 스님이 불사를 일으켜 한 해를 두고 꼬박  이고지고 절아래 산자락 물을 건너 물자를 날으며 지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어느 지인에겐가 들은 바 있다. 반칸 마루칸을 나누어야 삼칸 겹이랄 수 있는 소박하게 지은 집이다. 일주문 또한 함석으로 자그마하니 비만 가릴 정도이지만 "深源寺"라 씌어진 편액이 단아한 예서로 테두리 액장식도 없이 씌어져 있어도 그 맵시는 그저 예쁘기만 하다.

 절 입구는 등산로와 갈라지는 경사진 길을 헤어져 내려서야한다, 등산로를 왼쪽으로 둔 안 기슭에서 흐르는 개울은 물을 받아 일주문 담장과 나란히 흐르고 있다, 어른 큰 걸음이면 건너 뛸 수 있을 너비라니 가을 산세와 어울어져 아름다울 뿐이다. 걸음을 멈추어 선 채 일주문에 들지않고 그 개울에 듬성듬성 박혀 내려오는 돌들을 살펴보니 생김새도 하나 하나가 다 이쁘지만 제 키보다 낮게 흐르는 개울 물줄기에 젖은서인지 돌은 언제나처럼 늘 이끼를 제 몸에 두르고 있다. 이곳 개울 풍경은 여름에도 좋다. 산뽕나무 가지를 낚아채 듯 잡고서 발꿈치를 세우며 손으로는 가지끝을 당겨서는 오디를 따 입에 넣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그대로 한 폭의 선경이며, 또 어떤 이는 그 아래 돌을 깔고 질펀히 무질러 않은 채 탁족하는 모습은 물소리와 어울려 이 절이 산속에서 속세를 안고서도 천연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산뽕의 나뭇 가지도 가을 햇살을 받아서는 맨 살에 맨가질 드러내고 있다.  잎도 열매도 없으니 가지만으론 산뽕인지 무언지도 모를것이지만 이런 느낌이 더욱 이 계절을 신비롭게 한다.



 절 마당에 들어 서자 도랑이 또 하나 흐른다. 일주문에서 마주한 계곡을 따라서 앞 마당 섶을 두르며 절 본채와 옆마당 한켠을 차지한 해우소 건물 밑자락을 적시듯 감아서는 일주문 담장 끝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절집에 딱 어울리는 풍경이다. 일주문 밖에서 좀전에 건너왔던 물과 마당을 가로질러 온 도랑이 만나서 조금 더 큰 골짝 물이 된다. 이 물이 절을 싸고있는 능선 자락을 채 못 벗어난 지점에서 벼랑을 만나고 급기야는 작은 폭포를 만들어 세찬 물소리를 들려주는 데  오늘은 가문 날씨 탓인지 왠일로 귓가에 물소리가 약하게만 들려온다.

 

 

 한편 절마당에는 여름이면 수국이나 목련의 키 큰 모습이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법당에서 뒷산으로 오르는 뒤란 곁에 서있는 삼십년은 그저 묵은 듯한 모과 나무 등걸이 쑥빛 살갗의 허물을 벗고있는 우아한 모습과 그 나뭇가지 끝이 하늘 아래에 닿아서는 노오란 모과를 꽤나 많이도 달고있다. 동쪽 울타리를 두고 얼마간 떨어져  피어있는 짙은 보라빛 자색을 뽐내는 소국과 노란 빛깔을 띤 또 다른 국화 등 그 꽃들에 노니는 풀벌레들, 여치 나비 벌들이 그 주변을 헤집고 다닌다. 그렇게 정원에 눈길을 빼앗기고 있자니 마음 한 자락에 끝모를 정감이 밀려온다.짧은 가을 햇살아래서 맛볼 수 있는 이 절만의 서정일 것이다.그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산빛과 계절을 마무리하는 자연이 해마다 변하지않고 찾아오는 모습들 그것이다.

 

 뒤란으로 난 길에는  자연석 돌을 써서 시작한 듯한 돌탑 2기가  햇살속에 말없는 모습 드러내고서는 말쑥하다. 집사람과 두 아들이 동행한  모처럼 나들이로 온 가족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나같이 연신 감탄사를 남발한다. 석양과 함께  절에서 머문 시간은  한 시간 가량이나 흘렀을까! 하지만 올 때는 햇살이 제법 따스해 느낄 수 없었던 스산한 기운이 가을 오후 빛살 사이로 밀려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흩날리는  갈잎이  쏴~하니 물소리처럼 쉼없이 울려오고,  돌틈 사이로는 돌돌돌 소리내어 흐르는 물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산행을 시작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 가족은 서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갑자기 뚝 떨어진 듯한 늦가을 차가운 기온에  몸을 추스리며 하산하는 즈음, 오늘 하루 온 가족이 모처럼 한 마음을 이룬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