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 한글백일장] 산문 고등부 장원 '나는 누구인가'
[每日 한글백일장] 산문 고등부 장원 '나는 누구인가' | ||||||||||
기국경(김천여자고등학교 3년)
한때 사진 모으기는 나의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멋진 치장으로 화려한 연예인의 사진을 사모았습니다. 사진을 하나씩 살 때마다 나는 마치 보물이라도 얻은 양 며칠을 설렘으로 몇 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화려함에 취해 사진들을 마주하면서 난 마치 내가 연예인이 된 듯, 파리의 에펠탑 옆에서 멋진 동작을 취하는 듯, 소박한 나의 모습을 멋지고 화려함으로 잠시나마 자신을 잊고 즐거움에 젖었습니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화려함에 취해 동경하던 연예인의 모습보다 나의 소박함이 더 좋습니다. 꽃의 화려함이 한때이듯 나의 모습도 언젠가는 자극적인 것을 따라할지 몰라도 편안하고 친근한 얼굴이 지금은 더 좋습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잠깐씩 찾지만 나의 소박함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면서 손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이젠 더욱 정이 갑니다. 나의 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나의 나이에 맞게 쌓아온 지식과 꿈을 위해서 뛰어온 시간의 흔적이 그 어떤 것보다 밝은 빛을 냅니다. 여기저기 긁혀진 고통의 시간을 이겨냈던 나였기에 나에겐 닳고 닳아 세월의 주름과 지혜를 안고 있을 것 같은 골동품처럼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섞어 놓아도 한때 태어난 형제처럼 그런 부드러움의 향기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께서 늘 말씀해주시던 질그릇이 떠오릅니다. 도공의 손에서 흙으로 빚어져 가마 속에서 불의 시간을 견디며, 뼈를 녹이는 고통이 저를 삼키고 영혼까지 속속들이 달구어졌을 때 비로소 하늘이 열리고 바람의 혼을 듣는다고, 그때는 고체의 질그릇조차 존재의 붉은 피가 흐른다는 그 말씀. 한때 연예인의 화려함만을 동경하던 나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작은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아버지가 찍은 지장의 문서는 곧 우리 가족의 슬픔으로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불구덩이 속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동생을 데리고서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며 담임선생님께 배운 글짓기로 나의 마음을 글로써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후부터, 점차 고통을 쉽게 인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뼈를 녹이고 혼을 달구던 시간이 지나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서야 내가 볼 수 없었던 작은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겉의 화려함이 아닌 내면의 풍요로움과 따스함의 미학을 말입니다. 늘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날 위해 작은 쪽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주던 친구들, 한 마디 말이라도 힘내라며 응원해주던 선생님들. 나의 인생 한 켠에 잊을 수 없는 작지만 큰 사랑이 뒤늦게라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낱 흙덩이로 태어나 불가마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통해 모든 것을 담는 질그릇처럼 나도 그런 질그릇입니다. 나는 신이 흙으로 빚은 하나의 질그릇이기에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내 안에 무엇을 담고 비울 것인가? 기쁨을 비우고 미움과 증오로만 채우진 않을까? 이제 나는 슬픔도 기쁨과 행복으로 바꾸어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그런 질그릇이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꿈을 품고, 하늘의 보이지 않는 별을 품고, 사소함에 감추어진 것들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그런 마음 따스한 질그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가슴의 슬픔조차 아름다움으로 바꿀 줄 아는 질그릇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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