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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문학회 창간 10주년 기념회-회지 9호 발간기념

눌재상주사랑 2008. 12. 30. 02:24

숲 문학회 9호 회지발간과 더불어 회원이자 시집을 발간하는 김희수님 출판 기념회를 진행하는 자리에 참석하였다.  김희수님이 자기시를 낭송하고 부인에게 지금껏 보필해주신 고마움을 위로하는 순서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준 분이 있어서 소개하는 순서에 박상하라는 소설가 한 분을 소개하였다.이 분은 며칠전 세계일보에 소개한 "나를 성웅으로 불러라"라는 제목으로 책을  쓴 역사소설가 그 분이었다.

 역사는 거슬러 1592년 당시 상주에 연고를 둔 임란왜란의 영웅인 정기룡 장군을  소설화해서 최근 독서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인 작가를 초청하여 이 소설이 기획되어 출판이 되기까지를 설명 듣는 자리가 되었다.이 자리에서는 한 작품이 탄생하며 겪어야 했던  고통이 산고의 고통 못잖은 일이었다는 소회와 그 과정까지의 우여곡절을 출판사 사장과 작가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게되었다.

 

 취재를 위하여 상주에 수차례 방문하는 동안에는 지역에서 "숲문학회" 회원들이 협조를 하기도 하며 이루어진 일이라고 전한다.상주인들도 하지못한 이 작업을 마무리하여 그때의 사정들을 잘 설명 서술한 장쾌한 소설임을 알 수가 있었다.이는 특히 동화 구연가인 김차순씨가 작중내용을 얼마간 발췌하여 낭독해줌으로써 이 책을 읽지않은 나로서도 다소 상상을 하게 한 대목으로 이날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 점이라 할 것이다.

 

 상주에 충의사라는 기념관과 장군의 묘소를 둔 고장의 자랑스런 일을 호남 출신의 한 소설가가 86차례나 조선왕조실록에서 정기룡장군을 다룬 기사거리를 검색하기도 한 일과  매헌실기에 기록된 내용에 비교하여 정사에 비추어 거론된 점이 일반적인 소설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인하여 허구성을 면하기 어려운데 비해 이번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 작품 진행이 비교적 우수하다 할 것이다.선조때의 공신들의 목록인 "선무원종공신록"에서, 처음에는 106몀의 공신 반열에서 빠져있다가 1605년 선조의 추서로 슬며시 일등공신에 오르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많은 설명과 추측을 빚어내게하며 우리들의 관심이 끌리게 된 점일것이다. 61세를 일기로 임란이라는 큰 일대사 전쟁을 치루고도 천수를 다하고 작고하는 영웅의 일대기를 재조명하며 밝혀진  자랑스런 일들이 모두 상주의 정기룡장군에 관한 일이 됨이 더더욱 자부심을 가지게 할 만한 일이기에 상주인의 한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가져본다.

 

 뒤늦게 1775년 영조때에 가서는 충위공이리는 시호까지 받으며 재삼 평가됨에는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없는 일이라 하겠다.

시호를 두고 충의 충정 충위 하면서 한사람에게 여러번 글자를 달리한 추서부분이 궁금해서 바로 우리고장에 있는 공의 사당이 충의사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회자됨을 감안한다면 시호는 당연히 충의공이라고 함이 마땅할 일이라고 여겨서 충위공이라 함은 무슨 까닭에서인지를 알 수가 없다고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니  둘다 맞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박상하 작가는 얘기하신다.

 

이순신처럼 전장에서 무인이  싸우다가 전사를 하는 경우에는  '武'자를 넣어서 '충무공'이라 하지만 전장에서는 많은 전공을 세워서 전과를 거두었으나 만년을 평이한 삶으로 임종을 한 정기룡장군과 같은 분은 충위라고  한단다. 하지만 또 전투마다 승승장구하신 장군이 지략이나 병법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그  정밀한 생애를 비추어보아 '義'라고 해도 무난하다는 설몀을 덧부쳐하신다.

 

하지만 전장에서 공을 세우기도 하지만 문신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공로에는 '靖'자를 써서 충정공이란 시호를 내린다니 시호하나를 두고 보아도 이렇게 다양한 설명을 통하여서만이 알 수 있는 일이라니 옛 일에 책을 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모를 부분을  설명을 통해서 알게되니 자못 오늘 자리는 보람있고 숙연한 그리고도 즐거운 문인들의 잔치가 된 듯하다.

 

 물론 이 자리에 참석한 나도 어느덧 그들 분위기에 동화되었으니 지역에서 하는 숲문학회의 활동상을 낱낱이 지켜보는 자리가 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