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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털실감기'

눌재상주사랑 2009. 1. 3. 01:05

[200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털실감기'
 
 
 
털실감기

             김영식

나는 실을 풀고

할머닌 실을 감고

호롱불빛이 감기고

부엉이소리가 감기고

사과처럼 둥글어지는 실타래

나는 지겨워져 빨리 풀고

할머닌 엉킨다며 천천히 감고

슬슬 하품이 감기고

펄펄 함박눈이 감기고

어느새 호박처럼 커진 실타래

할머닌 뽀송뽀송 나를 감고

나는 도란도란 할머닐 풀고

◇ 당선소감

  골목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바람이 살짝 덧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흰 손을 잡고 교차로가 훤히 내다보이는 커피숍에 마주앉았다. 오후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사람들은 거리를 부유하고 있었다. 삶은 이처럼 타인의 얼굴을 하고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불현듯 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아! 우린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요?’

  그녀의 목덜미 위로 커피향이 안개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저 아찔한 바람의 머리에 새털구름 한 조각을 올려놓을까? 아니면 구절초 한 송이를? 망설이는데 타닥타닥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첫눈이었다.

  갈색의 찻잔 속으로 눈송이들이 배추흰나비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카푸치노 같은 눈을 저어 맞은 편 바람에게 건넸다. 그녀의 쇄골이 잠시 흔들린 건 아마도 삐걱거리는 낡은 탁자 때문이었으리라. 웃을 때 드러나는 바람의 덧니 사이에 움막을 짓고 이 겨울은 좀 더 외롭고 높고 쓸쓸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주신 구림 이근식 선생님과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님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기쁨을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반 문우들, 열정이 넘쳐나는 <시 in> 동인들, 통영의 한률 형,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힘이 들 때 기꺼이 곁이 되어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영식

▷ 필명·김환

▷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 1960년 경북포항 출생

▷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포항 해양경찰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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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01월 0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