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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이화여대 변신작전 성공이냐 실패냐

눌재상주사랑 2009. 1. 11. 21:07

 

[주말 & Design]

이화캠퍼스 복합단지‥속살 드러낸 지하 캠퍼스…유쾌한 햇살의 폭포가 되다

거대한 계곡 모양의‘이화 캠퍼스 복합단지’앞쪽 전경. 건물인지 통로인지 광장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하지만 분명한 정체는 지하 6층짜리 건축물이다. 운동장을 반으로 쪼개고 이곳에 건물을 집어넣은 건축가의 상상력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사진제공=월간마루 최정복


건축에서 '미(美)'를 얘기하는 것은 쉬울 듯하면서도 어렵다. 한번 지으면 몇 십년에서 몇 백년까지 가는 건축물을 개인적 주관이나 취향,트렌드 등으로만 평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화려한 모습으로 한때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물이 몇 년 새 외면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가벼운 유행에 치우친 건물일수록 이렇게 될 공산이 크다.

건축 디자인에도 미술.음악에서처럼 시대에 따른 트렌드가 있다. 규범.제도가 강조되던 시기도 있고,첨단 하이테크 기계미가 중시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은 화려한 치장에 기계적 편의성이 강조되면서 다채롭고 화려한 게 특징이다.

이렇듯 건축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내면에는 복잡한 사회.문화적 요소가 배어 있다. 그래서 제대로 평가가 쉽지 않다. 자칫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말장난으로 흐를 수 있다. 하지만 건축을 평가할 때 변치 않는 분명한 기준은 있다. 건축이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본질적 기준이다.

건축에서 미를 강조하다 보면 실용성이 처지고,실용성을 우위에 두면 어느 새 건물이 건조해지는 경향이 있다. 경계선의 조화를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

지난 4월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 지어진 '이화 캠퍼스 복합단지(ECC)'는 이런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일단 모양부터 기존 건축물과 워낙 다르다. 왜 저렇게 했지라는 궁금증부터 재미있다는 평가까지 다양한 얘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시 건축상을 받기도 했다. 이 건물은 운동장으로 쓰던 땅을 반으로 쪼개 거대한 통로를 만들고 양쪽에 지하 건물을 넣은 형식이다. 모세가 갈라놓은 홍해가 연상되기도 한다. 인공계곡은 보행로와 광장,캠퍼스 입구 등으로 활용된다. 건물은 계곡의 양쪽 벽을 파내고 그곳에 배치했다. 이로써 일반 건물처럼 외형이 드러나 있지 않다.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작품이다. 도미니크 페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현상설계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세계 도처에 눈에 띄는 설계작품을 선보인 건축가다. 이 프로젝트는 3명의 건축가들과 경쟁을 벌여서 따냈다.

법적으로 이 건물은 모든 곳이 지하공간이다. 벽 속에 감춰진 특이한 모양이다. 외부와 소통을 위해 계곡 양쪽 벽을 거대한 유리벽으로 처리했다. 햇빛을 빨아들이는 유리 폭포벽 덕분에 지하층의 칙칙함은 어디에도 없다. 설비도 지하층의 특성을 백분 살려 지열을 활용토록 설계됐다. 중앙 경사로를 따라 꾸며진 유리 커튼월을 보면 마치 도심 마천루가 넓다란 대지에 누워 있는 착각이 든다.

유리 커튼월 안쪽 건물은 전체 6개층으로 구성됐다. 내부에는 강의실 극장 음식점 카페 도서관 갤러리 주차장 등으로 채워졌다. 이 건물의 지붕인 지상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을 꾸며 정갈한 캠퍼스 공원으로 바꿔놨다.

기존 운동장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그 아래쪽에서 학생들과 일반인이 함께 쓸 수 있는 멋진 공간을 감쪽같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멋있고 재미있다. 건물 안쪽의 개별 공간 조형미도 구경거리다. 다만 건물 내 상업공간에 대해서는 캠퍼스를 지나치게 상업화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이 캠퍼스와 사회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접점 역할을 할 수 있어 오히려 유용하다는 평가도 있다. 삶에 지쳐 오랫동안 캠퍼스를 잊고 살았던 사람들은 시간을 내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야릇한 향수와 함께 '대학도 많이 변했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일부 건축가들로부터는 다소 삭막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쾌한 공간이다.

김남훈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knamhoon@mju.ac


 

 

이화여대 변신작전 성공이냐 실패냐

건축 이야기 2008/08/06 14:26

 

 

# 이화여대, 학교를 완전히 바꾸는 모험을 시도하다

 

2000년대 초반, 이화여대는 야심차게 캠퍼스 대개조 작업에 나선다. 대학 캠퍼스 자체를 최신 첨단 건축으로 완전히 탈바꿈 시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할 세계적인 건축가를 찾았다. 한국 건축 설계경기 사상 최고로 유명한 외국 건축가들을 찍어 경쟁을 시켰다.

 

이 설계경기에서 이후 서울 동대문운동장 공원 디자인에 당선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도 떨어졌다. 최종 당선자는 스타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바로 이 양반이다.

 


 

도미니크 페로는 책을 펼친 모양이라는 파리 국립도서관 건물로 세계적 스타가 된 건축가다. 그의 대표작 파리도서관이 바로 아래 사진이다. 

 



이 도미니크 페로가 이화여대 캠퍼스를 대지와 건축이 융합되는 랜드스케이프 건축으로 디자인한 시안이 바로 이것이다. 이대 정문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큰 길을 중심으로 지중 캠퍼스가 들어서고, 그 위를 숲으로 덮는 디자인이다.

 

이화여대가 일대 변신한다는 점은 한 대학의 리노베이션 차원을 넘어 외부자들에게도 관심을 끄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화여대 캠퍼스는 국내 대학들 캠퍼스 가운데 가장 예쁘고 가장 분위기 있는 캠퍼스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시기별 건물들이 공존하고 있어 시대별로 비교해볼 수 있는 대학캠퍼스다. 옛 석조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고, 이후 건물들도 석조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어 이화여대 캠퍼스 전체의 고유한 건축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이런 캠퍼스에 초현대식 건물이, 그것도 유명 스타 건축가의 작품으로 들어선다는 점에서 당연히 건축계는 주목했다.

 


 

입구에서 들어오면서 펼쳐지는 모습을 미리 구성해본 시안이다.

 


 

거대한 구릉 자체가 건물이 되고, 그 사이로 홍해가 갈라지듯 큰 길이 뚫린다. 그 양쪽이 건물의 창문이 되는 설계다. 가운데 큰 길 모습을 미리 그린 그림 하나 더.

 


 

수직으로 치솟던 건축이 수평을 중시하는 것은 요즘 건축계의 새로운 흐름 중 하나다. 얕고 넓은 건물이 지형과 비슷한 모습을 이루는 건물들이다.

이 랜드스케이프 건축으로 유명한 사례는 세계적 화제가 된 일본 요코하마의 국제여객 터미널이 있다. 바로 이 건물.

 


 

서울에 조만간 들어서게 될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공원도 역시 이런 트렌드를 보여준다.

 



이화여대 캠퍼스는 이런 랜드스케이프 건축을 국내에 제대로 도입하는 첫 사례였다. 그리고 워낙 유명한 건축가들이 경쟁한 것도 당시로선 처음이었다. 

 

 

# 상전벽해, 새로 등장한 이화여대 캠퍼스

 

그리고 3년 뒤, 이화여대 새 캠퍼스, 이른바 ECC(Ewha Campus Complex)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실제 모습을 돌아보자.

(# 아래 이화여대 사진은 도미니크 페로의 국내 파트너 범건축에서 제공한 것임)

 





이화여대 정문으로 들어서면 새 캠퍼스 ECC가 등장한다. 저 멀리 길이 트여 이어지고 그 마지막에 돌계단이 있다. 예전 주차장이 있던 자리가 거대한 복합건물로 탄생했다. 길 양 옆으로는 유리와 철의 입면이 펼쳐진다. 거대한 유리바다 사이를 지나는 모양이랄까. 사진은 정문에서 계단쪽으로 지나가는 순서다.

 

계단 위쪽에 올라 반대로 정문쪽을 내려다 본 모습은 이렇다.

 


 

그러면 이제 건물 이모저모. 수직 패턴 창과 금속 소재로 멋을 낸 것이 특징이다.

 




 

내부에서 보이는 외경, 그리고 강의실 모습 등이다.

 

그러면 이제 외부 공간, 그러니까 건물의 지붕이자 구릉이면서 정원이 되는 바깥 공간 조경 모습을 보자.

 



 

애초 계획과 달리 나무 숲이 아니라 얕은 정원처럼 꾸며졌다.

그럼 새 캠퍼스의 밤 모습 차례.

 





 

 

# 이대를 살린 걸작일까, 학교를 망친 괴물 건축일까

 

이화여대 캠퍼스는 여러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우선 건축적 의미가 앞서 말한대로 크다. 건축가가 세계적 스타인여서 한국 현대건축물을 대표할만한 프로젝트다. 형식 역시 '숨는 캠퍼스'란 독특한 형식부터 재미있다. 그리고 앞에 말한 대지 풍경 건축이란 점도 흥미롭다.

동시에 사회적 의미도 있다. 대학 캠퍼스는 중요한 건축의 보고다. 그리고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적 특성을 담아내는 기능을 한다. 이화여대의 새로운 시도는 21세기 초 대학이란 공간을 바라보는 한국 대학의 시각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앞서 공사 전, 페로는 이렇게 이대 캠퍼스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대학을 도시를 향해 개방시키고 도시를 대학내로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로이지만 정확히 가로가 아니다. 갤러리도, 쇼핑몰도 아니다. 일종의 도시와 대학의 하이브리드, 혹은 그 사이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지향점은 이렇게 말했다. "스타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이 어떻게 주변 경관과 어울리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건물을 창조했지만 이는 건물이라기보다 경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결과로 탄생한 ECC는 어떤 성과로 평가받을까?

보통 건물은 지은지 2~3년은 지나고 평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 평가는 이르지만 이미 찬반양론이 뜨거운 편이다. 그 독특한 생김새만큼 평가도 양극으로 나뉜다.

 

일단 긍정적 평가는 앞서 말한 건축적 의미 자체로도 중요하고 의미있다는 의견들이다. 미학적으로도 현대 건축 특유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는 이들도 많다. 숨어있는 캠퍼스, 지하 캠퍼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줬다는 점도 평가받는다.

반면 지나치게 거대해 사람을 압도하고, 분위기가 너무 삭막하다, 심지어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부정적 견해들도 많다. 기존 이화여대의 차분하고 통일된 분위기를 망쳤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떠신지? 그러나 실제 저 건물을 이 사진으로만 보고 평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건물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잘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접 보시면 사진과 전혀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한번 들러보시면 재미있을 듯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한가지 점이 무척 아쉬웠다. 바로 `조경' 부분이다.

이대 캠퍼스에서 시안과 실제 모습이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이 바로 조경이다. 모든 대형 공사는 초기 설계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뀐 것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 조경의 변화는 거의 컨셉 자체가 바뀐 수준이다. 나무 숲으로 기획된 녹지대가 얕은 정원형으로 바뀌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듯하다.

 

미안하지만 그 바뀐 조경의 수준이 좀 낮게 느껴진다. 길거리 화단 조경을 크게 뻥튀기해 급하게 깔아놓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초기이므로 이후 식물들이 자라고 연륜이 쌓이면서 변하면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원래 나무 숲이 우거지는 안이 훨씬 나아보인다. 진짜 `랜드스케이프 건축'이 되기엔 조경이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다.

 

대학이란 공간은 무척 중요하다. 재학생들에겐 생활공간이고, 졸업생들에겐 추억으로 평생 연을 맺어가는 공간이다. 학교처럼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되고 교감이 이어지는 공간도 없다. 그래서 학교 건축은 중요하다. 저 캠퍼스에 대한 평가는 진행중이다. 무엇이든 우리 건축계의 새로운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이대 새 캠퍼스가 성과를 거둔다면 이어져야 할 것이고, 시행착오로 판명단나면 그 경험은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