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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線美感 .2부] 천마도 (4)

눌재상주사랑 2009. 3. 1. 00:19

[曲線美感 .2부] 천마도 (4)
말갈기와 꼬리털의 날카로운 곡선…비상본능은 하늘로 솟구쳤다
이글거리는 힘 불꽃같은 열정…곡선에서 부과된 신라의 기상
그것이 부글부글 약동하고 있다
아! 천년의 향기 경주여!
비상을 꿈꾸려면 경주로 가라. 천마총. 삭풍도 죄다 떠나 버렸다. 이른 봄날을 샘하는 냉기가 바람에 묻어 투정이지만 오는 봄에는 갱무꼼짝. 바스락거리던 잔디에도 물이 오른다. 서서히 부드럽다. 실없이 엉덩이를 찌르던 잎사귀들은 되레 간지럽게 군다. 온갖 세상사로 얼었던 하늘마저 풀리고 봄날의 천마총은 그야말로 봄이다. 봄. 그대들에 주어진 구십춘광이 넉넉할 것도 같지만 봄 눈 녹듯 사라지기 전에 경주로 가라.


1973년 여름. 발굴이 한창이던 155호분 천마총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가죽을 대고 그려진 하늘을 나는 흰 말 그림의 말다래가 발굴됐다. 모두가 놀랐다. 7번째의 금관을 비롯해 장신구류, 무기류, 마구류, 그릇 등 수 많은 유물과 함께 발굴된 것 중 가장 관심을 끌게 한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 말다래의 뒷면에 붉고, 갈색을 띠고, 검은색 선으로 당초문을 장식한 그 가운데 백마는 비상의 채비를 마치고도 그 새 참을 수 없다는 듯 질주의 본능을 하늘로 향하고 있다. 국보 207호.


말갈기와 꼬리털은 날카롭게 섰다. 결코 뾰쪽하지도 않다, 곡선이다. 이글거리는 힘들이 솟음치고 불꽃같은 열정이 타오른다. 신라인들의 가슴이 고스란히 살아 찡하게 전해진다. 저 말. 백마. 저 말을 타고 누빌 벌판. 그 시각은 아무래도 새벽녘이 아닐까. 희뿌연 새벽. 주역에서는 천조초매(天造草昧)라 했지. 초매란 그 빛깔이 검고 그 상태는 토우가 낀듯하다 해서, 다시 말하면 동이 틀 무렵. 로얼이 읊은 "짙은 호박색 천공(天空)"이나 콘퀘스트가 노래한 "진주패처럼 파란 하늘"은 백마, 아니 신라의 천마가 달리기에는 너무 사치스럽다. 호쾌하게 질주하기에는 그 하늘을 보는 한 낮의 시각이 너무 늦다. 천마를 타고 도모해야 할 일이라면 응당 새벽녘이어야 마땅하질 않는가.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누빈 그 위에 발휘된 능숙한 솜씨. 단순하다. 그러나 그 역동성은 너무 힘차다. 이글거리는 곡선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조화의 발생은 운동감이나 방향성이나 균형 어느 한 곳 흠집이 없다. 학자들은 고구려 고분벽화 등 옛 우리나라 고미술을 비교, 연구하면서 천마도 역시 스키타이 문화와의 관련성을 지적한다. 그 '관련성'에 대해 앞으로 더 풀어야 할 숙제들이 담겨있지만 그러나 이 천마도에서 보이는 호쾌한 신라적 기상만은 풀지 않아도 된다. 늘 우리들에게 간직돼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신라의 기상이라고나 할까.


캔버스가 희듯이 자작나무 또한 희다. 나무를 통해 쉽고도 명쾌히 어려운 '오늘'을 해부하는 글들을 많이 쓰고 있는 강판권 계명대교수는 '누구나 극찬하는 하얀 피부, 자작나무'라는 글에서 자작나무는 겉이 희지만 속은 검은 나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은 겉과 속이 같은 표리일체의 존재를 그리워한다"며 그 이유로 스스로 온전히 그런 존재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 그런 이름이 붙은 자작나무를 강 교수는 "속이 검지 않다면 하얀 피부를 드러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명쾌한 반어적 풀이로 다시 한 번 우리들의 가슴을 친다.


그렇다. 신라의 기상이 아니었다면 이런 천마의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단순하면서도 파상적이고 때로는 자유스러운 곡선으로 이뤄진 천마의 감정. 칸딘스키가 "곡선은 약동감과 전진, 리듬의 강약, 밝고 어두움의 형태 등을 직선과 대립하면서 표현한다"고 했다. 천마도에는 이런 곡선에서 부과된 생명력들이 부글부글 쉼 없이 약동하고 있다.


지금 천마총은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다. 천마총은 잘 생긴 반달 모양이다. 늘 넉넉하다. 내부가 공개된 이 적석목곽분은 입구가 좀 그렇긴 하지만 안으로 들면 느낌이 전혀 다르다. 단순한 무덤을 넘어 당찬 얼과 기상이 서린 당시의 신라시대가 다가오는 듯하다. 순 금관을 쓰고 동쪽으로 머리를 누인 무덤의 주인 유해도 발굴 때의 그 모습대로 재현돼 있다. 그 밖에 주인이 쓰던 금제 허리띠며 손칼이나 굽은 옥 등 온갖 물건들이 정교하고 섬세하게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많은 전문가들이 컴퓨터까지 동원해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를 밝히려 들었지만 여전히 안개다.


역시 눈길이 멈추는 곳은 천마도가 그려진 자작나무 말다래. 말다래는 말을 타고 흙탕길을 달릴 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의 양 쪽 배에 늘어뜨린 마구의 일종으로 장식으로도 흔히 쓰였다고 한다. 원 그림은 진작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보내졌다. 그렇지만 천마총 안에서 보는 말다래는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킨다. 소설가 강석경은 그의 책 '능으로 가는 길'에 천마총 말다래를 보고 "기를 내 뿜듯 혀를 내밀고 꼬리를 세운 채 구름 위로 달리는 흰 말, 바람이 이는 듯한 신령한 분위기와 생동감"으로 표현했다. 그 생동감이 바로 신라인들의 보이지 않는 기상 아닐까.


천마총을 나왔다. 마음의 천마가 생동하며 하늘을 줄달음친다. 박남수의 시 '말'이 떠오른다. 나의 안 깊이에는/ 나보다는 빠르고 건강한 말이/ 한 마리 살고 있다./ 샤갈의 말대가리 같은 말이 아니라/ 러시아의 벌을 건너질러/ 놋방울을 울리며 달려간 릴케의 말처럼/ 사납게 길들지 않은 말이/ 한 마리 살고 있다./ 네 굽을 들고/ 나의 답답한 가슴을/ 꽝꽝 밟아 주기도 하고,/ 세상 제일의 고독을 코 풀며/ 섧디섧게 울기도 하는 말이/ 한 마리 살고 있다./ 서러운 세상에 네 갈기를 쓰다듬으며, 나는 / 한 사람의 말치지이면 그뿐이다.


박남수는 그의 다른 시 '비가(悲歌)'에서는 또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은 흐르고/ 찬 삭풍의 매운 칼날은/ 우리의 살결을 잘랐지만,/ 넓은 하늘이 저렇게 펼쳐져 있으면/ 날개를 띄울 공간으론 충분하지 않겠는가. 경주의 이만한 하늘이면 천마가 웅비하는데 하등 충분치 않을 리 없다. 여느 맑은 날 오후면 천마총 위의 하늘은 이효석의 표현대로 "돌을 집어 던지면 깨금알 같이 오드득 깨어질 듯한 맑은 하늘. 물고기 등같이 푸르다(수필 '산'의 일부)"는 그런 하늘에 천마는 기운을 잃을 리 없다. 생동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천년의 향기 경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