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및 독서▶/명문감상
[曲線美感 2부] 김연아의 곡선 (2)
눌재상주사랑
2009. 3. 1. 03:32
| |||||||||||||||
얼음판 위를 질주하는 곡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어느새 성숙해져 있었다. 그런 성숙에서 우러나오는 얼음판 위의 몸짓. 무아의 몸짓. 거기에서 느껴지는 한 마음. 동일한 염원. 얼음 위를 활주하는 그 모습에서 한 발 나서면 세상은 그저 한숨과 함께 찡그려지지만 다시 은반의 그 질주에 생각이 미치면 세상은 금방 달라진다. 이것이 어디 세계를 제패했다는 쾌거에서 나온 쾌감 탓일까. 아니다. 힘든 지금. 힘든 이들에게 엄청난 위안이 되는 김연아의 곡선. 그 곡선에서 뿜어지는 힘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힘을 주고 있다. 용기를 주고 있다. 희망을 주고 있다. 말끝마다 침을 튀기는 위정자나 덩더꾼들의 희망버전에는 솔직히 염증뿐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희망을 노래하는 그들보다는 김연아의 희망은 상쾌하고 깨끗하다. 비교하는 것도 싫다. 혹 삿된 무엇이 묻을까 걱정돼서다. 그만큼 지금 우리들은 희망다운 희망에 목말라 있다. 장 파울이 '아폴리즘'에서 이야기했지. "빈곤과 희망은 어머니와 딸이다. 딸과 즐겁게 얘기하고 있으면 어머니 쪽을 잊는다"고. 딸이라면 희망이다. 그 딸과 즐겁게 이야기만 하지 말라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지적인가. 어머니 쪽이라면 빈곤이다. 세네카도 "빈곤은 부정을 가르친다"며 경계했다. 생쥐 볼가심할 것도 없는 빈궁의 시대. 일찍이 그런 시대를 예감했을까. 파이드루스는 "정부가 바뀌어도 가난한 사람은 바뀌지 않고, 그들의 주인만 바뀔 뿐"이라며 한 숨 쉰 이유가 분명해진다. 지금 우리들의 주인은 딸과 이야기하고 있을까,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것이 이 시대의 문제 아닌가. 다시 빙판. 얼음에 박 밀듯 질주하는 피겨스케이팅. 빙상의 예술. 갖가지 동작이 현란하게 율동을 이루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아름다움을 두고 경주를 해야 하는 서글픔이 좀 뭣하지만 그러나 얼음판에 쉽게 서는 것조차 어려운데도 날카로운 쇳 날을 움직이며 떡 주무르는 선수들의 동작에 그저 넋이 나간다. 얼음 요정인들 이토록 자유자재할까. 어떻게 여기서 기술의 정확성과 예술성이 매김질 될까. 미끄러지며 냅다 활달히 달리는 그 모습에서 우리네의 바느질이 오버랩 된다. 깁고, 박고, 호고, 공그르고. 때로는 휘감치기에다 감치며 누비고 그런 후 마무리 한 끝에 우리 옷의 맵시가 태어나듯 피겨스케이팅의 맛과 멋은 싱글이든 페어든 아이스댄싱이든 얼음판을 마음껏 누빈 끝에야 비로소 맛볼 수 있지 않는가. 정해진 도형을 그려도, 7가지 요소를 포함한 연기를 해야 하는 쇼트든, 자유로이 활주하는 자유종목이든. 도약, 회전, 착지. 어느 것 하나 결코 소홀할 수 없는 경기다. 그러다가 눈 코 뜰 새 없이 다른 동작으로 이어지는 경기. 보는 이들에게는 늘 아름다운 잔영만 남겨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하는 매력적인 경기. 미끄러지며 다른 동작으로 옮기는 선수들의 율동에 정신을 팔다보면 어느 틈에 도약하고, 어느 틈에 회전하고, 어느 틈에 착지한다. 간혹 넘어져 애간장을 태우기도 한다. 그러나 김연아는 이럴 경우에도 아주 태연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 다시 관중들의 갈채를 받아 낸다. 왜 그럴까. 늘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오는 결과다. 어린 나이에. 저런 용기가 솟음친다는 것은 평소 얼마나 자기와의 싸움에서 스스로를 담금질했기 때문일까. 이동주는 '산조4'에서 "저리고 슬프기야/ 얼음 밑의 미나리순"이라고 읊었지만 얼음위의 김연아는 제비처럼 거침이 없었다. 거칫거리다 보면 아사다 마오가 순식간에 따라온다. 안 돼! 4대륙피겨선수권 대회를 거머쥔 후 이어진 갈라쇼에서도 김연아는 혼신의 연기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절정의 컨디션. 오므리는 손끝에서도 곡선은 느껴지고. 스케이트 뒷 굽을 잡고 회전하는 우아한 모습. 날쌘 빙판의 미끄러짐에서 어떻게 저런 미려한 곡선이 탄생하는 것일까. 그렇다. 곡선은 직선에 의해 가장 수려한 곡선을 만드는 것이다. 직선의 가장 아름다운 미끈한 각선에서 스텝을 밟아도 그 선은 율동미 넘치는 곡선. 하물며 넘치는 자신으로 완벽에 가까운 연기력을 과시하며 현란하다 못해 빙판을 이불인양 공그르고 간간이 맵자한 연기까지 보이는 것이 앙증스럽다. 잘 쓰다듬은 머릿결은 바람을 가르기 좋아 보인다. "물 넘듯, 그대는/ 첫김 서린 목욕물 넘치듯/ 발가벗고 앉아서 머리를 빗는다./ 그대 머리 숱은/ 잎 핀 수양버들의 물오른 가지로 치렁치렁 늘어서서/ 빗질하는 그대 손가락 마디의/ 주름살 길로 비켜 나와/ 물 넘듯, 그대는 해를 옮겨 얹힌다." 이윤호의 '봄비 소곡(小曲)'이다. 내달이면 3월. 피겨세게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물 오른 수양버들가지 마냥 얼음위의 김연아는 그 때도 역시 우리들의 희망으로 달려오지 않을까. 너절하고 시시콜콜한 숱한 희망보다는 오지게 오진 희망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저 차디찬 얼음판을 점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 때 마다 포효하듯 솟구치는 얼음 알갱이들. 그마저 눈부시다. 김연아에 이런 신기를 연희하도록 자신을 내 준 얼음판. 프로스트는 '불과 얼음'에서 "세계는 불로 끝난다는 사람도 있고 얼음으로 끝난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맛 본 욕망을 두고 말하면 파손을 위해서는 얼음도 또한 위대하며…"라고 노래한 것이 너무도 실감난다. 빙판의 위대함. 얼음의 위대함. 그를 빙씨자(氷氏子)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모두들 기억한다. 경기와 갈라쇼에서의 김연아의 마지막 모습. 당당하고 진정한 용기만 묻은 그 모습. 발의 동작에서 이어진 팔꿈치와 손끝의 맺음이 탄생시킨 저 곡선의 휘황한 결과. 마치 세상의 희망이 저 곡선에 있음 같은. 저 자신만만함. |
/글=김채한 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사진=연합뉴스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