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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꽃봉오리
눌재상주사랑
2009. 3. 2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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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가 돈다…터질 듯 미어터질 듯 횃불 같은 꽃봉오리에 생기가 돈다 그 모양이 그 낌새가 보통이 아니다
목련나무에 생기가 돈다. 잎사귀 하나 달지 않아도 생기가 돈다. 터질 듯, 미어터질 듯. 횃불 같은 꽃봉오리가 생기를 돌게 한다. 휘 말아 오르는 모양. 그 낌새가 보통이 아니다. 탱탱해 보이는 것도 것이려니와 정작 만져보면 말랑말랑. 봄의 느낌이 수액처럼 팔뚝을 오른다.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서 목련이라고는 하지만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아서 목필로도 불린다. 아무리 황모필이 좋다지만 그 붓끝이 어디 목련 꽃봉오리 끝만큼이나 하랴. 아직 목련 꽃봉오리로 글씨를 썼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걸로 쓴 글씨. 어떤 글씨가 될까. 면상필(面相筆)도 가능할까. 간필(簡筆)로도 충분할까. 유심필이며 무심필, 화문필이며 반죽필보다 못할까. 중국서 좋다는 붓 황영(黃潁)으로 쓴 글씨에 비할 바가 안 될까. 진나라 때 몽념(蒙恬)이 양털과 토끼털로 붓을 처음 만들었다는데 그 후로 족제비, 쥐, 늑대, 사슴, 호랑이, 꿩 등 온갖 동물 털로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 목련꽃 봉오리로 붓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글 잘 쓰는 사람 필묵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목련꽃 봉오리 끝에 먹을 묻혀 묵향을 내 보는 것도 하등 나쁠 것이야 없다. 이 봄에. 중국의 문장가 이백(李白)도 붓에서 꽃이 피는 꿈을 꾸고 난 후로 문재가 나날이 발전했다(李白 夢筆生花 自是才思日進)는 이야기가 '사문유취'에 전한다. 우리들은 늘 꿈꾸지 않는가. 운이 좋으면 목련 꽃 봉오리가 활짝 꽃으로 피는 꿈을 꿀 수도 있다. 노곤해지기 쉬운 이런 봄날. 한바탕 이런 꿈이면 얼마나 좋으랴. 더욱이 꽃봉오리를 붓으로 여겨 그 글씨가 용사비등(龍蛇飛騰· 용과 뱀이 나는 듯 글씨가 힘차고 잘 된 것)이든 춘인추사(春蚓秋蛇· 봄 지렁이와 가을 뱀으로 글씨가 가늘고 힘없는 모양)든. 머잖아 지금의 목련꽃봉오리는 환한 꽃을 피운다. 희고 아름다운 꽃. 학창시절 그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는 노래에 가슴 벅찼던 기억들. 지금의 e메일 시대에는 전혀 어울릴 것도 같지 않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밤새워 그런 편지들을 썼을까. 양희은도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하며 다부진 목소리로 똑 소리 나는 '하얀 목련'을 지금도 가끔 부르는 모습을 TV에서 본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그 사람. 누구에게나 있는 그 사람. 그런 목련꽃을 노천명은 수필 '목련'에서 "사람도 이처럼 그윽하고 품이 있어지고 싶지만,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된다는 것 역시 쉬운 노력이 아님을 느낀다"며 술회했다. 향기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풀 발레기가 '바람의 요정'에서 읊은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불어온 바람 속/ 살은 듯, 죽은 듯/ 나는 향기"같은 사람은 대관절 어떤 사람일까. 그저 목련꽃 그늘 아래서 화려하게 장식한 화문필 꿈이나 꾸든가 헤어지자는 편지를 읽어도 목련꽃 향기를 머금었다 해서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그 향기들을 감싸고 있다. 목련 꽃 봉오리는 여전히 그 필 때를 기다리며 곡진한 정감과 멋진 감김으로 훌륭한 곡선을 그리며 싸안고 있다. 그 안에는 여전히 해맑고 흰 눈처럼 맑고 깨끗한 자세로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의 목과 같이 우아하고 고매한 꽃봉오리가 터지면 목련꽃들은 아늑히 연꽃 같은 자태로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보드라운 꽃 이파리들 사이로 바람의 속도만큼 천천히 혹은 빠르게 향기를 전한다. 한흑구는 이런 목련꽃의 모습을 "어쩌다 두부 장수의 종이 거꾸로 세워진 것 같은 모양이 하도 아름답기만 했다…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향내가 코를 통해서 나의 가슴 속 깊이 숨어드는 것 같다"고 감격해 했다. 노자영의 '산가일기'에도 목련꽃 봉오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뜰 앞에 목련이 피었다. 백주의 이슬이 청엽 위에 대굴거리고 무한한 순결을 자랑하는 하얀 꽃봉오리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피어오른다. 하늘빛 잎사귀, 눈빛 봉오리, 아름다운 조화 위에 자랑스러운 호화의 위세, 나는 아침 뜰 앞에 서서 그 꽃봉오리를 여러 번 만진다. 그리고 떠나기 어려운 듯이 이 꽃 밑에 한 시간이나 머뭇거린다." 박용래의 시 '목련'은 또 어떤가. "솟구치고 솟구치는 옥양목 빛이라/ 송이송이 무엇을 마냥 갈구하는 산염불(山念佛)이랴/ 꿈속의 꿈인 양 엇갈리는 백년의 사랑/ 쑥물 이끼 데불고 구름이랑/ 조아리고 머리 조아리고 살더이다/ 흙비 뿌리는/ 뜰에 언덕에". 목련이 피려는 새 봄이 아니고는 얻을 수 없는 감응. 인간적인 감응. 버나더 쇼에도 그런 감응이 있었다. "내가 죽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택일하라면 나는 지옥을 택하겠다"는 그 역설의 인간적인 감응. 지옥에서 다시 그 지옥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필요성이 바로 인간적이라는 것에 공감은 간다. 그렇지만 목련의 감응은 옥양목 같다질 않는가. "꽃이 필 때/ 목련은 몸살을 앓는다/ 기침할 때마다/ 가지 끝 입 부르튼 꽃봉오리/ 팍 팍, 터진다//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 당신 살갗에 돋던 소름을/ 나는 기억한다/ 싱그럽게 눈 뜨던/ 소름은 꽃이 되고/ 잎이 되고 다시 그들이 되어/ 내 끓는 청춘의/ 이마를 짚어주곤 했다// 떨림이 없었다면/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다/ 떨림이 없었다면/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툭, 툭, 나락으로 떨어진다// 피고 지는 꽃들이/ 하얗게 몸살을 앓는 봄 밤, 목련의 등에 살며시 귀를 대면/ 아픈 기침소리가 들려온다/"(박후기의 '꽃기침'전문). 꽃샘바람이 한 번씩 잊으려다 지나가는 봄 날. 사자처럼 왔던 3월도 벌써 중반을 넘으려 한다. 나머지 보름이나 넘게 남은 날들은 어린 양이 돼 잔인한 4월을 맞을 테지. 뭐 어떠랴. 저렇게 뭉실거리며 스스로 충만해 하는 목련꽃 봉오리들. 숭고한 곡선을 이루며 골목길 담 머리서 세상에 가득 향기를 전하려는 날도 머지 않았다. 꽃기침 소리를 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