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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논술에 빠지다] 아름다움으로부터의 자유

눌재상주사랑 2009. 4. 14. 15:38

[예술, 논술에 빠지다] 아름다움으로부터의 자유
 데미안 허스트 展
데미안 허스트 작품 '포르말린 속 상어'
데미안 허스트 작품 '포르말린 속 상어'
얼마 전 흥미로운 전시회에 갔습니다. '데미안 허스트 전(展)'입니다.

1990년대 세계미술의 이목을 영국으로 집중시킨 장본인인 그도 변화와 발전이 가장 어렵다고 토로하더군요.

그는 1988년 런던 외곽의 한 창고에서 열린 '프리즈(Freeze) 전'과 1997년 영국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센세이션(Sensation) 전'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존재의 불확실성에 대한 문제들, 즉 사랑, 삶, 죽음, 명예, 배신 등에 관한 문제들을 보편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가장 낯선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가령, 'Natural History 자연사' 연작에서는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죽은 상어의 사체를 넣고 유리 상자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서 불가능한 육체적 죽음을 표현하거나, 죽음에서 가장 못 견딜 것은 고립이라는 전제하에 엄마소와 송아지를 세로로 잘라 서로 떼어놓는 충격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답니다.

대구 전에는 자극적인 작품은 아니었으나 인간의 두개골에 수 백 마리의 죽은 파리 떼가 달라붙어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For the Love of God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작품은 인간의 두개골에 8천600개의 다이아몬드를 붙여놓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작품으로 기록되기도 했지요.

사실 현대미술에서 대중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아름다움에 대한 문제일 겁니다. 정제된 아름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작가의 작품은 불편하고 두렵고 밀실공포를 유발하는 느낌에서 오히려 보편성을 끄집어 내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유리 막 속에 작품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은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유리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다는 생각, 견고하나 볼 수 없다는 역설, 유리에서의 그 간극이 나의 작품에 상당히 중요하다'라는 그의 말처럼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에선 언제나 무언가의 거리를 두고 유지하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삶과 죽음 사이에서 늘 우리를 긴장시키고 파괴와 건설을 거듭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 불편한 아름다움을 누군가 내보이는 순간 이미 우리의 불안과 공포는 위안을 받기 시작하지요.

그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는 웃음보다는 울음의 늪이 더 많이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데미안 허스트에게 굳이 따라붙는 수식어가 '젊은 작가'인데 인터뷰에서 그는 오히려 그 말에 대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영국작가라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젊은 작가라고 하는가. 젊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 속에는 그의 작품이 어린 작가의 치기어린 행위로 보는 것을 두려워함인지 잠시 생각하게도 했습니다.

지금쯤 나른하다 못해 불온한 봄기운에 따분해있다면 한번쯤 이 특별한 작가의 '충격가치(shock value)'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강문숙(시인·예술가곡회 이사)

2009-04-13 07:56:39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