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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中 란저우(蘭洲)

눌재상주사랑 2009. 4. 17. 01:09
[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中 란저우
천리마처럼 치닫는 중국… 서부 대개발 전진기지
  • ◇세찬 물결을 일렁이는 중산교와 황허강.
    ‘마답비연(馬踏飛燕)’. 서역의 한혈마가 하늘을 나는 제비를 사뿐히 밟으며 내달리고 있다. 란저우 박물관에 있는 이 작은 청동상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만약 한 무제가 장건을 서역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아니 중국이 당시의 전투 양상을 바꿔놓은 서역의 한혈마를 구하지 않았다면, 이후 2000년간 동아시아를 호령하던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가능했을까?

    말의 시대. 같은 시기 로마가 중장보병을 주력으로 삼아 유럽을 제패했듯, 한나라 군대의 주력도 보병이었다. 당시의 기마란 장군들이나 타는 일종의 의전 도구였을 뿐, 전쟁에 광범위하게 쓰일 만큼 충분한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적으로 소수였던 흉노가 중국 북부를 제패하고, 나중에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속시킬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마병의 힘이었다. 사람의 발에 비해 몇 배나 빠른 기마병은 요즘 기준으로 속도가 빠른 전투기였고, 저돌맹진할 수 있는 힘은 탱크에 가까웠다.

    ◇칭키즈칸이 지었다는 백탑, 란저우의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다.
    한나라에 앞서 중국을 통일한 진의 시황제는 당시 제국의 북부를 점령한 흉노의 기마병을 두려워해 아예 담을 쌓아버렸으니 그게 바로 오늘날의 만리장성이다. 그쯤에서 담쌓고 끝났다면 우리의 고조선도, 이후 끊임없던 중국의 한반도 침략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제국으로 발돋움하기를 원했고, 그러기에 말은 더욱 절실했다. 당시 중국인들이 상상하던 말의 모습은 바로 ‘마답비연’에 잘 나타난다. 말이 내달리지 않고 하늘을 나는 듯 보인다. 어찌나 빠른지 날래기로 유명한 새, 제비를 도움닫기에 사용하고 있다. 아마 운 나쁜 제비는 저기압의 날씨에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하강했으리라.

    중국의 욕망. 당시 중국인의 사고체계에서 최고의 말은 하루에 천 리를 가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달리는 천마여야 했다. 그 집념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서역을 정벌하고 1500년이나 지나서 만들어진 소설 삼국지연의에 여포가 한혈마인 적토마를 타고 천하를 호령한다는 설정이 만들어졌을까?

    장건을 통해 외교술로 서역의 한혈마를 얻으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무제는 재빠르게 군사작전을 승인한다. 흉노를 정벌해 주변국들을 복속시키고 한혈마를 구해오자는 웅장한 프로젝트. 석유전쟁이라는 오명이 붙은 2차 걸프전만큼이나 신속하게 급조한 대의명분에 의한 전쟁이었다.

    무제의 인척이었던 곽거병이 이 작전의 총사령을 맡아 서역 전진기지인 란저우로 진입했다. 물 설고 길 선 란저우, 당시 중국인의 세계관에서 여기는 세상 끝이었다. 세상 바깥쪽이라는 세외변경(世外邊境). 두려움에 떨던 병사들은 설상가상으로 식수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무모할 정도로 길어진 병참선 때문에 5만의 전투병력을 지탱하기 위한 수송부대가 이미 수십만명에 달했다. 전설에 의하면 대군을 잃게 생긴 곽거병이 답답한 마음에 산에다 칼을 꽂자 그곳에서 물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그것도 다섯 곳에서. 해서 산 이름은 오천산(五泉山)이다.

    ◇란저우 시가지 모습, 저 멀리 오천산이 보인다.
    전설과 달리 실제 오천산에 가보니 이해 못 할 풍경이 펼쳐졌다. 오천산 바로 아래 황허의 상류가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고 있었다. 지나친 곽거병의 영웅화일까? 서울처럼 황허가 시내의 남북을 나누는 란저우, 아니 오천산에 물이 부족할 리는 아무리 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란저우 방문은 이번이 3년 만이었다. 3년 전 방문했을 때, 란저우 박물관은 수리 중이었다. 볼품없이 좌우로 길기만 했던 도시는 그새 더 많은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2000년 전 서역 진출의 전진기지였던 란저우는 이제 서부 대개발의 전진기지로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었고, 끊임없이 서쪽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트럭의 행렬이 도로의 양끝을 메우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중국의 서부 대개발의 역사야말로 2000년 이상이 아닐까? 장건과 곽거병의 노력으로 흉노를 몰아내고 건설했던 실크로드는 단지 한?당 시대에만 유효했을 뿐, 중국의 서역 진출이 물거품이 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 속에서 중국은 단지 란저우만을 지키기도 버거웠다. 

    당나라 말기에는 오늘날의 티베트인 토번이 이 일대를 점령했고, 그 이후 란저우 서쪽은 중화의 영역이 아니었다. 무제 이후, 대대적인 서역 개발을 추진한 이는 한족이 아니라 여진족인 청나라 황제들이었고, 뜬금없게도 공산주의자인 마오쩌둥이 이를 계승했다.

    란저우를 발전기지로 삼는 서부 대개발은 실은 한 무제 이래로 내려온 중국의 꿈. 중국이 분열될 때마다 반독립 지대로 남는 이 일대에 영원한 중국령이라는 쐬기를 박기 위한 작업이다.

    온통 공사장, 그러지 않아도 잿빛 실크로드 초입은 언제나 황사가 낀 것처럼 희뿌옇다. 매캐한 공기로 칼칼해진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유명한 란저우 쇠고기탕집으로 향했다. 그저 란저우 토박이이나 즐겨 찾던 이 집도 이제는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베이징 등지에서 온 외지 여행객들이 손님의 반을 차지한다. 하긴 이 집도 체인화되어 대도시로 진출하는 중이니, 여기 손님들은 분점과 본점의 맛 차이를 구별하기 위해 방문한 식객들일 것이다.

    조만간 란저우에 부는 황량한 모래바람은 사라질 테다. 자연이야 별일 없이 황량하겠지만, 인간의 힘으로 만든 초대형 도시는 반들반들한 호텔 로비 같은 바닥을 건물에 선사하겠지. 그때쯤 실크로드라는 이름에서 입 안에 쓸리는 모래의 흔적을 연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개발은 늘 본래의 모습을 버리는 것이었으니까.

    결국, 마답비연은 욕망을 상징했다. 이제 개발이라는 말(馬)은, 실크로드 제비로 상징되는 살던 옛 모습을 밟고 앞으로 내달리고 있다. 끝이 어디일까? 마답비연의 날렵한 조각이 왠지 낯설게 보이고 있었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란저우 쇠고기탕면.
    인천공항에서 란저우로 직접 취항하는 비행기는 없다. 한때 장안으로 불리던 시안(西安)까지 직항기가 운행하고 있다. 시안에서 란저우까지는 기차로 6시간가량 걸린다. 운 나쁘게 버스를 타면 13시간가량이 소요되니 주의하자.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란저우는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외국계의 번듯한 5성호텔의 수는 태부족이지만, 지방도시 특유의 정감 어린 느낌이 안락함을 대신하고 있다. 란저우의 쇠고기탕면(蘭州牛肉麵)은 반드시 먹어야 할 전통 요리 중 하나다. 쇠고기와 무를 넣고 진득하게 우려낸 국물에 수타면을 말아주는데, 한국에서 먹는 쇠고기 무국의 매콤한 버전으로 우리 입맛에도 딱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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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9.04.16 (목) 18:29, 최종수정 2009.04.16 (목)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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