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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여성] 앨머 테디마―더 이상은 안 돼요사랑하는 여인의 손등에 입
눌재상주사랑
2009. 5. 8. 15:53
[명화 속 여성] 앨머 테디마―더 이상은 안 돼요
사랑하는 여인의 손등에 입맞춤… 숨겨온 뜨거운 열정 전달
관련이슈 : 명화 속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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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평소 좋아하던 남자와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갑작스런 일기변화로 막차까지 끊겨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자 평소 숫기가 없던 남자는 몹시 당황했다. 여자는 부끄러워하면서 좁은 방의 가운데에 선을 쫘∼악 그어 놓고 말했다. “이 선 넘어오면 짐∼승.” 다음날 아침, 남자는 정말 선을 1㎝도 넘어가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여자가 눈을 흘기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짐승보다 못한 놈.”
연애시절의 백미가 무엇이냐 꼽는다면, 단연 상대와의 밀고 당기기 심리전이라 할 수 있겠다. ‘너와 나’에서 ‘우리’가 되기까지 수없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고민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상대의 안색과 말투를 살핀다. 어쩌다 위 콩트처럼 상대와의 신호가 어긋나기라도 할 때면 그야말로 지옥체험이 따로 없다.
19세기 네덜란드 화가 앨머 테디마는 ‘더 이상은 안돼요(Ask me no more)’에서 이런 두려움 섞인 설렘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준다. 가까스로 여인의 손등에 키스하는 남자는 그동안 여인을 향해 숨겨온 뜨거운 열정을 신중하게 전하고 있다. 여인은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모양새지만, 홍조를 띤 미소 속엔 행복감이 그득하다. 잔 떨림 덕에 오른쪽 다리는 살짝 들려 있고, 가볍게 모아진 두 발이 긴장과 흥분을 동시에 전달한다. 코발트 빛 하늘과 바다는 시작되는 연인들의 미래를 청아하게 장식해 주고 있다.
받아 줄 듯 말 듯, 사랑한다 말할 듯 안 할 듯하고 있는 연애담은 당사자들은 물론이요 주변인들의 애간장도 녹게 한다. 흔한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들이 매번 ‘쌀로 밥하는’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늘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다만, 요즘 미디어를 통한 연애담은 내용보다 ‘누가 얼마나 벗었느냐’, ‘애정 신을 얼마나 디테일하게 보여주느냐’에 혈안이 돼 있을 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을 악착같이 보여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시시콜콜한 정보를 집요하게 까발리는 현대 대중매체의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외설적이라고 비판한다. 유명인의 삶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온갖 추문을 파헤치거나, 이제는 대놓고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인간의 호기심과 본능을 자극하는 포르노의 관음적 성향을 닮아간다.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이런 시류에 대한 반발인지, 최근 미국에서는 색다른 로맨스소설이 기록적인 판매고를 세우고 있다고 한다. 연인 간에 손 한 번 잡는 데도 뜸을 들이고, 청혼 전까지는 키스도 한 번 하지 않는 고강도의 ‘뜸들이기’ 로맨스로, 개신교 교파 중 하나인 아미시(Amish·암만교) 신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아마시들은 텔레비전, 가전도구 등 문명의 이기는 물론 편하게 옷을 입을 수 있는 지퍼도 거부한다.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타고 다니며 보석류의 치장도 하지 않는다. 이들의 조용하고 느린 생활이 아마도 바쁘고 고된 현대인들을 위로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필자 어린 시절에는 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기는 줄 알았고, 남녀가 서로 눈만 마주쳐도 얼굴이 곧 홍당무가 되곤 했다. 뭐든지 빨라야 미덕인 사회, 자극만 앞서고 감동은 메마른 사회. 아미시 신자들이나 앨머 테디마의 연인들처럼 조심스러운 설렘이 간절하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기사입력 2009.05.07 (목)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