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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한 ‘뒤척임… 나희덕 새 시집 ‘야생사과’

눌재상주사랑 2009. 5. 14. 20:13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한 ‘뒤척임… 나희덕 새 시집 ‘야생사과’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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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43)이 5년 만에 들고 온 시집 <야생사과>(창비)는 새로운 시의 몸과 마음을 얻기 위한 시인의 뒤척임으로 가득하다.

“예전에는 시라는 게 나의 경험·정서를 정제된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되새김질하고 정제하는 과정이 한편으로 시적 대상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 죽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시 ‘쇠라의 점묘화’에서 “언제부턴가 선이 무서워졌어요 거침없이 달리며 형태와 색채를 뿜어내는 선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사물에 대한 의심이 많아졌다고나 할까요”라는 구절과 시 ‘손바닥이 울리는 것’의 “서 있는 일에만 몰두했던 나의 수직성”이란 구절을 봐도 시인은 ‘선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지우고 흘려내는 것을 택했다.

“당신 몸 속에 흘러들어/ 메뉴판 가득 적힌 당신을 주문하고/ 나를 후루룩 마셔버리고 싶어!…당신 눈 속에 스며 나를 스스륵 지워버리고 싶어!/ 벗어나도 벗어나도 내 속에 갇혀 있는/ 나를 건져내고 싶어!”(‘존 말코비치 되기’)

시인은 “시를 쓰는 과정에서 내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나 타자들에게 열려 있는 내면적 상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치 과수원에서 기른 사과 대신 타국에서 낯선 이들에게 건네받은 ‘야생사과’를 먹는 것처럼 타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시인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붉은 절벽으로 돌아가며/ 곁에 선 나무에서 야생사과를 따주었다…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 입 베어물었다/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 그들이 사라진 수평선, 내 등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야생사과’)

시집에는 물의 이미지로 가득한데, 그것은 “삶의 누수를 알리는 신호음”처럼 자신을 흘려보내는 과정이고 동시에 “빈혈의 시간으로 흘러드는 낯선 핏방울들”(‘물방울들’)처럼 나 자신을 다시 채우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활발한 생명력을 향해 가려고 한는 방향전환만 했습니다. 힘겹게 물줄기를 찾았으니 이제는 자유롭게 흘러가는 대로 둬야죠. 시는 늘 무겁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시를 통해 행복해지고 새로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