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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라오스 루앙프라 방새벽녘 스님들 맨발의 탁
눌재상주사랑
2010. 1. 9. 11:14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라오스 루앙프라 방
새벽녘 스님들 맨발의 탁발 행렬 경외감
관련이슈 :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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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반, 여명이 밝기도 전에 사원에서 법고소리가 들려온다. 여섯 시, 고인 듯 천천히 흐르는 아침 안개 속에서 스님들의 탁발이 시작된다. 루앙프라방의 수백 명이 넘는 스님들이 거리로 나와 탁발을 하느라 긴 행렬을 이루지만 말이 없으니 고요하고 가든한 맨발의 행렬이라 경외마저 들게 한다. 그때 마을의 가난한 아이들이 빈 그릇을 들고 나와 벌떼처럼 그 행렬을 따른다. 어린 스님들은 자신의 발우에 담긴 밥을 한 움큼 쥐어 배고픈 아이들의 빈 그릇에 넣어준다. 그러고 나면 루앙프라방의 상점들도 문을 열고 쌀국수 냄새와 바게트 빵 굽는 냄새를 풍긴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된다.
# 내남없이 나누는 삶
스님들이 발우를 들고 맨발로 거리를 지나가는 동안, 옷매무새를 정갈히 한 루앙프라방 사람들은 길에 무릎을 조아리고 앉아 음식을 공양한다. 대나무 밥통에 뜨끈한 찰밥을 담아 나와 그것을 한 주먹씩 떼어내어 지나가는 스님들의 발우에 일일이 넣어준다. 그 행렬의 중간엔 신발조차 없는 가난한 아이들이 빈 그릇이나 꾸깃한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다. 스님들은 자신의 발우에 담긴 밥을 맨손으로 푹 퍼서 그들에게 나누어 준다.
◇새벽 여섯 시, 주홍빛 법복을 걸친 스님들의 맨발 행렬은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말이 없는 스님들의 긴 행렬을 보면 삶의 경건함이 느껴진다.
점심 무렵, 한 사원의 뒷마당에서 만난 어린 스님은 나무에 불을 지펴 밥을 찌고 있었다. 아침에 공양 받은 찰밥을 한데 모아 한번 더 쪄서 먹는다고 했다. 찰밥냄새가 구수하게 사원 안에 흘렀다. 스님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일어서는데 각자의 접시에 밥이 한 덩이씩 남겨 있었다. 절에서는 밥◇푸씨 언덕에서 내려다본 루앙프라방. 황금빛 사원과 프랑스식 저택이 어우러진 이 도시에선 모든 것이 풍요롭다.
그때, 그날의 공양 담당인 밥을 찌던 스님이 나타나 그 남은 밥들을 한 그릇에 모았다. 그러자 이웃의 가난한 이들이 찾아와 그 밥을 가져갔다. 스님들이 조금씩 남긴 밥이 한 그릇의 밥이 되어 가난한 영혼을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 스님들은 일부러 밥을 조금씩 남겼던 것이다.
아침에 밥을 지어 나온 여인의 손을 지나 스님들의 손을 지나 다시 이웃의 배를 채우게 된 밥 한덩이의 여정이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면 루앙프라방 사람들은 모두가 한솥밥을 나눠 먹는 셈인 것이다. 이들은 한 식구처럼 내남없이 나누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루앙프라방 사람들에게선 움켜쥔 주먹보다는 새까맣게 드러난 맨발이 먼저 보인다.
# 순수함·느림의 여유 매력적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라오스. 그래서 30개가 넘은 황금빛 오래된 사원이 있는 루앙프라방 곳곳엔 프랑스식 저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루앙프라방이라는 도시는 사원의 웅장함과 프랑스식 저택의 우아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루앙프라방 사람들의 순수함, 그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여유가 곁들여진 숙소와 음식, 그것이 여행자의 발목을 잡는 루앙프라방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침엔 거리 곳곳에서 파는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점심엔 시장거리에서 쌀국수를, 저녁엔 강변에 앉아 맥주와 함께 그린파파야 샐러드가 곁들여진 라오스 요리를 먹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히는 왓 씨앙통. 우아한 지붕과 섬세하게 꾸며진 사원의 외벽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작고 아담한 불당, 그리고 마당의 두 개의 탑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왓 아함에서 만난 어린 스님들은 공을 차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법당에서 홀로 기도하는 어린 스님을 보았다. 기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물었다.
“부처님을 사랑하니?”
“아니.”
일초의 쉼도 없이 돌아온 대답에 아찔했다. 누구든 평생에 한번은 잠깐이라도 승려가 되어 수행해야만 하는 나라. 가난한 집에선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아이를 사원으로 보내는 나라. 이곳에서 아이들은 영어 공부를 하며 수많은 꿈들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주홍빛 법복을 펄럭이며 뛰어다니는 어린 스님들, 강가에서 수영을 하는 어린 스님들의 눈동자가 까맣게 빛나는 이유이리라.
오후 다섯 시 무렵이 되면 거리엔 노천시장이 열린다. 산에서 내려온 소수민족 사람들이 손수 만든 옷, 가방 등의 수공예품을 파는 시장이 넓게 펼쳐진다. 그곳에선 어린 여자아이들이 바느질을 하며 자신이 만든 바지를 사라며 얼굴을 붉힌다. 나는 통풍 잘되는 그녀의 바지를 사 입고 푸씨 언덕을 오른다. 해가 질 무렵이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언덕, 사람들은 그곳에서 해지는 루앙프라방을, 메콩강을 바라본다. 그리고 골목골목마다 펄럭이는 아이들의 법복을 본다. 그 펄럭임이 눈물겹지만은 않다. 그것은 무소유를 아는 맨발의 펄럭임이므로. 나는 푸씨 언덕에 올라서야 루앙프라방에 대한 모든 경계심이 허물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루앙프라방 사람들처럼 슬리퍼를 끌고 골목을 돌고 돌며 스님들과 공을 차고 놀기도 하고 강가에서 물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흘 째 되던 날엔 이내 그 슬리퍼도 벗어던지고 맨발이 되었다. 루앙프라방은 그런 곳이다, 누구든 새까만 맨발이어서 아름다운 곳. 얼마 전에 루앙프라방에 다녀온 한 친구는 말했다. 집을 팔고 모든 짐을 싸서 루앙프라방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고.
여행작가·시인
〉〉 빡우동굴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4000개의 불상을 가득 모셔 놓은 빡우동굴에 닿는다. 불빛 한 점 없는 동굴 속에서 만나는 불상은 가만히 두 손을 모으게 한다. 새해엔 현지인들이 이곳에서 소원을 빈다. 여행사의 반나절 투어를 이용하면 동굴로 가는 길에 술 빚는 마을도 둘러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