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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다뉴브 강 바하우 계곡의 풍광 ‘백미’… 유네스코 ‘문화경

눌재상주사랑 2010. 1. 29. 18:26
오스트리아, 다뉴브 강 바하우 계곡의 풍광 ‘백미’… 유네스코 ‘문화경관’ 지정
천년 역사 멜크 수도원 신성함의 극치
소설 ‘장미의 이름’ 무대 장서 10만여권 빽빽 중세 문화의 요람
  • 여행과 독서는 ‘이란성 쌍둥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는 점에서 닮았다.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 가능한 것도 비슷하다. 간혹 짙은 고독이 몰려올 때는 흡사 일란성 쌍둥이 같다. 외부에 있으면서 ‘나’의 내부로 찾아드는 게 여행과 독서다. 둘이 결합하면 더 환상적이다. 낮의 열정을 뒤로하고 낯선 곳 숙소에서 펼쳐드는 책이 여행의 외로움과 묘하게 어울린다. 오스트리아를 찾고 나서 못내 아쉬웠다. 이번 여행에서 3권의 책을 챙겼으나, 가슴속에 담아둔 책을 미처 가져오지 못해서였다. 가슴을 공허하게 한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명작 ‘장미의 이름’. 명작 탄생에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멜크(Melk) 수도원을 접하기로 했을 때, 아쉬움은 책망으로 이어졌다. 책에서 읽은 내용은 생각나는데, 문구는 가물거리기만 한다.

    ◇유럽을 동서로 흐르며 교류에 일익을 담당해 온 다뉴브 강도 추위에 움츠러들었다. 다뉴브 강 윗쪽으로 눈속에 파묻힌 포도밭이 눈에 띈다.
    정작 멜크 수도원은 바하우(Wachau) 일대를 여행하는 프로그램 중 맨 마지막 일정이었다. 바하우 계곡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푸른 다뉴브강을 언급해야 한다. 바하우는 다뉴브강이 빈에 도착하기 직전인 멜크에서 크렘스(Krems)까지의 35km 구간이다. 2850km 길이인 다뉴브 강의 극히 일부분이다. 백미로 꼽힌다. 2000년 유네스코가 ‘바하우 문화경관’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여행자로서는 오스트리아 9개주의 하나인 ‘하부 오스트리아’(Lower Austria)의 핵심이다.

    지구촌을 강타한 한파 덕분에 다뉴브 강을 오르내리는 배는 손님을 태우지 않았다. 철도나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주 관광청의 도움으로 전용 버스를 탔다. 여행의 출발은 동쪽인 크렘스에서 시작했다. 동화 같은 마을을 2시간 동안 거닐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흔치 않은 겨울 날씨라고 하더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오그라든다. 추위를 녹이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혼자 관람하기엔 무서울 정도로 긴 멜크 수도원 화랑
    크렘스는 차라리 ‘작은 역사 도시’다. 인구 3만명이 안 된다. 화폐를 주조하던 12세기 무렵에는 빈처럼 큰 도시였다고 한다. 상상이 안 된다. 아담하기만 한 도시인데…. 바로크와 고딕풍의 교회가 눈에 띈다. 고풍스런 골목 주변을 메우고 있는 키 작은 파스텔톤의 건물들과 잘 어울린다. 좁은 골목과 작은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흐른다. 불현듯 서울의 북촌 일대가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삼청동과 가회동이 이랬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젊은이와 외국인이 삼청동 골목골목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크렘스도 그랬다. 이 소도시에 대학교까지 있다. 우리의 북촌에도 작은 대학 하나 있으면 어떨까. 아참, 있다. 삼청공원 감사원 근처의 북한대학원대학교. 정말 닮았다. 길 옆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파는 모양까지도 북촌과 비슷하다.

    이런 흐름에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 다뉴브강이 고요하기만 하다. 포도밭으로 유명한 바하우 계곡 주변 지역은 새하얀 눈이 점령했다. 한국의 다랑논 같은 계단식 포도밭이 여름과는 다른 빛깔과 모양을 만들어낸다. 여름의 청포도가 한없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면, 겨울의 포도밭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점심을 초대한 작은 호텔의 식당에서 그뤼너 펠틀리너를 권한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샤르도네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 와인이다. 내친김에 와인을 제대로 경험해야겠다. 바하우의 대표적인 와이너리인 ‘바인 진’(Wein Sinn)을 찾았다. 와인 제조 공정을 둘러보고, 와인의 역사를 듣는다. 와인의 역사를 들으면서 와인은 단순히 ‘마실 거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와인은 농부들의 삶과 문화며, 땀과 노력의 결정이라는 게 체감된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와인이 온몸으로 스며들 즈음, 버스에 오른다. 길 양쪽에 눈이 쌓여 버스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강변을 따라 좁은 산책로와 언덕을 20분쯤 걸었다. 다뉴브 강변의 뒤른슈타인(Durnstein) 사원과 마을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뒤른슈타인은 제3차 십자군 전쟁 때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붙잡혀 유폐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멜크 수도원이다. 쌓인 눈 때문에 다뉴브 강 주변에서 조망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에서는 1300년대 이탈리아 수도원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이곳 멜크 수도원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모티브를 제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곳의 실제 모습이 소설의 권두에 수록된 평면도와 크게 다르다는 것은 별개다. 노란색과 흰색으로 채색된 삼각형 모양의 수도원 외벽이 겨울 눈에 더욱 낭만적이다. 음침하고 우울한 색감이 연상되는 소설 속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눈내린 겨울엔 멜크 수도원이 어스름 저녁 속으로 들어간다. 사방이 적막감에 빠져들 때도 멜크 수도원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역사를 알려준다.
    결국 풍경과 함께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책 제목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정한 게 뇌리에 각인됐다는 뒷이야기도 떠오른다. ‘수도원의 범죄사건’으로도 정해보고 ‘멜크의 아드소(책 속 화자)’로 했다가 마지막 순간 떠올라 정한 게 ‘장미의 이름’이었다.

    멜크 수도원은 애초 바벤베르크(Babenberg) 왕조의 궁전이었다. 그러다가 11세기 후반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원이 됐다. 그리고 1000년 가까이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수도원에 들어서니 196m의 회랑이 눈에 띈다. 명소답다. 강력한 종교의 권력이 느껴지는 중세시대의 모습과 시대상이 가득하다. 10개 가까운 방들이 죄다 그런 느낌을 준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이들이 들어오기 전 바벤부르크의 힘이 강렬했던 것을 웅변한다. 10만여권의 장서와 천장의 프레스코. 보물 창고의 매력이다. 1800권에 이르는 필사본도 있으니 고고학자에게는 낙원이다.

    크렘스·멜크(오스트리아)=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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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0.01.28 (목) 21:52, 최종수정 2010.01.28 (목)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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