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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태국 매홍쏜풍광 수려한 산악지대 고산족 소

눌재상주사랑 2010. 4. 16. 15:39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태국 매홍쏜
풍광 수려한 산악지대 고산족 소박한 삶
  • 지구본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이런 곳에 살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높은 산중이나 깊은 밀림 그리고 얼음 위에서도 무리지어 살아가는 게 사람이다. 태국의 매홍쏜은 그런 곳이다. 치앙마이에서부터 차를 타고 산을 넘고 넘어 열 시간여를 달려야만 나타나는 작은 도시. 

    ◇매홍쏜 시장엔 고산족 여인들이 내려와 채소과일을 판다.
    그러나 그 중심가에서도 한 시간은 더 산길을 달려야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에 닿을 수 있는 곳. 그러나 우리가 그곳을 중심이 아닌 변방이라고 치부할 때, 제가 태어난 땅에 발 디디고 평생을 살아가는 그들의 거목 같은 삶은 나를 한 마리 벌레로 만든다. 그곳에선 제 스스로 길을 내고 집을 짓는 벌레도 지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목이 길수록 아름다운 여인들

    ◇매홍쏜 시장에서 바나나 잎에 찰밥을 싸서 파는 고산족 할머니.
    치앙마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370㎞ 떨어진 매홍쏜. 산악지형이 아름답고 동굴과 강이 곳곳에 있어 여행자들이 트레킹을 하기 위해 찾는 이곳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태국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덜 느껴지는 대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면 카렌족, 몽족, 샨족과도 같은 고산족들을 만나 그들만의 화려하고도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다. 그곳은 아이들이 수줍게 건넨 붉은 꽃 한 송이를 손에 쥐고는 마음이 불그스레해지는 곳, 고산족 여인들과 도심에서 온 내가 서로의 옷매무새를 보고 웃다가 손을 맞잡게 되는 곳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산골 마을 같은 곳, 그래서 태국의 여느 곳보다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는 곳이다.

    새벽 안개가 쫑캄 호수 위에서 흘러 왕 쫑끄랑과 왓 쫑캄 사원을 휘감고 돌다 돋을볕 속으로 사라지는 매홍쏜 중심가의 아침. 여인들이 아침밥을 짓는 시간, 나는 소수민족들이 내려와 채소와 과일을 파는 매홍쏜 시장으로 향한다. 여인들은 낯선 이방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나는 그들 속에서 되레 볼거리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위해 눈웃음을 짓는다. 고산족 할머니가 바나나 잎에 싸서 파는 찰밥 한 덩이를 싸들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몸에 12㎏의 쇠를 걸고 살아야 하는 빠동족 여인들. 롱네크(Long Neck)족이라고도 부르지만 사실은 목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어깨가 낮아지는 것.
    고산족 중에서도 카렌족이 사는 나이쏘이 마을로 간다. 마을 입구에 닿자 카렌족 중에서도 목에 쇠를 걸어 목을 길게 늘인 빠동족 여인들이 먼저 보인다. 빠동족 여인들이 목에 몇 겹의 목걸이를 하는 풍습은 남자들이 사냥을 나간 사이에 호랑이한테 물려 갈까봐서라는 설도 있고 빠동족 전설에 나오는 긴 목의 용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떠도는 이야기일 뿐, 왜 이 부족 여인들이 목에 쇠를 끼우고 살아야 하는지는 쇠를 감고 사는 여인들조차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살 즈음부터 쇠를 감기 시작해 성장할수록 점점 늘려 한쪽 다리마다 3㎏씩 양쪽다리에 총 6㎏, 목에 6㎏을 걸게 된다고 하니 총 12㎏이나 하는 쇠를 몸에 걸고 평생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목이 점점 길어져서 우리보다 서너 배는 길어진단다. 그래서 우린 그들을 롱 네크(Long Neck)족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잘못된 호칭이었다. 사실은 목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쇠의 무게 탓에 어깨가 낮아지는 것이란다. 상대적으로 목이 길어 보였던 것뿐이다. 힘들 것만 같은데도 여인들은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아이들을 안고 웃는다. 나는 걱정이 되어 묻는다.

    “잘 때는 빼두면 안 되나요?”

    여인들은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우스운 말은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배를 잡고 웃는다. 어쩌면 이젠 전설이고 풍습이고 간에 목이 길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해 더 목을 늘이고, 아니 어깨를 낮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그들의 눈엔 목 짧은 내가 참 못나 보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내 목에 걸린 커다란 쇳덩어리 카메라가 더 어이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옆에 서 있던 귀 큰, 빅 이어(Big Ear)족 여인들이 나를 보고 더 크게 배꼽 빠지도록 웃었는데 말이다.

    커피콩을 손에 쥐여주는 남자들

    ◇우리 시골마을 같은 몽족 마을에서 만난, 흙에서 뒹굴며 노는 천진한 몽족 아이들.
    다시 차를 달려 몽족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을 땐 마을 아이들이 까만 새끼돼지들과 흙바닥에서 뒹굴며 놀고 있었다. 중국의 남쪽 끝인 윈난 사람들이 내려와 사는 이 마을에선 미얀마 국경이 보인다. 이곳은 예전엔 온통 양귀비 밭이었다지만 지금은 차를 재배해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는 내내 새끼돼지들과 아이들이 내 뒤를 졸졸 따랐다. 그러다가 어느 집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 집의 할머니가 차를 한 잔 건넸다. 그러다가 또 한 집에 들어가니 마을 사람 몇몇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독한 중국술을 자꾸만 건넸다. 마다하지 못하고 받아먹는 것은 그 음식들이 그저 음식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술도 음식이니 누구에게라도 가득가득 따라 건네라던 우리 할머니 말씀이 떠오르는 그 마을에서 나는 발그레하게 취해 마을의 아이들처럼 새끼돼지들과 뒹굴었다. 마음을 받아먹다 보면 금세 그곳 사람이 되고 마는 건, 참 신기하고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귀에 둥글고 커다란 쇠를 끼워 귀를 크게 늘인 빅이어(Big Ear)족 여인.
    그 다음에 닿은 샨족 마을은 커피콩을 재배하는 곳. 몇 가구 되지 않는 이곳 사람들은 모두 하루 종일 커피콩을 딴다. 그래서 이 마을에선 농장을 벗어나도 고개만 들면 커피나무가 보인다. 그 커피나무마다 새빨간 아라비카 커피콩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열렸다.

    어느 집 마당에 들어서니 설멍해 뵈는 남자가 커피나무 아래 서서 땔감으로 불을 지펴 솥을 걸고는 저녁밥을 짓고 있었다. 솥엔 겨우 쌀 한 줌이 들어갔을까 싶은 멀건 채소 죽이 끓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나와 함께 먹겠느냐고 했지만 차마 그들의 부족한 밥상에 숟가락을 올릴 수 없어 돌아서려는데, 남편이 나를 부르더니 커피콩 한 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놔주었다. 나는 그것이 마치 세상의 수많은 별 중에 내 별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레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한쪽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한 커피콩을 화분에 심어두었다. 그러고 또 석 달쯤 지났을까, 화분에서 커피콩 싹이 올라왔고 지금은 내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샨족 마을의 사내가 쥐여 준 커피콩이 서울에서 싹을 틔웠으니 나는 또 이 나무에서 커피콩이 열리거든 누군가의 손에 꼭 쥐여 줄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니 이토록 자꾸만 매홍쏜의 카렌족, 몽족, 샨족 마을이 그립고 그리운가 보다.

    시인·여행작가

    〉〉 가볼만한 곳

    ◇왓 쫑끄랑, 왓쫑캄 사원 앞엔 간단한 음식을 파는 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왓 쫑끄랑, 왓 쫑캄


    19세기 미얀마 양식의 사원으로 샨족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원 안에 있는 부처의 전생을 묘사한 그림이나 탱화도 유명하지만, 이곳에서 꼭 봐야 할 것은 쫑캄 호수에 비친 사원의 모습이다. 안개가 걷히고 나면 맑은 호수에 왓 쫑끄랑과 왓쫑캄이 데칼코마니처럼 수면에 비친다. 쫑캄 호수 주변에 숙소를 잡으면 매홍쏜에 머무는 내내 이 풍경을 바라보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기사입력 2010.04.01 (목) 17:50, 최종수정 2010.04.01 (목)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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