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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찾아서] 〈8〉사진작가 전제우의 티베트 불교순례 ④<세계일보>입력

눌재상주사랑 2010. 6. 23. 03:40
[성지를찾아서] 〈8〉사진작가 전제우의 티베트 불교순례 ④<세계일보>
  • 입력 2010.06.22 (화) 22:56, 수정 2010.06.21 (월) 22:54
하늘길 넘어 만난 데키 곰파
속세에 물들지 않은 평화가 …
  • 인도와 파키스탄 접경 누브라계곡에 출입하기 위한 특별통행허가증을 어렵사리 받았다. 하지만 여름 철 때아닌 폭설이 앞길을 가로 막았다. 제설 작업에 동원된 인도 군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발길을 누브라계곡의 데키 곰파(사찰)로 돌렸다.

    데키 곰파로 가기 위해서는 칸둥라고개(5608m)를 넘어야 한다. 칸둥라고개는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은 고개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고 한다. 산악자전거를 탄 채 칸둥라고개를 넘고 있는 한 서양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놀랄만한 광경이 아닌가. 외견상 한계에 도전하는 이 사람 역시 내면적으로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도전하는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고도 아름답다.

    그동안 머물던 라다크의 중심도시 레에서 칸둥라고개와 누브라계곡을 지나 데키 곰파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간이휴게소에서 라면 국물에 밥 한 술 떠먹었더니 기운이 솟았다.

    ◇아침 햇살을 받은 스투파(탑)와 어우러진 언덕 위 흰 건물 데키 곰파는 아름다움과 평화로움 그 자체다. 하지만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데키 곰파의 삶은 한편으로는 고행을 암시하는 듯하다.
    힘겹게 도착한 데키 곰파는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티베트 양식의 불탑인 스투파가 곰파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기 때문이다. 티베트에서는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부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뜻에서 스투파를 지어 올리는 풍습이 있다. 흙과 돌, 나무로 만들어진 스투파는 한국의 사찰에 있는 탑처럼 정교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박하다 못해 투박한 재료로 만들어진 스투파에서 풍겨 나오는 불심 만큼은 깊고 그윽하게 내 몸에 스며들었다. 

    ◇경전을 독송하고 있는 동자승들.
    데키 곰파 흙바닥에 모여 앉아 경전을 독송하는 동자승들의 초라한 모습에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모 곁에서 한참 뛰어놀 철부지 나이에 수행 길에 들어선 동자승들이다. 하지만 동자승들의 해맑은 표정이 무거워진 내 마음을 다소 가볍게 했다.

    동자승들을 뒤로한 채 짜락사 곰파로 발길을 옮겼다. 낡고 초라한 외견과 달리 짜락사 곰파에는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고 했다. 김동리의 단편소설 ‘등신불’이 떠올랐다. 온갖 번뇌를 떠안은 소설 속 등신불과 이곳 등신불은 어떻게 다를까. 기대가 컸지만 안타깝게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등신불을 친견할 수 없었다. 다만 등신불은 이곳에서 유명한 스님의 사망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고, 팔 한쪽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래 전 이슬람 폭도들이 난입해 등신불의 어깨를 칼로 내리쳤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이 등신불의 손톱이 아직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12년에 한 번씩 달라이 라마 존자가 친견하는 가운데 이를 확인한 후 다시 모신다. 등신불의 잘려진 팔은 인도 남부 어느 사찰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기에 자신과 다른 종교, 그것도 이미 망자가 된 등신불에 흠집을 낸단 말인가. 망자가 된 이를 가해한 그 옛날의 이슬람 폭도 역시 망자가 된지 오래일 것이다. 아니, 윤회를 믿는 나의 단견이긴 하지만 그 폭도는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때로는 인간으로, 때로는 인간이 아닌 형상으로 말이다. 곧 가게 될 쌈텐링 곰파는 윤회와 환생, 인간이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좌표를 설정해 줄 곳이다.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환생할까.

    사진=전제우 한국불교사진연구소장 (‘라닥 하늘 길을 걷다’의 저자), 
    정리=신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