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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근대사에 유린된 예술혼-이중섭

눌재상주사랑 2008. 12. 1. 17:47

이중섭 '흰 소(1953~1954)'. 백의민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걸작으로 홍익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중섭 '흰 소(1953~1954)'. 백의민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걸작으로 홍익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한 한국에서 한 화가가 일본의 부인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기 때문에 자꾸만 걷잡지 못할 작품 제작욕과 표현욕에 불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오.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그대들을 생각하고… 태현, 태성, 남덕, 대향 네 가족이 융화된 기쁨의 장면을 그린다오…"

편지를 쓴 이는 우리 회화사상 유례없이 강렬한 개성과 표현성을 지닌 작품으로 이름이 드높은, 그러나 이루 말할 수 없는 파란 많은 비극적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화가 이중섭입니다. 현대회화에 관심이 없어도 한국인이라면 언론매체를 통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지요. 전후(戰後)의 그 열악한 사정에 우편이 어떻게 일본에 온전히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또 부인에게 편지를 씁니다.

"생생하고 새로운 생명을 내포한 믿을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고 행동하는 회화를 그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참고 견뎌왔던 것이오…."

그는 강렬한 개성과 표현으로 유학을 간 일본과 우리나라 화단에서 일찌감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힘차고 대담한 터치와 탄력적이고 단순화된 형태 그리고 원색의 선명한 그림으로 인간의 내면을 강하게 표현한다는 평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강렬한 그의 작풍과는 달리 일생은 한없이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동북아 근대사에 철저히 유린당해야 했습니다. 그의 그러한 이력을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밝혀놓고 있습니다.

"호 대향(大鄕). 평남 평원 출생. 오산고보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됨. 1945년 귀국, 원산에서 일본 여자 이남덕(본명 山本方子)과 결혼하고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6·25전쟁 때 월남하여 종군화가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신사실파(新寫實派) 동인으로 참여했다.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도일하자, 부두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와 함께 상경하여 1955년 미도파화랑에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 후 일본에 보낸 처자에
대한 그리움과 생활고가 겹쳐 정신분열병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간염으로 죽었다. 작풍은 포비슴(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향토적이며 개성적인 것으로서 한국 서구근대화의 화풍을 도입하는 데 공헌했다.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선화(線畵)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의 탐구로 평가된다. 작품으로 '소(뉴욕현대미술관 소장)', '흰 소(홍익대 소장)' 등이 있다."

분노한 '소'와 백의민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걸작 '흰 소' 그리고 가족에 대한 절박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아이들' 연작은 현재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 중 최고가의 그림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그토록 뛰어난 화가였지만 일제강점과 6·25전쟁이라는 한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그는 생전에 그렇게 그리워하는 가족과도 함께 하지 못합니다. 결국은 외로움과 극빈 속에 거식증과 정신착란증으로 행려병자로 전락, 길에서 죽어 갑니다.

우리는 여기서 화가 이중섭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삶을 유린한 동북아 근대사, 이른바 세계사적 관점에서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불리는 일련의 현상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산업혁명을 끝낸 구미 선진 자본주의 열강이 아프리카 대양주를 거쳐 동북아시아 지역까지 그들의 활동무대를 넓혀 19세기 중엽, 극동지역의 제 민족 일본, 중국, 조선이 국제사회에 다소 강제적으로 편입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결국 우리는 일제에 35년간 강점을 당하게 되고 나중에 동족끼리의 혈전까지 치르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의 약소국가 국민이라면 대부분은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현상입니다. 게오르규의 '25시'나 위화의 '인생'도 모두 그러한 현상에서 기인해 탄생한 작품입니다. 한 사회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 자국에서 튀어 오른 진흙탕물을 개인의 삶에 그토록 고스란히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이중섭의 불행했던 삶처럼 말입니다. 혹자들은 쉽게 말하길 역사는 되풀이된다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일 그러하다면 역사에 대한 태만을 인류 스스로 비판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로운 개인들이 평화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나는 믿습니다.

박미영(시인·대구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2008-12-01 08:06:0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