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속의 남미] 아르헨티나
이방인 한 달래주던 탱고
그 애잔한 선율에 몸을 싣고
그 애잔한 선율에 몸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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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거리 한 카페 앞에서 10대 소녀가 삼바 춤을 추고 있다. 카페 주인집 딸인 그는 손님들에게 춤 대가로 돈을 받는다.
이구아수에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은 숲 속에 난 작은 길처럼 정겹다. 버스로 20시간을 달리는 간간이 들리는 작은 시골 마을은 옛 향수를 자극한다. 저녁을 짓는 연기도 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에서 지난날 어린 시절 모습이 중첩된다. 길게 뻗어있는 길, 끝없이 광활한 들판위로 노을이 질 때는 거의 숨이 멈춰버릴 것 같았다. 그 노을지던 숲과 그 사이로 난 길고 긴 그 길은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스페인어로 ‘좋은 공기’라는 뜻을 가진, 430년 전에 만들어진 계획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제일 먼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라는 22차로의 위용을 자랑하는 ‘7월9일대로(Av.9de Julio)’와 그 중심에 세워진 ‘오벨리스코(Obelisco)’가 이방인의 시선을 붙잡는다. ‘7월9일대로’의 명칭은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기념해 붙여진 이름이다.
◇화가 이만수가 그린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여러 개의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구획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5월혁명광장’이다. 주변에 대통령궁과 라틴 아메리카 해방의 아버지 호세 산 마르틴 장군의 유해가 안치된 대성당 등이 위치하고 있다. 분홍색이 이색적인 대통령궁은 그 테라스에서 영화 ‘에비타’에서 에바 페론역을 맡았던 마돈나가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부르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대통령궁에서 나와 성당을 끼고 돌면 플로리다 거리에 이른다. 첼로를 켜는 사람, 연극을 하는 사람, 노래를 하고 팬터마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까지 거리 구경이 쏠쏠하다. 던져주는 동전 몇 닢에 기대 사는 인생들이지만 슬퍼할 일은 아닌 듯 싶다. 우리네 모습도 그와 별반 다를게 없지 않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부자들이 산다는 레골라타지구. 역대 대통령 13명과 유명인이 안장된 레골라타묘지는 조각품의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조각장식이 다양하다. 그 중 70여개는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묘지도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니 놀랍다. 그 많은 묘지 중에 가장 붐비는 곳은 역시 에바 페론의 묘지다.
그의 무덤엔 매일 싱싱한 꽃이 놓여 진다. 에비타의 신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농장주와 요리사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지만 단역배우, 쇼걸 시절 페론을 만나면서 운명의 전환점을 맞는다. 사치와 낭비가 심했던 퍼스트레이디였지만 빈민층들에겐 그들의 대변자로 각인됐다.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이유다. 군부는 한때 에비타의 신화를 두려워 한 나머지 시신을 훔쳐 멀리 이탈리아로 옮겨 가기도 했다.
◇에비타 묘지
그림에 관심이 많다면 아르헨티나 현대미술관은 빼놓지 말아야 한다. 마티즈, 고흐, 르누아르, 샤갈, 피사로, 고갱, 모네, 마네 등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일행을 사로잡은 그림은 로트렉의 작품이였다. 빨간 바지를 입은 스페인 기병 두 명이 언덕에 말을 내려서 쌍안경으로 건너편 진지를 살피는 작품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서있게 만들었다. 전에 도판에서 본 적이 있는 그림인데 실제로 보니 작은 그림인 데도 강열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그 힘이 무엇일까 여행 내내 화두가 됐다. 로댕의 키스와 그의 많은 작품들이 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도 고흐의 풍차방앗간 그림이나 로트레크 작품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작품이란건 작가 자신의 창조적인 개성이 드러날 때, 그리고 누구도 찾아 낼 수 없는 사물의 힘을 이끌어내는 에너지가 극대화 될 때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아르헨티나하면 떠오르는 탱고의 발상지 보카항으로 향했다. 탱고는 1860년경 이곳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보카지구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개척 초기 광대한 대초원을 개척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온 수백만명의 이민자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항구의 술집 등지에서 춘 춤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탱고를 ‘춤추는 슬픈 감정’이라 부르는 걸까. 지금은 우리가 축구로 기억하는 아르헨티나의 명문 구단 보카 주니어스의 구장이 있는 보카지구.
옛날 조선소가 있었던 보카항 입구는 온통 형형색색의 집들과 탱고의 열기가 넘쳐난다. 과거 조선소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선박에 칠하고 남은 페인트로 조금씩 자신의 집을 칠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집들은 모두 짙은 원색으로 칠해져 있어 마치 거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 같다. 거리 곳곳에서 원색과 어우러진 탱고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잘생긴 탱고 무용수들이 즉석에서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100년 전통의 ‘카페 토르토니’에서 본격적인 탱고쇼를 볼 수 있었다. 1시간가량 펼쳐진 공연은 아코디언, 피아노, 비이올린, 첼로의 선율에 맞추어 남녀 무용수들은 애잔한 애수의 감정들을 온몸으로 토해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이 춤으로 승화된 탱고. 그 탱고 선율이 몸치, 마음치마저 들썩이게 한다. 가면의 옷을 벗어 본다.
글·사진=이만수, 김범석, 박병춘, 김경화 화백
- 기사입력 2008.05.30 (금) 09:48, 최종수정 2008.05.30 (금)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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