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최초의 기자회견 전문 레스토랑
당신이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고 치자. 과연 어디서 하면 좋을까? 역시 가장 무난한 곳은 식당, 그것도 넓은 자리나 방이 있는 곳이어야 할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이 좋은 시내여야 하겠고, 언론사들과 가까운 것이면 금상첨화,음식은 그럴듯 하면 최선인데 그렇다고 호텔처럼 비싸면 부담스럽고, 그리고 기자회견이나 기자간담회가 다른 손님에게 불편함을 준다고 꺼리지 않아야 하고, 자주 기자회견이 열려 기자들도 잘 찾아올 수 있는 곳이면 최선이 아닐까. 바로 그래서 명소가 된 곳이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 태평로 덕수궁 바로 옆에 서울시청 맞은 편이니 교통 좋고 대한민국 최고 중심지에 언론사들 바로 옆인 곳이다.넓은 방이 따로 있어 간담회 열기도 좋고, 음식도 괜찮은 수준에 아주 비싸지 않은 곳. 바로 서울 정동의 세실레스토랑이다.80년대 민주화 인사들이 즐겨 찾던 곳이자 수많은 각종 사회단체며 이익단체, 또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기 주장을 언론에 알렸다. 그래서 세실레스토랑은 저절로 `기자회견 전용 레스토랑'이 됐다. 대한민국 기자라면 적어도 한두번씩은 기자회견을 취재하러 가게 되는 곳이다. 이 세실레스토랑이 문을 닫는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읽으며 서울의 시대적 상징 가운데 한 곳이 또 사라지는 순간에 잠시 상념에 빠졌다. 기사를 보니 1월10일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적혀있었다. 손님이 줄고 적자가 쌓여 결국 문을 닫기로 했다고 한다.세실레스토랑이 사라지기 전, 이 오랜 시사의 현장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기사 마감을 끝낸 뒤 정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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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레스토랑은 덕수궁 돌담길과 성공회 대성당 사이에 있다.
서울시의회 건물 옆 저 고풍스런 표지판을 보고 덕수궁 담길로 접어들자마자 나온다.
그러나 크게 따로 간판을 달지 않아 처음 보면 어디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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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인 성공회 대성당이 오른쪽 사이로 보인다. 저 대성당 부속건물인 이 건물 지하에 세실레스토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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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레스토랑의 `다소곳한' 입구. 2000년대 이전 분위기가 입구부터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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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레스토랑이어서 나선형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동그란 벽에는 이 레스토랑의 역사를 자랑하는 사진들이 붙어 있다. 87년 민주항쟁 당시 재야 민주화 인사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 사진들이다. 그 때만해도 온국민이 다 아는 유명인사이자 투사였던 낯익은 얼굴들이다.
그리고 이제 식당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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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고전적인 입구. 옆에 건 액자에는 이렇게 써있다.
`역사의 현장 민주화의 산실 서울 최고 명당자리에 전통맛의 원조인 세실레스토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참, 세실레스토랑이란 이름은 어떻게 붙은 걸까?
성공회 신부 세실 쿠퍼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럼 내부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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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식당과 커피숍의 인테리어가 유행을 타기 때문에 겨우 10년 쯤 되었을 이 인테리어가 벌써 고전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서울에서는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이상하고 드물다. 그렇지만 이 내부 역시 이틀 뒤면 모두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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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니 나처럼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 이 레스토랑을 취재하러 온 여러 기자들이 영상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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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안쪽에는 기자간담회가 주로 열리던 방들이 있다. 보석이름으로 방이름을 붙였는데, 맨끝 문이 열린 방이 가장 큰 방 다이아몬드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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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는 이 레스토랑을 찾았던 유명인들의 사인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세실레스토랑은 1987년6월 항쟁 때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줄여서 국본 사람들이 즐겨찾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고 제정구와 고 조영래, 오충일 목사 등이 이곳의 단골들이었다. 단골들의 서명과, 이 곳에서 기자회견을 연 단체들이 붙인 종이들은 식당 곳곳에 붙어있다. 아마 유명인 서명이 이곳처럼 많이 붙어있는 식당도 없을 것이다.
붙어 있는 다양한 서명들을 잠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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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영화감독, 유시민 전 장관 사인과 함께 중앙에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변양균 전 장관의 이름이 보인다. 변씨는 이곳에 신정아씨와 함께 왔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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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낯익은 이름들이 많다. 조영남씨의 조형적인 사인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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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미있었던 사인들.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이명박-정동영, 총선에서 맞붙었던 김근태-신지호씨의 이름들이 우연히 몰려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시청 바로 앞인 이곳을 자주 찾았다. 정책을 자문해주는 대학교수들과 함께 이곳에서 대운하 정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이곳이 무척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저 코팅한 사인에 붙어있는 스티커는 지난 추석에 이 레스토랑 주인에게 보낸 청와대 선물에 붙어있는 주소 스티커다. 이번 연말에는 연하장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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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갔던 서명은 바로 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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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오른쪽 부부의 서명이다. 유명한 분들이어서가 아니다.
부부는 이 곳에서 처음 선을 본 모양이다. 서로 맘에 들어 결혼에 골인, 그리고 25년 함께 살아 은혼식을 맞았고 두 사람을 이어준 이곳을 다시 찾아와 저 서명을 남겼다.
레스토랑도 오랜 세월 이어가면 고객들과 시민들의 소중한 역사가 된다는 것을 저 서명은 잘 보여준다. 유행마다 따라가며 업종이 바뀌는 식당들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세월의 힘이다. 안타깝게도 세실레스토랑이 쌓아온 역사의 힘은 2009년 연초까지였던 모양이다.
# 촛불이 과연 세실레스토랑을 망하게 했을까
이 세실레스토랑이 문을 닫는다는 보도를 보면서 아쉬움과 함께 든 생각은 나 역시 기자지만 참 기사는 기자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세실의 폐업 보도는 <조선일보>가 가장 먼저 썼다. 조선일보사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이니 당연히 가장 먼저 알았을테고, 이를 빨리 보도한 것은 칭찬할만한 신속보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기사의 방향과 주제다. <조선일보> 보도는 이 유서깊은 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기사의 첫줄, 그러니까 `리드' 문장 바로 다음에 곧바로 레스토랑 주인의 말을 싣는다.
"작년 5월 촛불집회가 과격화되면서 시위대의 난장판에 놀란 손님들이 발길을 끊었다"고 강조했다. 기사의 제목에는 더욱 `각'을 세웠다. "촛불 시위 영향으로 손님 끊겨 문닫아".
무릇 진실은 여러가지 모습이다. 단 하나만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고, 그 각각의 해석은 모두 진실이다. 문제는 이 중에서 특정한 하나만을 진실로 못박는 것이다. 언론이 여론을 호도하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다. 기자가 자신만의 진실을 확신해 취사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다른 진실을 가리는 경우도 많다.
서울 한복판에서 타올랐던 촛불은 지난 봄부터 초여름까지였다. 당시 도심 식당들은 갑작스런 인파에 손님이 늘기도 했고 줄기도 했다. 세실은? 주인 정씨에게 물으니 당시 인파로 이곳에 올수 없었던 예약 손님들의 예약 취소가 이어졌고 도심 봉쇄로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 촛불 때문에 가게를 접게 되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촛불이 지난 지 반년이 넘었는데, 촛불 당시 손님이 줄었던 것을 지금 폐업까지 그대로 이어버리는 것은 과연 타당한 해석일까? 그렇게 읽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세실레스토랑의 손님이 줄어든 진짜 이유는 옛날 스타일 레스토랑이 요즘 새로운 레스토랑과의 경쟁에서 겪는 운명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이유가 더 있다. 기자회견 전문 공간의 지존 자리가 세실레스토랑에서 안국동 느티나무카페로 바뀐 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 1998년 문을 연 느티나무카페는 단숨에 기자회견 전문 공간으로 부상했다. 기자들이 몰려있는 서울 종로경찰서 바로 앞이어서 기자들이 오기가 더 쉬웠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물론 세실레스토랑에서도 계속 기자회견은 열렸지만 예전처럼 많지는 못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상황이다.
세실레스토랑의 인기가 시들해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또다른 진실이 있었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세실의 단골이 전혀 다른 이들로 바뀌어버린 점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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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 세실레스토랑을 사랑하고 아끼며 찾았던 이들은 수구독재세력들에 맞섰던 민주화 재야 인사들, 그리고 문인들이었다. 한국 사회의 개혁 주역들이 이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실 레스토랑 바로 뒤 성공회 대성당 마당에 세운 6월항쟁 기념비는 바로 그 흔적이다.
그러나 위의 사진이 보여주듯 2004년 즈음부터 극우, 수구인사들도 이곳을 즐겨 찾기 시작한다. 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던 이곳에서 뉴라이트 인사들도 기자회견을 하기 시작했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자유주의연대 창립 기자회견을 연 곳도 여기였다. 대권 꿈을 꾸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도 이곳의 단골이 됐다. 저 이명박 대통령의 시장 시절 서명은 또다른 이야기를 세실에 남기기도 했다. BBK 특검 때 BBK 계약서의 서명이 이명박 대통령의 서명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들이 저 서명을 찍어갔다.
누가 어떤 레스토랑에 가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분명 분위기는 바뀐다. 한국 사회에서 늘 진보와 발전의 힘을 제공해왔던 개혁진영 단골들은 서서히 느티나무카페로 옮겨갔다. 세실레스토랑에게 촛불은 잠시 지나가는 어려움이었을지 모른다. 세실은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그래도 20여년간 바뀌지 않았던 손님들이 최근 이곳을 떠났다.
민주화의 산실이었던 이곳에 최근 4, 5년 사이 민주화를 가로막은 사람들을 추종하는 이들이 몰려온 것, 그게 이 레스토랑의 운명을 바꾼 진짜 이유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