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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갤러리] 유자효 번뇌

눌재상주사랑 2009. 1. 21. 16:47

[시가 있는 갤러리]

유자효 번뇌

김종학 '설악산 풍경'(17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


가섭이 물었다 '번뇌가 무엇이뇨'

그것은 바람이나 물 같은 것이어서 중생이 있는 곳이면 피할 수 없나이다

바람이나 물 없으면 못 살듯이 그것이 없으면 중생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나이다

'부처는 열반이로군'

가섭은 눈을 감았다


-유자효 '번뇌' 전문


번뇌나 걱정 없이 살아보려는 희망은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섭의 깨달음처럼 죽어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론 편안할 것 같은 사람들도 실은 걱정거리를 한아름씩 안고 살아간다. '일'만 해도 그렇다.

할 일이 없으면 일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많으면 힘들다고 불평한다. 일거리가 적당하면 일탈하기 쉽다. 돈도 다르지 않다. 없으면 절실하게 필요하다. 적당히 있는데도 더 벌려고 애 쓴다. 많으면 돈에 치이고 노예가 되곤 한다. 삶에 완벽은 없다. 현재에 대해 늘 불만이지만 미래에도 뾰족한 수는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번민하고 걱정한다. 살아 있음에 대한 대가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

입력: 2009-01-11 17:46 / 수정: 2009-01-12 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