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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에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비행기에서 고향으로 가는 멕시칸과 나란히 앉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니까 반색을 하며 한 동안 한국인이 부지런해서 돈을 많이 번다고 칭찬하였다. 알고보니 몇 년간 LA 한인타운에서 택시 운전도 하고, 가게 점원으로도 일해본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론은 한국 사람들은 미쳤단다. 돈은 버는데 쓸 줄을 모른단다. 그거 다 아이들 교육 잘 시키려고 그러는 것이라니까, 이미 자식들을 다 키운 사람도 여전히 그렇단다. 번 돈으로 자신을 위해 즐기는 것도 아니고,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된단다.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 눈에는 오늘 번 것 오늘 쓰고, 주말이면 아무리 시간외 수당을 많이 준다 해도 일하려 하지 않으며, 매사에 느린 그들이 게으르게 보인다. 그러면서도 중남미를 찾는 한국인들 십중팔구는 '이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수십년간 여유란 건 사치로 여기고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이국땅에 와보니 은근과 끈기의 정신으로 살았던 우리 옛 조상들의 맛과 멋을 새삼 느껴서일까? 중남미인들의 여유로움은 그 사례를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해 정말 신기할 정도다. 버스 터미널 부근에서 올메카(Olmeca) 문화 박물관을 찾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따라오라 하더니 무려 500m나 데리고 가서는 박물관 방향을 가리키며 더 같이 못가줘서 미안하단다. 시외버스 기사였는데 출발시각이 늦어 되돌아가야 한단다. 밤버스를 타고 새벽에 어느 도시에 도착했다. 거리 청소부에게 시청사를 물으니 답하기 복잡하다며 일하다 말고 청소차에 태워서 시청까지 데려다준다. 이건 친절한 케이스다. 늦은 시각 뭘 좀 사려고 동네 구멍가게에 들르니 막 셔터문을 내리려 한다. 뭐 사러 왔다니까 내일 오란다. 은행에 가서 줄을 섰다. 마감시각이 다가오는데 창구 직원들이 서두르는 기색이 별로 없다. 오히려 옆 직원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은행문 닫을 시각이 되니 그걸로 끝이고, 앞에 서있는 손님들 누구하나 항의하는 사람 없이 태연히 발길을 돌린다. 혼자 열을 내던 내가 이상할 뿐이다. 현지에서 가게하는 사람에게 들은 경험담은 더욱 가관이다. 현지인 종업원에게 천장의 틈새를 테이프로 붙여 막는 일을 시켰는데, 퇴근 시각이 되니까 글쎄 그 남은 테이프 뭉치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아놓고 내려와 다음날 계속 하더란다. 2m 정도만 더 붙이고 끝내면 될 일인데…. 이건 아주 야박한 케이스다. 몇 년전 미국 정부 기관에서 나온 중남미 국가에 대한 비즈니스 안내책자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중남미에선 약속 시각을 너무 정확히 지키면 무례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으니 유의할 것임." 실제로 필자도 학생들 해외 어학 연수 대학의 협력 하숙집에 식사 초대 받아서 오후 8시 정각에 갔는데 옷매무새조차 안 갖춘 아주머니가 당황해하던 그런 경험이 있다. '친절함과 야박함'이라는 모순된 케이스나, 너무 정확하면 불편하다고 하면서도 퇴근 시각은 무섭게 지키는 사례에서 공통점을 본다. 편안한 자기 시간 확보다. 어떻게든 여유를 찾아내 즐긴다는 것이다. 바보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이런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여러 역사적·문화적인 배경이 있겠으나, 필자는 그 연유가 중남미 도시나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자(plaza)라고 하는 공간에 있다고 본다. 공간적 여유로움에서 시간적 여유를 찾는 그들이다. 환경이 사람들 삶을 지배하는 일반적 현상의 하나이다. 토론과 시장의 기능을 했던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와 로마제국 때 공공건물 한복판에 자리잡은 다목적 열린 공간인 포럼(forum)에서 유래한 것이 광장으로 번역되어 불리는
중남미에선 큰 도시이건 시골의 읍 규모 마을이건 대부분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하여 성장하고 발전하여 왔다. 그 플라자에는 대성당과 시청이나 동사무소 같은 것이 반드시 있고, 호텔이나 노천 카페 등이 면해 있다. 도시 외곽 주택가나 시골 촌 동네 같은 곳에도 크기는 작지만 여러 모양의 공터가 있어 주민 공동의 장이 된다. 이러한 작은 동네에도 교회당이 꼭 있고, 조그마한 가게, 구두닦이, 일용 잡화를 파는 노점 등이 있다. 이런 류의 동네 플라자야말로 우리가 중남미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 중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것이라 하겠다. 이곳은 때로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기도 하고, 마을회관이며, 토론장이다. 한여름밤의 공연장이거나 작품 전시장이다. 혹은 벤치에 모여 앉아 혹은 커피 한잔하며 친구들끼리 담소하는 부인들을 흔하게 볼 수 있고, 복권 장사나 보자기 펴놓고 손님 끄는 액세서리 장사도 늘 만날 수 있다. 개와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밤늦은 시각까지 집을 나와 산책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한낮의 비둘기나 거리의 화가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곱게 차려입고 빨간 매니큐어와 루주까지 바른 할머니들의 모습은 너무도 정겹다. 중남미인들은 대화와 사교가 삶 자체다. 시간만 나면 플라자로 나가 이웃 사람들과 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가보면 이러한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미국쪽은 해가 지면 썰렁한데, 국경쪽은 북적인다. 대도시에는 물론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이 있지만 어울리기 좋아하는 중남미인들은 기계적이고 익명성이 현저한 그런 쇼핑은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여긴다. 자기 동네 가게 주인들은 자기 가족의 취향까지 알고 있고, 또 가게 주인들은 그것을 당연한 봉사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활 양식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현대와 같은 대도시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인간화한 대중집단 속에서 그래도 그들은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동네 골목길이나 큰 광장에서나, 길거리 한 구석의 찻집에 서서 어디서든지 그들은 일체감을 잃어버릴 우려가 없다. 시장에 갈 때건 출근을 할 때건 이들은 언제나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있고 또 자기 안위를 걱정해주는 이웃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낀다. '빨리 빨리'에 익숙하고, 속도전을 자랑으로 여기는 한국에도 놀이마당이란 것이 있었고, 멍석이나 정자와 같은 대화의 광장이 있었다. 월드컵을 거치면서 한국에서도 플라자가 많아졌고 광장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밤문화는 중남미와 스페인을 넘어서서 세계적 수준이다. 좀 덜 미친 한국인과 덜 게으른 중남미인이 만나면 얼마나 신명이 날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대구가톨릭대 국제실무외국어학부 교수) | ||||||||||||||||||||||||||
2009-02-05 08:03:58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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