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윤 아시아 문화기행] 카슈가르
中 실크로드 마지막 도시… 한때 동서교역 중심지
관련이슈 : 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20091119003861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2박3일. 차창으로 스며드는 희뿌연 먼지를 온몸으로 맞으며, 급기야는 손가락조차 들어가지 않게 뻣뻣해져 버린 머리카락이 짜증났던 그 길을 이제는 미끄러지듯 기차가 달리고 있다. 모래황무지 저 너머에 보이던 설산의 모습 또한 더러운 침대 버스에 누워 있던 그때의 짜증스러움에서 청명한 아름다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기차는 천천히 종착역인 카스(喀什)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중국 지도책에도 표기된 카스라는 이름은 나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내가 처음 여행을 하던 그때만 해도 이곳 지명은 카슈가르(Kashgar)로 더 많이 불렸다. 차이라면 카스는 중국식 지명이고, 카슈가르는 이 땅의 과거 주인이었던 위구르인이 부르는 지명이다. 그렇지. 그런 거다. 서울이라는 지명도 우리가 중국 문화권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한성이었고, 일본 식민지 시절에는 경성이었듯이. 카슈가르는 이제 카스라고 불리는 도시가 되어버린 셈이다.
◇더위에 지친 당나귀들이 지고 온 토마토를 일요시장에 내려놓고 이를 바라보고 있다. 빨갛게 익은 토마토는 당나귀들 눈에도 예쁠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한때 힌두교권으로도 분류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현재의 중국식 행정구역으로 카슈가르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되는데, 성도는 우루무치지만 대부분의 위구르인들은 카슈가르를 일종의 정신적 수도처럼 생각하고 있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이 일대는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명실상부한 독립국이었고 카슈가르는 바로 동투르키스탄의 수도였다.
하긴 터키계인 위구르인은 우리 눈으로 봤을 때 아무리 살펴봐도 동양인다운 면모가 없다. 눈은 파란색에 가까워지고 콧날도 우리보다는 중동계에 가까워보인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양인들의 시각인데, 그들은 위구르인을 보면서 아시아를 느낀다고 한다. 그네들이 보기에는 위구르인이 우리와 더 닮았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이 일대는 여행자들에게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종의 백야 현상인데, 북유럽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자연적 백야현상과는 좀 다르다. 알다시피 중국의 땅덩이는 남한의 100배쯤 된다. 동서 길이가 5000km를 넘다 보니 당연히 중국은 여러 시간대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문맹자가 넘쳐나던 중국에서 각기 다른 시간대를 유지한다는 건 사실 무리에 가까웠다. 중국은 덕분에 오늘날까지 단일 시간대. 베이징 표준시를 기준으로 한다. 문제는 베이징과 카슈가르의 거리는 무려 3000km가 넘는다. 카슈가르 바로 북쪽에 있는 파키스탄이 중국보다 2시간30분가량이 더 느리니, 실제로 베이징 표준시 밤 9시는 카슈가르의 물리적 시간으로는 저녁 6시30분쯤 되는 셈이다. 즉 낮이 긴 여름철 베이징 표준시로 밤 11시에도 카슈가르에서는 이제 석양이 하늘을 뒤덮고 있을 시간대일 뿐이다. 일종의 엄청나게 늘려놓은 서머타임 같은 것이긴 한데, 어쨌건 여행자로서는 신나는 일이다. 밤 11시까지 돌아다녀도 해가 지지 않는다니!
◇의자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다. 전방을 응시하는 이발사의 표정이 진지하다.
게다가 신장은 양꼬치의 고장. 양다리 하나를 매달고는 하루종일 살을 저며 꼬치를 꿴다. 우리네 닭꼬치처럼 살짝 데친 후, 불에 올려놓고 겉만 굽는 게 아니라, 잘 붙은 숯불에 부채질을 해가며 노릇노릇 속까지 알맞게 구워낸다. 부채질을 하는 위구르 소년의 얼굴에는 이내 땀방울이 고이며, 가끔 숯불 위로 떨어져 치이익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어디 장난쳐놓은 한국 꼬치에 비할까? 꼬치를 빼먹으며 맥주를 마시다 보면 대취하기 일쑤. 이 때문에 일정이 틀어지고, 때로는 볼 것을 못 본다 해도 무에 대수랴?
어차피 여행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그런 불확실성을 모험이라고 포장하곤 하는데, 사실 요즘의 여행은 이런 불확실성보다는 몇시 몇분에 뭘 보고, 어디에서 꼭 어떤 요리를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점은 안타깝다.
인생 80년, 우리가 여행을 하며 버릴(?) 수 있는 시간은 아마 보통의 사람이라면 6개월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 80년 중 6개월만 불확실하면 된다. 8세에 초등학교 가서, 19세에 대학을 가고, 서른쯤에 결혼해 애를 낳고, 온통 스케줄과 시간표뿐인 우리의 삶에서 여행은 스케줄과 시간표를 거둬낼 수 있는 3박4일, 일주일, 한 달이다.
◇중동의 어느 도시를 연상하게 하는 카슈가르(카스) 시가지. 오래된 차와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들이 뒤엉켜 만들어낸 거리의 모습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는 차이가 난다.
꽤 많은 사람이 여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늘 지도와 나침반을 휴대하고, 정확한 동선을 그려 효율적으로 볼거리들을 섭렵하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볼거리에 목매고, 지도를 품에 안고 다니는 것도 1∼2년이다. 여행을 할수록 오히려 느는 건 지도 보는 법이 아니라 지도 없이 후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현지인들 찻집에 앉아 노닥거리는 재주만 늘 뿐이다. 여행자들을 위해 개량한 현지식 말고, 찻집에서 수다 떨다 알게 된 동네 아저씨 따라가 ‘어이 마누라 내가 오늘 손님을 모셔 왔으니 상 좀 차려봐’라고 말한 후에 나오는 현지인들의 밥상 맛이 그 동네의 이미지를 좌우하곤 한다.
여행을 떠나자. 여행이 구원일 수는 없지만,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살아온, 사람이 어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화두 하나는 던질 수 있지 않을까? 배낭을 메고 낯선 어느 나라 공항에 들어설 때마다 누군가 내 귀에 속삭인다. 여행병 환자에게는 현실의 공간이 오히려 매트릭스일 뿐이다. 연재의 마지막이라 객기가 심했다.
>> 여행정보
카슈가르로 가기 위해서는 신장성의 성도인 우루무치로 가야 한다. 우루무치에서 카슈가르까지는 기차로 14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전통적인 대륙횡단 여행에서 카슈가르는 파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위한 통로로 쓰였다. 두 나라 사이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가로막고 있다. 세월이 수상하다 보니 카슈가르를 통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길은 머나먼 옛일이 되고 있다. 탈레반이니 알카에다니 하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분들 탓이다.
- 기사입력 2009.11.19 (목) 18:03, 최종수정 2009.11.19 (목) 18:02
'◀취미와 여행▶ > 세계풍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기중의 아프리카 로망] 남아공 케이프타운대자연과 도시 공존… ‘아프 (0) | 2009.12.13 |
---|---|
[최광식의 잉카문명 이야기] <1> 페루 문명의 시작과 끝 (0) | 2009.12.10 |
고대 삼국지의 무대 중국 청두 (0) | 2009.11.20 |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멕시코 과나후아토황량한 벌판 끝에 들어선 (0) | 2009.11.20 |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체코 체스키크룸로프붉은 지붕 중세 건물들 (0) | 2009.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