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여행▶/세계풍정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美 포트워스야성미 넘치는 카우보이들 북적

눌재 2010. 1. 9. 11:57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美 포트워스
야성미 넘치는 카우보이들 북적… 서부영화 보는듯
  • 영화에서 본,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눈빛으로 일순간에 총을 뽑아드는 황야의 무법자들은 그야말로 남자였다. 그리고 꿈이었다. 말을 타고 희부연 모래를 날리며 달리는 거친 사내들의 승부욕, 박차를 박은 웨스턴 부츠를 신은 카우보이의 모자 아래로 슬쩍 보이는 땀 고인 이마, 그리고 보안관의 무료하면서도 짜증스러운 말투. 태양의 뜨거움과 평야의 적막함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황야에서, 맥주로 목을 축이는 길들지 않은 영혼들…. 높은 빌딩 숲에서 고급 세단을 끌고 나와 SF 영화를 보러 다니는 21세기, 2009년의 어느 가을날 포트워스의 스톡야드에서 그들을 만났다. 영화 ‘황야의 무법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매력적인 영혼들을 말이다.

    #옛 모습 고스란히 남아 있어

    미국 텍사스 주에서도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포트워스. 옆 도시 댈러스는 쇼핑의 천국이 되어버렸지만 포트워스는 서양 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포트워스의 도심에 들어섰을 땐 높은 호텔과 차들에 휩싸여, 다른 곳과 별다를 것 없는 도시에 왔다는 실망감뿐이었다. 사실, 진짜 카우보이나 카우걸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그들의 풍습이나 흔적을 조금쯤 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결혼식 때도 청바지를 입는다는 이곳 남자들은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로 말을 타고 가며 맥주를 마신다.
    그래서 얼른 달려간 곳은 도심에서 북쪽으로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톡야드. 1800년대 미국 최대의 가축 목장으로 번창했다는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난 보았다. 영화 ‘황야의 무법자’에 나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써머스비’에 나오는 리처드 기어를. 그토록 날렵한 콧날에 가녀린 눈과 긴 다리를 가진 남자들이 청바지를 입고 웨스턴 부츠를 신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말을 타고 가며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그러다가 슬쩍 짓는 눈웃음을. 그리고 이리저리 고개 돌렸을 때도 보았다. 웨스턴 정통 바에서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콧수염들을, 말을 타고 달리는 카우걸들의 거칠게 흩날리는 머릿결과 그녀들의 손에 들린 장총을, 우아한 모자를 쓰고 깔깔깔 웃어대는 푼더분히 보이는 여자들의 입술 위 점을, 뿔이 긴 소인 롱혼 떼를 몰고 가는 카우보이들의 먼 곳을 보는 무표정한 얼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19세기 복장을 하고 주말을 즐기러 나온 여인들. 이들은 영화 속의 인물이 되어 하루를 맘껏 즐긴다.
    미국 서부 문화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포트워스 사람들. 그들은 본래 소시장이 있던 스톡야드를 미 서부의 문화구역으로 조성했다. 그러니까 소시장을 로데오 경기장으로 만들고 건물 모두 호텔이나 토산품점과 식당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건물의 벽마다 카우보이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상점마다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와 벨트를 판매한다. 그리고 누구든 마치 이곳의 예의라는 듯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다닌다.
    관광객을 위한 상업지구가 되었지만 어설픈 것 하나 없어 서부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드는 곳. 상점엔 서부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 같은 물건들이 가득하고 간판은 옛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그곳에 가만히 서 있으면 마치 백 년 전쯤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게다가 주말이면 이곳 사람들은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19세기의 복장으로 완벽하게 차려입고 나와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하루를 즐긴다. 

    인생에서의 자기 배역을 잠시 벗어놓고 영화 속의 배우가 되어 카우보이처럼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며 한바탕 웃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숨 한번 크게 쉬며 주말을 기분 좋게 즐기는 것이다.

    결혼식 때도 청바지를 입는다는 그들에게서 나는 진정한 ‘휴식’을 보았다. 휴식이란, 그냥 느즈러져 누워 뒹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나를 맘껏 즐긴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그들 곁을, 티셔츠를 입고 지나가면서 나는 마치 내가 멀리서 온 외계인처럼 여겨졌고 말끔한 차들이 지나갈 땐 시대를 잘못 찾아든 쇳덩어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카우보이 모자를 사서 살짝 걸쳐 쓰고 그들의 영화 속으로 슬그머니 발을 밀어 넣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미술관

    포트워스에서도 문화지구는 마치 하나의 커다란 공원처럼 느껴진다. 깨끗하게 펼쳐진 넓은 녹지와 곳곳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는 풍경은 고요하고 맑기 때문이다. 미술관 구경을 다니다가 어디든 주저앉아 햇살을 즐기기에 좋고 그러다가 찾아든 미술관에선 다양한 그림들을 구경할 수 있어 
    ◇수제 명품 부츠는 몇 백만원을 넘어 천만원에 이르는 것도 있다. 부츠를 이용한 멋스러운 스탠드.
    좋다. 그중 아몬카터 박물관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다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고,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미술관으로 건물 자체만으로도 문화지구를 아름답게 한다. 그리고 세잔, 쇠라, 칸딘스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킴벨 미술관까지, 이곳에선 한적하게 그림을 보는 오후가 또 다른 휴식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찾아간 국립 카우걸 박물관에선 카우걸들의 역사와 영화 속 카우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힘찬 여자들의 모습에 힘이 불쑥 솟는다.

    그러나 문화지구에서 그 어느 곳보다도 근사한 곳은 윌 로저스 콜로세움. 그곳에서 맛보는 현지인들의 삶은 힘차다.

    입구에서부터 줄을 이어 들어가는 이들은 카우보이 복장을 한 연인들이나 가족들이었다. 나들이를 나온 이들은 콜로세움 밖에 있는 여러 개의 큰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곳은 거대한 축사인 셈이었고 수많은 소와 말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그중에서 사고 싶은 말이나 소를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은 로데오 경기를 보기 위해 콜로세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 나온 것만 같은 사람들이 말이다. 나는 그들의 걸음에 끼어 카우보이 모자를 다시 한번 살짝 눌러 쓰고 거칠게 채찍을 휘두르는 카우걸처럼 로데오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인·여행작가

    〉〉여행팁

    ■음식:러브 셰크(Love Shack)

    ◇스톡야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햄버거 가게. 모두 말을 타고 와 햄버거와 함께 맥주를 즐긴다.
    스톡야드에서 유명한 햄버거 가게. 방금 만들어내는 저렴한 햄버거는 두고두고 떠올리게 되는 맛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맥주와 함께 간단히 요기를 하는데, 사랑의 오두막이란 이름답게 가게 규모가 자그마한 편이라 줄은 늘 문밖까지 이어진다.

    ■숙소:스톡야드 호텔 

    포트워스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호텔. 로비든 방안이든 카우보이 풍으로 멋스럽게 꾸며져 있다. 시끌벅적한 스톡야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어 밤늦도록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예약은 필수. (www.stockyardshotel.com)
  •  
  • 기사입력 2009.11.26 (목) 21:16, 최종수정 2009.11.26 (목) 21:15
  •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