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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중 아프리카 로망] >> 보츠와나 모코로 투어<세계일보>입력 2010.07.1

눌재상주사랑 2010. 7. 19. 01:41
[이기중 아프리카 로망] >> 보츠와나 모코로 투어<세계일보>
  • 입력 2010.07.15 (목) 17:30
지구상 마지막 남은 천연 야생지 ‘오카방고 델타’
  • 하루 내내 픽업트럭 짐칸에 쭈그리고 앉아 비바람 속을 달려온 다른 때와 달리 평화롭기 그지없다. 게스트하우스 정원 한 쪽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바(bar) 앞에서 잠베지강을 바라보니 주변의 풍경 또한 한적하고 여유롭다. 저녁에는 잠베지강에서 보트투어를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나는 가볍게 점심을 먹고 환전을 할 겸 마운(Maun)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마운 시내는 게스트하우스에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길에 나가 미니 버스를 잡아탔다. 마운 시내로 들어가니 옛날 우리나라 읍내 분위기다. 마운은 한때 인근 사람들이 소를 거래하던 자그마한 마을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오카방고 델타(Okavango Delta)와 모레미 야생동물보호구를 찾는 여행객 덕분에 최근 보츠와나 관광의 기점이 되는 도시로 빠르게 성장하여 보츠와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사람들이 주로 마운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오카방고 델타를 보기 위해서이다. 필자 또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500풀라(약 8만원)를 지불하고 오카방고 델타 투어를 신청하였다.

    ◇오카방고 델타 강물 위에 떠 있는 모코로. 카누처럼 생긴 모코로 배를 타고 오카방고 델타의 습지대를 돌아본다.
    오카방고 델타는 보츠와나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내륙 삼각주인 오카방고 델타는 앙골라의 고지대에서 흘러내려온 물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삼각형의 습지대다. 앙골라의 서부 고지대에서 흘러내린 물은 쿠방고강(Cubango River)을 만들고, 이 강은 나미비아에서는 카방고(Kavango)라는 이름의 강으로 이어지다가 보츠와나에 들어와서는 오카방고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뀐다. 이 오카방고 강물이 흘러가다가 힘이 빠져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1만5000㎢의 오카방고 삼각주를 만든 다음 뜨거운 칼라하리 사막을 만나 사라진다. 오카방고 델타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사람들은 불필요한 습지라고 생각하여 매립한 뒤 농지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다행히 오카방고 델타는 천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전되어 오늘날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천연 야생지로 불리게 됐다.

    ◇폴러는 모코로 배 위에 서서 기다란 장대나무를 저으면서 서서히 갈대밭 사이를 헤쳐 나간다. 모코로는 오늘날에도 오카방고 델타 주민들이 강을 건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나는 다음날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오카방고 델타로 향했다. 4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비포장도로를 달리니 강물 위에 여러 척의 모코로(Mokoro) 배가 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코로는 일명 ‘소시지 나무’나 흑단나무의 통나무 안쪽을 파내 만든 보츠와나의 전통적인 작은 나무배를 말한다. 오카방고 델타 투어는 카누 모양의 기다란 모코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가면서 습지대를 돌아보고 섬에서는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도보 사파리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모코로 선착장 옆에는 일감을 기다리는 현지인들이 트럭에 가득 차 있다. 모코로 폴러(poler)라고 불리는 현지인들은 모코로를 조종하는 뱃사공이자 오카방고 델타 투어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 내가 타는 모코로에는 샘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현지인이 선택되었다. 3년의 폴러 경력을 가진 샘은 바에르족 출신이라고 한다. 가족 모두 이곳 출신이며, 집안 대대로 폴러를 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에게 물어보니 여자들도 폴러를 한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모코로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으니 낮아진 시선으로 강물과 갈대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폴러는 모코로 위에 서서 기다란 장대나무를 저으며 서서히 갈대숲 사이를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모코로는 오늘날에도 오카방고 델타 주민들이 강을 건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오카방고 델타 투어의 백미는 갈대숲 사이에 만들어진 비밀스러운 미로 같은 수로를 헤쳐 나가는 것. 갈대 숲 사이에 숨은 듯 이어지는 작은 수로의 풍광은 평온하고 신비롭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갈대 숲 사이에서 하마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바에르족 사람들은 40년 전에는 갈대로 집을 지어 강 위에서 살았지만, 오늘날 갈대는 집을 지을 때 벽의 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저 멀리 갈대숲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여행객을 실은 모코로 여러 대가 우리를 향해 온다. 밤에 섬에서 야영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넓은 초원이 펼쳐 있는 섬은 야생동물의 서식처이다. 도보 사파리를 하면서 초원을 바라보니 아프리카의 상징인 바오밥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1시간 넘게 수로를 따라 가다 보니 섬이 하나 보인다. 섬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니 도보 사파리다. 샘은 섬에서 야생동물을 만났을 때의 행동수칙을 말해준다. 버팔로를 만나면 지그재그로 뛸 것. 사자는 가만히 있으면 사람을 해치지 않으므로 사자를 만나면 움직이지 말 것. 코끼리는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 열심히 설명한다. 사실 섬 전체가 초원이기 때문에 중간에 야생동물을 만나면 숨을 곳이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먼저 설렌다. 하지만 비가 내린 탓일까? 초원을 한참 걸어도 저만치 한 무리의 얼룩말들만 보일 뿐 다른 야생동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날이 아닌 것 같아 야생동물 찾기를 그만두고 주위를 둘러보니 초원 한가운데 아프리카의 상징인 바오밥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모코로 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소시지 나무’도 나타난다. 나무줄기가 소시지같이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결국 한 시간이 넘는 도보 사파리는 얼룩말과 새 몇 마리를 구경하는 데 그쳤다. 샘의 설명에 따르면, 야생동물을 보려면 건기에 해당하는 5∼8월에 와야 한다고 한다. 건기에는 동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강가로 몰려들지만, 우기에는 동물들이 사는 서식지에도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오카방고 델타의 수로에는 하얀색의 수련꽃이 가득하다. 고요한 수로 위에서 만나는 수련의 모습은 더욱 청초하고 고고하게 느껴진다.
    섬 구경을 마치고 다시 모코로에 올랐다. 돌아오는 수로 길은 하얀색의 수련꽃으로 가득하다. 고요한 수로 위에서 만나는 수련이라 그런지 그 모습이 더욱 청초하고 고고하게 느껴진다. 샘이 수련의 널따란 잎사귀를 떼어내 나에게 모자를 만들어 준다. 바에르족 사람들은 결혼식 때 수련으로 목걸이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한다. 노란색의 수련꽃 안에는 물이 고여 있어 눈병이 날 때 치료제로 쓰인다고 하니 수련의 용도가 참 다양하다. 수련이 떠 있는 물을 쳐다보니 참 맑고 투명하다. 깨끗하기 때문에 마실 수 있다고 샘이 말한다. 수로 한쪽의 촘촘히 꽂혀 있는 나무 사이에 그물이 쳐 있다. 바이에족 사람들의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이라고 한다. 보슬비는 하루 종일 그칠 줄 모른다. 하지만 수련 위로 살포시 내리는 빗방울은 수로를 헤쳐 나가는 모코로의 찰랑거리는 소리에 더해져 오카방고 델타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오후 4시쯤 오카방고 델타 투어를 끝내고 다시 뭍으로 올라왔다. 폴러의 수입이 궁금해 물어보니 내가 모코로 투어 비용으로 지불한 500풀라 가운데 150풀라를 받는다고 한다. 생각보다 폴러에게 돌아가는 돈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 팁으로 30풀러를 건네주고 샘과 헤어졌다. 경제적으로 그리 풍요롭지는 않겠지만, 원시의 오카방고 델타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자연만큼 평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