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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 명작 기행] '새의 눈'으로 본 바다…회화의 禁忌를 깨다

눌재 2013. 8. 23. 15:33

 

[풍경화 명작 기행]   '새의 눈'으로 본 바다…회화의 禁忌를 깨다

입력
2010-11-12 17:56:00
수정
2010-11-13 03:22:35
● 프랑스 트루빌의 해안 풍경

언덕·건물 한쪽으로 쏠리고, 가깝고 먼 경치 극단적 대비…19세기 日 채색목판화서 영감 얻어

인상주의 화가들 자주 찾아와

센강이 오랜 여행을 끝내고 바다와 만나는 곳에 두 개의 작은 도시가 있다. 강 하구의 오른쪽이 트루빌,왼쪽이 도빌이다. 두 도시는 행정구역상 분리돼 있을 뿐 한 도시나 다름없다. 다만 도빌이 호화 별장과 부티크가 즐비한 부티나는 동네인 데 비해 트루빌은 다소 서민적인 냄새를 풍긴다.

프랑스인들이 내뱉는 말 중에 "부자는 본부인은 도빌에 두고 정부는 트루빌에 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 말만큼 이 쌍둥이 도시의 성격을 잘 표현한 경우는 드물다.

도빌은 아시아영화제의 개최지로 우리에게 비교적 낯이 익지만 트루빌은 어쩐지 좀 생소하다. 우리에게 낯선 이 소박한 도시는 파리지앵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도시다. 파리 생라자르 역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이 도시는 파리지앵들이 즐겨 찾아 '파리21구'(파리에는 20개의 구가 있다)로 통한다.

파리지앵들은 가슴이 답답할 때 이곳을 방문해 탁 트인 해변의 테라스에 앉아 이 지방 특산인 칼바도스를 마시며 마음을 추스른다.

트루빌의 아름다움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9세기 전반의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였다. 그는 1831년 7월 초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원고를 집필할 조용한 장소를 찾기 위해 센강 하류를 항해하던 중 우연히 트루빌을 발견한다. 어부들 사이에만 알려진 이 자그마한 어항을 처음 본 순간 뒤마는 마치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하던 외딴 섬 같다며 환호했다.

이곳의 호젓하고 낭만적인 정취에 반한 뒤마는 이후 때론 친구를 데리고,때로는 정부를 데리고 이곳을 수차례 방문했다. 트루빌의 아름다움은 곧 입소문이 퍼져 19세기 중반 이후 부호들의 휴양지로 인기를 끌게 된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인상주의 화가들도 매혹시켰는데 모네는 그중에서도 단골손님이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햇빛에 비쳐진 대상에서 받은 느낌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은빛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는 그런 관념을 형상화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파리에서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트루빌이 각광받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트루빌로 향하는 인상주의자들의 행렬 속에는 카유보트라는 귀공자도 끼어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2류화가로 간주돼 미술사에서 외면됐으나 최근 들어 개성적인 화풍이 인정되면서 재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동료 화가들처럼 그림을 파는 데 연연해하지 않아도 됐던 그는 이 새로운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한편 인상주의자들의 재정적 후원자가 된다.

그는 화가들의 전시회 비용을 대고 아틀리에 임대료를 대신 내줬을 뿐만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의 작품을 비싼 값에 매입하기도 했다. 모네는 힘겨운 시절 그의 후원 덕분에 허기를 면했다.

카유보트가 트루빌에 도착한 것은 1884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 언덕에 올라 탁 트인 해변 풍경을 넋 나간 듯 바라보았다. 빌라 뒤로 저 멀리 바다 위에 떠있는 요트들이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는 여느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빠르게 붓을 놀려 햇빛에 반사된 대상의 순간적 느낌을 화폭에 담았다.

얼핏 보기에 '트루빌의 핑크빛 빌라'는 여느 인상주의 그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동양인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만 그렇다. 19세기 말 서양인의 눈에 비친 이 그림에는 종전의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엎는 엄청난 변화가 담겨 있다.

먼저 이 그림은 구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화면에 대각선을 그려 보면 언덕과 건물이 대각선 아래쪽에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구도는 서양 미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거대한 수면을 오른쪽에 절반 가까이 배치한 것은 서구인의 통념상 난센스에 가깝다.

게다가 화폭에 그려진 경치는 앞부분의 빌라에서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갑작스레 저 멀리 수평선의 먼 경치로 후퇴한다. 이렇게 가까운 경치와 먼 경치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방식도 서양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왼쪽 건물의 일부분이 잘려진 채 묘사된 것 역시 회화의 금기를 깬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그림은 높은 지점에서 대상을 내려다보는 조감도의 시점을 채택하고 있다. 서양의 화가들이 통상적로 채택하는 정면으로 바라본 시점과는 다른 '새의 눈으로 바라본 시점'인 것이다. 당시만 해도 조감법은 지형도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바람은 대체 어디서 불어온 것일까. 놀랍게도 진원지는 일본이었다. 안도 히로시게의 목판화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카유보트 작품의 출처를 잘 말해준다. 19세기 후반 유럽에는 일본에서 유입된 채색목판화가 화제였는데 이는 새로운 미술을 갈구하고 있던 서양의 화가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간주됐다.

참신한 구도,색채의 주관적 사용,대상의 대담한 생략과 미화,가까운 경치의 대담한 클로즈업은 서양미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방법이었다.

이 새로운 화법에 매료된 카유보트,모네,드가 등 인상주의 화가들은 너나할것 없이 일본판화 수집에 열을 올렸고 이 이국적인 회화원리를 자신들의 그림에 접목했다. '트루빌의 핑크빛 빌라'는 새로운 예술의 이상을 찾아 헤매던 인상주의자들의 고뇌와 그 대안을 일본미술에서 찾으려 했던 이들의 노력이 아로새겨진 문화적 화석인 것이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