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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안도현

눌재상주사랑 2016. 5. 5. 16:40

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

 

안 도현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에 대하여

불꽃 향기 나는 오래 된 무덤의 입구인 별들에 대하여

푸르게 얼어있는 강물의 짱짱한 下焦에 대하여

가창오리들이 떨어뜨린 그림자에 잠시 숨어들었던 기억에 대하여

 

나는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네

어두운 것들은 반성도 없이 어두운것이서

 

열 살 때 그 집 뒤뜰에

내가 당신을 심어놓고 떠났다는 걸 모르고 살았네

당신한테서 해마다 주렁주렁 물방울 아기들이 열렸다 했네

누군가 물방울에 동그랐게 새겼을 잇자국을 떠올리며

미워지는 것들을 내려놓느라 한동안 아팠네

간절한 것은 통증이 있어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고나면

이 쟁반 위 사과 한 알에 세 들어 사는 곪은 자국이

당신하고 눈 마추려는 내 눈동자인 것 같아서

 

혀자르고 입술 봉하고 멀리 돌아왔네

 

나 여기 있고, 당신 거기 있으므로

기차소리처럼 밀려오는 저녁어스름 견뎌야하네

 

 

섬농하다는 말이 있다. 섬세하고 농후함을 합한 말이라 한다. 시의 품격을 말할 때 섬농(纖穠)은 시의 자리 한 곳을 꼭 차지한다. 서정은 시가 메말라 가는 곳에 속살을 덧대고 풀섶을 일으켜 갈라진 모국어의 논둑과 밭둑에 물고랑을 만든다. 이 시처럼 섬농이 있는 서정은 모국어의 뿌리에 불을 붙여 돌리는 쥐불놀이 같은 것이다. 시인은 세계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자다. 어떤 것은 사생활이 애잔하고, 어떤 사생활은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어떤 것은 세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사랑을 하고 있다. 시인은 아기 손톱만 한 단어들을 돌보느라 사생활을 다 사용한다. 단어 속에 개울을 만들고 그 속에서 집안의 수건들을 빨기도 하고 혼자 찾아간 깊은 계곡의 바윗돌을 들어 올려 희고 묽은 가재 한 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길가에 버려진 고무신 한 짝을 보면 눈물이 나서 가꾸던 문장에 인정(人情)을 다 주고 싶기도 한다. 어떤 시인은 눈이 어두워 사랑을 할 수 없다. 또 어떤 시인은 눈이 어두워 사랑 안에 숨는다.

김경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