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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여성]­로세티 ‘베아트리체 죽음에 관한 단테의 꿈’

눌재 2008. 11. 14. 13:19
[명화 속 여성] ­로세티 ‘베아트리체 죽음에 관한 단테의 꿈’
비운의 베아트리체가 없었다면 단테의 ‘신곡’도 없었을 것
  • 흰 옷을 입은 여인은 막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양쪽에 도열한 하녀들은 꽃무늬 천으로 그녀의 몸을 가리고, 들꽃과 화살을 손에 든 천사가 여인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선사하고 있다. 잠옷을 입은 남자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이 광경에 충격을 받은 양 땅에 못박힌 듯 얼어붙어 있다. 여인의 마지막 순간을 정지된 시간으로 고이 간직하려는 것일까.

    화가는 단테 게이브리얼 로세티로, 부모가 단테를 흠모하여 붙인 이름이다. 작품의 제목은 ‘베아트리체 죽음에 관한 단테의 꿈’.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이라 불리는 단테와 그의 운명적 사랑인 베아트리체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단테는 불과 아홉 살에 베아트리체를 만나는데, 그녀의 존재는 그의 영혼과 심장을 관통하는 큐피드의 화살처럼 단 한번의 만남으로 그의 마음속에 영원불멸의 사랑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가문에 시집을 갔을 뿐 아니라, 결혼 2년 뒤 요절하고 말았다. 그녀 나이 방년 24세.

    가슴 떨리게 사랑했던 그녀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한마디 고백도 감히 하지 못한 채, 멀찌감치 떨어져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의 죽음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일생일대의 충격이었다. 그녀의 죽음 이후 실제로 10년 동안 타락한 채 외지를 방황했다고 하니 첫사랑에 상처 입은 외로운 영혼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되었을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내 시는 이전에 존재한 적 없고 앞으로도 나오지 못하리. 그것을 쓰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으리.” 베아트리체를 가슴에 묻은 단테가 장장 20여년의 집필기간을 두고 탄생시킨 필생의 역작 ‘신곡’의 시발점이 된 말이다. 지옥에서부터 연옥, 천국을 여행하면서 죄와 벌, 기다림과 구원 등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 뛰어난 상상력과 결합해 탄생한 방대한 스케일의 서사시인 ‘신곡’은 오늘날까지 인류의 문학사상 불후의 금자탑으로 손꼽히고 있다.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또 그렇게 일찍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신곡’을 접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처럼 인간의 삶을 더 풍요하게 하고, 그 덕분에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불멸의 예술작품의 뒤에는 언제나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인 ‘뮤즈’가 있게 마련이었다.

    본디 뮤즈란 학예를 관장하는 9명의 그리스신화 속 여신들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단테와 베아트리체 외에도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최근의 존 레넌와 오노 요코처럼 연인이자 예술적 영감을 부여해 준 파트너가 그 주류를 이룬다. 또한, 베아트리체와 단테처럼 로세티와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시달도 같은 아픔을 가졌다. 결혼 2년 만에 시달이 사망하였고 로세티는 그 사랑의 아픔과 그리움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뮤즈들은 그들이 가진 매력만으로도 예술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며, 예술가의 정신적 지주가 되거나 때로는 엄격한 코치로서의 역할을 해 어쩌면 예술가보다 더 인간사에 공을 끼친 인물들이라 할 만하다. 예술은 흔히 하얀 캔버스에 그려나가는 인생으로 비견되듯이, 어쩌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이미 뮤즈로서의 잠재력이 있는 게 아닐까. 세상 모든 남성들에게 그들의 ‘작품’을 완성해 가도록 영감의 원천을 부어주는 존재로서 말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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