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인물탐구-강덕수 STX회장‥나이 50에 샐러리맨 벗어던진 `재계 알라딘`
STX그룹 신임 임원들은 한결같이 '휴대폰 노이로제'를 호소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회장님 전화' 때문이다. 승진 며칠 뒤부터는 화장실 갈 때도 휴대폰을 들고 간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통치 스타일'은 독특하다. 모든 게 속전속결이다. 다른 그룹 오너들은 보통 비서실장을 찾는다. "김 상무한테 내일 아침에 들어오라고 하세요. " STX그룹에선 이런 일이 거의 없다. 강 회장은 궁금한 일이 생길 때마다 직접 전화기를 든다. 그리고 해답을 얻을 때까지 파고든다.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회장님 전화를,그것도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시로 받아야 하는 일은 분명 고역이다. 강 회장은 야구로 치면 '플레잉 코치'에 가깝다. 직접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지시도 내리는 '실무형 오너'다. 바닥에서 벌어지는 일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STX 임직원들은 그를 어려워한다. 강 회장은 '8년차 오너'다. 그 전엔 '샐러리맨'이었다. 강 회장 만의 경영 방식은 대부분 샐러리맨 시절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숫자에 밝다. 동대문상고를 나와 주산과 부기로 다져진 데다 1973년 쌍용그룹에 입사한 이후 재무 기획 등 '숫자'와 관련된 일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쌍용에서 같이 일했던 박일환 전 삼보컴퓨터 사장은 "다른 직원들이 계산기로 하는 것 보다 강 회장의 암산이 더 빨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의미없는 숫자나 현황 분석보다 '향후 전략'에 더 무게를 둔다. '꿈을 찾아 세계로'라는 STX그룹의 모토는 강 회장의 이런 '미래지향적' 성향을 집약한 문구다. 그럼에도 보고서에 과거 수치를 잔뜩 적어오는 '눈치 없는' 임원들은 혼 날 각오를 해야 한다. 지난 주말 경북 문경에서 열린 'STX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도 몇몇 사장들이 혼났다. "극심한 글로벌 경기침체로 내년 사업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발표를 했다가 강 회장으로 부터 한소리 들은 것."불황이 올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그걸 이겨낼 수 있는 방안만 보고하세요. " 강 회장은 이렇듯 현실에 안주해 움츠러드는 것을 싫어한다. 과거 사례 한 토막.2001년 초 대동조선(현 STX조선) 인수작업을 맡았던 실무진이 당시 강 사장에게 '회사 재무여력 등을 따져볼 때 인수가는 400억~600억원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강 사장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보고서를 덮었다. "인수 시너지 효과를 감안해 가격을 써야 합니다. 남이 얼마를 쓸 지를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대동조선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따져서 인수가격을 정해야 합니다. " 결국 STX는 대동조선 인수전에서 경쟁사가 제시한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1000억원을 써냈다. 강 회장은 그림을 크게 그리는 편이다. 목표를 향해 과감히 몸을 던지는 승부사 기질도 강하다. 안팎에서 STX그룹을 아슬아슬하게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 11월 쌍용중공업의 새 주인이 된 한누리컨소시엄은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던 강 회장을 대표이사로 발탁했다. 그러나 업황 때문인지 회사는 주인이 바뀐 뒤에도 별달리 힘을 내지 못했고 주가도 바닥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러나 강 회장의 눈엔 가능성이 보였다. "회사를 아예 사버리자." 결심이 서자 가족들과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 그리곤 중ㆍ고교에 다니던 자녀들까지 모아놓고 가족회의를 했다. "아빠가 큰 결정을 내리려 한다. 일이 잘못되면 앞으로는 학비를 대지 못할 수도 있다. " 강 회장의 그때 나이 쉰 살.함부로 모험을 감행하기에는 늦은 나이였지만 밀어붙이기로 했다. 2001년 2월 상여금으로 받은 자사주(1000주)를 기반으로 쌍용중공업 주식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개인돈 20억원을 쏟아부었다. 당시 갖고 있던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세 채가 주요 자금원으로 활용됐다. 가족들은 전셋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연간 매출 27조원짜리 STX그룹은 이렇게 태동했다. 강 회장의 사람 욕심은 유별나다. 신입사원 한 명당 연수 비용만 1000만원 이상을 쓴다. 크루즈선에 태워 주고 고급호텔 숙식도 제공한다. 소비재를 파는 기업이 아니지만 TV와 신문에 꾸준히 광고를 낸다. 사원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우수 인재들을 끌어모이기 위해서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취업하고 싶은 기업을 조사할 때마다 STX그룹이 최상위권에 꼽히는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봉급쟁이 시절 몸에 밴 습관 때문일까. 강 회장은 겸손하다는 평을 듣는다. 최근 강 회장을 만난 한 재계 인사는 "너무 자신을 낮추는 바람에 헤어질 때 왠지 뭔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STX그룹은 내년 매출 목표를 올해보다 10%이상 많은 30조원으로 잡았다. 2001년 그룹 출범 당시 매출은 2605억원.목표가 달성되면 불과 9년만에 115배 가량 그룹의 외형이 커지는 셈이다. 강 회장에게 '재계의 알라딘'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엔 불안한 시선도 적지 않다. 주력인 조선업과 해운업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강 회장에게 또 다른 '마술램프'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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