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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속의 남미-한국화가 4인의 화첩기행] <5·끝>칠레

눌재상주사랑 2008. 12. 22. 14:07
[배낭 속의 남미-한국화가 4인의 화첩기행] <5·끝>칠레
오렌지색이 황홀한 보라빛으로 …神이 만든 아타카마사막의 일몰
  • ◇여행객들이 묵어가는 칠레의 아타카마 마을. 저 멀리 뒤편으로 보이는 것이 안데스산맥이다.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들어가는 국경은 해발 3400m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이른 아침에 국경에 도착해서 그동안 우리를 위해 운전해 주고 밥을 해준 운전사와 주방 아주머니에게 몸에 지닌 볼리비아 동전과 지폐를 긁어모아 팁으로 주고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두 대의 트럭에 실었던 짐을 승합차에 몰아 싣고 국경지역을 넘었다. 아쉬운 볼리비아 사막 투어를 마치고 내친김에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사막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칠레는 남북 길이가 4200㎞(대략 경부고속도로 10배의 길이), 동서 길이가 180㎞(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시속 60㎞로 달리다고 해도 3시간이면 닿을 거리)로, 한마디로 뱀장어에 비유되는 길쭉한 나라다. 동서로는 안데스산맥과 태평양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나라는 뚜렷한 사계절을 자랑하는데, 칠레 사람들은 맘만 먹으면 한 나라 안에서 한 시점에 사계절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자랑거리다.

    아타카마사막 투어의 시작은 산페드로 아타카마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거의 30, 40도 경사로를 미끄러지듯이 내려가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발 3000m 이상에서 평지로 내려가야 하니 자동차가 비행기 착륙하듯 달려가야만 했다. 아타카마는 미국 서부영화에 나올 법한 온통 모래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로 주민들보다 관광객이 더 붐빈다. 볼리비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산티아고행 버스를 타기 위해 머물다 가는 곳이다. 버스가 그리 많지 않아 예약을 못한 사람들은 이곳에 어쩔 수 없이 머물다 가야만 하기에 숙박시설은 비교적 잘돼 있는 편이다.

    세계 3대 사막으로 꼽히는 아타카마사막은 모래가 아닌 자갈로 이뤄졌다. 달의 계곡은 볼리비아 라파스와 칠레 아타카마 두 곳에 있는데, 아타카마에 있는 달의 계곡이 규모면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아타카마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달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사막지대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우주인들의 훈련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아타카마사막은 지구의 풍경 같지 않은 묘한 낯섦이 있다. 사진으로 보아온 화성이나 달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원래 바다였던 곳이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라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해저 지형이 3000m 고원에 드러난 곳이라고 한다.
    ◇자전거로 아타카마사막 투어에 나선 화가들. 용광로 같이 퍼붓는 햇빛을 머리에 이고 프라이팬처럼 달아오른 길에 나선다는 것은 또하나의 고행이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본격적인 사막 투어에 나섰다. 용광로같이 퍼붓는 햇빛을 머리에 이고 프라이팬처럼 달아오른 길에 나선다는 것은 고행에 가까운 일이다. 모래가 층층이 쌓여 깊은 골짜기를 이루기도 하고, 높은 사구를 이루기도 하고, 또 소금 결정으로 된 기묘한 모양의 바위도 눈에 띈다. 높은 사구에서는 샌드보딩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습이 꼭 우리의 스노보딩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타카마사막 투어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사막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다. 기울어가는 해가 모래밭에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뜨겁고 건조한 사막 이미지를 더한다. 사막에서의 일몰은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빛과 사막의 빛이 점점 변해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렌지색에서 보라색으로 조금씩 색이 바뀌는 모습이 황홀하고 신비스러웠다. 지구가 아닌 외계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아타카마를 뒤로하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가기 위해 남미여행에서 이제 익숙해진(?) 24시간 장거리 버스에 몸을 맡겼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태평양을 따라 해안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안데스산맥이 거대한 조형물을 눕혀 놓은 것처럼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론 바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칠레의 들판은 거의 선인장으로 뒤덮여 있다. 가도가도 끝없는 길에 어떤 위대한 조각가가 설치미술을 해놓은 것처럼 다양한 모양의 선인장들이 아름답게 서 있는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며칠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싶은 독특한 풍경이다. 
    ◇칠레 와인에 담은 김범석의 ‘산티아고의 추억’.

    잘 닦여진 도로며 정돈된 해변의 모습은 이제까지 보아온 다른 남미 나라와는 차이가 있었다. 칠레가 남미 제일의 부국임을 실감나게 한다. 버스는 밤을 뚫고 새벽을 가로질러 정오쯤에 산티아고에 들어섰다. 다른 남미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산티아고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구시가지 중심광장의 이름이 아르마스인 것도 같다.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번화가인 아우마다거리에 대통령궁과 주요 관청이 자리하고 있고, 오긴스길이 구시가지의 뼈대를 이루는데 분위기가 우리의 명동이나 종로를 연상시킨다. 신시가지는 최근에 조성된 고급 주택지와 상업지대로 우리의 청담동 로데오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산티아고 거리에서 하나 특이한 것은 한국 자동차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차종을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만나다니…. 칠레에서 한국차의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한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 천지인 남미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풍경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제일 먼저 맺은 나라가 칠레였다.

    산티아고 시내에서 평소 관심이 많던 월드뮤직에서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빅토르 하라, 비올레타 파라, 아타우알차 유판키의 음반을 구하러 레코드 가게에 들렀다. 칠레의 민속음악을 계승 발전시킨 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방인에게 가게 주인도 빅토르 하라의 음반을 오디오에 걸며 관심을 표명한다. 특히 군부독재로 통칭되는 칠레의 아픈 역사와 함께한 빅토르 하라에 대해 가게 주인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존경의 뜻을 표한다. 국내에서 구입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은 가격과 종류에 실망하고 돌아나오긴 했지만 여행 중에 만난 특별한 경험이었다.

    칠레는 이렇듯 벌써 우리와 가까운 나라가 되어 있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로 친숙한 파블로 네루다의 나라,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이스터섬의 1000개가 넘는 모하이의 나라, 3000m가 넘는 고봉들의 웅장한 모습이 압도적인 파타고니아의 나라,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일정상 네루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비냐델마르와 이슬라 네그라, 가장 가까운 육지에서 비행기로 5시간이 걸린다는 태평양의 외딴섬 이스터, 그리고 빙하와 피요르 지형이 탄성을 자아낸다는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진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가보지 못했다.

    언젠가 꼭 칠레를 다시 찾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아쉬운 32일간의 남미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한 달여의 시간이 꿈꾸듯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대자연의 침묵과 인간, 그리고 문명의 부산함에 대한 탐사였다.

    글·사진=이만수 김범석 박병춘 김경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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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8.07.24 (목) 20:28, 최종수정 2008.07.25 (금) 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