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의 후예들 삶 고스란히 느껴져…
멕시코 치아파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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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후안 차 물라 마을의 교회 광장.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멕시코의 대표적 오지인 치아파스 주에 있다. 도시의 긴 이름 못지않게 그 역사도 깊다. 1528년 스페인 식민지 초기 콜로니얼 양식(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정복한 식민지에서 유행한 건축양식)의 도시가 정비된 이후, 1893년 이전까지 치아파스의 주도 역할을 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아직도 전통 생활 방식을 고집하는 여러 인디오 마을을 보기 위해서다.
인디오 마을을 찾기 전 원주민들의 민속자료를 전시해 둔 나발롬 박물관(Museo Na Balom)을 찾았다. 나발롬이란 인디오 말로 ‘호랑이굴’이라는 뜻이다. 박물관을 만든 사람은 서양인 발롬(Balom) 부부다. 이들은 치아파스 밀림지대를 13년간 누비며 인디오들을 만나 민속자료들을 수집했다. 전시물 대부분은 멕시코 정부조차 확보하지 못한 귀중한 인류학 자료들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발롬의 아내가 촬영했다는 라칸돈족의 사진들. 라칸돈족은 치아파스 밀림 속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고집스럽게 마야 문화를 지켜가는 인디오들이다. 주택을 개조해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안내원들이 방문자를 따라다니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안내원들은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머물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산 크리스토발에서 약 10㎞ 떨어진 산 후안 차 물라(San Juan Cha mula) 마을을 찾았다. 초칠계 인디오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이 부근에서는 큰 마을에 속한다. 멕시코 여행은 어느 도시든 늘 중심에 있는 소칼로(Zocallo) 광장에서 시작된다. 대형 십자가 하나가 우뚝 서 있고 콜로니얼 양식의 교회 건물들이 광장을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마을 역시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한가운데 광장이 있고, 한쪽엔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초칠어를 사용하고 스페인어도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이들은 초칠 부족의 규율에 따라 생활하며 그 법을 따른다. 그들의 종교 또한 아주 특이하다.
◇산 후안 차 물라 옆의 인디오 마을인 시나칸탄에서 만난 모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달아난다고 믿는 인디오들을 찍기가 쉽지 않다.
스페인 침략으로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침략자들의 종교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초칠족은 전통 신과 기독교를 접목하고자 했고, 이런 신앙행위는 사제들에게 이단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디오 신앙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갈등으로 1868년 마을을 중심으로 종교 봉기가 일어났다. 이 봉기에 참가한 인디오의 수가 1만3000명에 이르렀다. 스페인 군대의 진압으로 인디오들은 참패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교회 앞마당에 흰 수건을 두르고 술이 달린 사냥꾼 조끼를 걸친 사내들이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폭죽 소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북을 멘 악단이 등장하더니, 교회 앞마당을 한 바퀴 돈 다음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그들을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으로부터 천이 길게 늘어져 있고 바닥에는 마른 풀을 깔아놓았다. 바닥 군데군데에 촛불을 켜둔 채 알 수 없는 중얼거리는 소리가 교회 안에 가득하다. 함께 들어온 악단은 성가를 연주하고 있다. 너무 낯선 풍경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마른 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부를 살핀다. 색색의 천으로 만든 끈을 둘러쓰고 있는 박수무당 같은 예수그리스도의 상, 천을 두르고 장난감 같은 왕관을 쓴 신상들, 과일로 만든 묵주를 목에 걸고 있는 성모상, 촛불이 일렁일 때마다 들려오는 웅성거림…. 환영을 보는 것 같아 고개를 저어본다.
이 기이한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인디오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달아난다고 믿어 사진 찍는 걸 꺼린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카메라 대신 이곳 풍경을 수첩에 스케치한다.
◇아와카에 있는 수령 2000년짜리 나무, 아이들 50명이 둘러서야 안을 수 있다.
드디어 의식이 끝났는지 악단들이 밖으로 나가 마을로 향한다. 동네 아이들이 그 뒤를 따른다.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들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 본다. 토담으로 만들어진 마을회관에 다들 모여 있는 걸 보니 뭔가 행사가 아직 남은 것 같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메고 있는 카메라 가방에 신경이 쓰인다. 사진을 찍지 않겠노라고 손짓 발짓 해가며 다짐해 보인다.
한 사내가 술을 병째로 마시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게 술병을 내밀었다. 마셔 보라는 뜻인가? 나는 그가 건네는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어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이 타들어가는 줄 알았다. 내 찡그린 얼굴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제야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낸다. 이방인에 대한 통과의례인가?
한낮인데도 창문이 없어 컴컴한 건물 안쪽에 십자가가 세워진 제단이 있다. 붉은 판초에 술이 많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의식을 주재한다. 아마도 모자의 술이 많고 적음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것 같다. 건물 한쪽에서는 여인네들이 불을 지피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마치 우리네 시골 잔칫집 같은 풍경이다. 무슨 의식인지 물어볼 수도 없다. 어떻게 보면 종교의식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전통축제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종교의식이든 축제든 그것이 이들 삶의 한 방식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축복인 것을. 이 여행자도 그들의 축복 한 자락을 얻은 것 같아, 돌아나오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여행작가
>> 여행정보
멕시코시티에서 치아파스 주도인 툭스틀라구트에레스까지 항공편이 있다.
약 1시간20분 소요. 툭스틀라구트에레스에서 산 크리스토발까지는 차로 2시간 걸린다. 멕시코시티 동버스터미널에서 산크리스토발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대략 15시간 소요.
산 크리스토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수령 2000년의 나무가 있는 도시 오악사카나 유명한 마야유적 팔렌케가 있다.
- 기사입력 2007.12.21 (금) 09:45, 최종수정 2007.12.21 (금)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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