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여성] 귀도 레니 -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죽음을 선택한 세기의 팜므파탈 클레오파트라의 최후
관련이슈 : 명화 속 여성
20090108003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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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미모의 여인이 상체를 거의 드러내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커다란 눈에서는 허무함이,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비정함이 느껴진다. 풀어 헤친 뽀얀 가슴 위로 한 마리 독사가 탐욕스럽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는 걸까?
바로크시대 화가 귀도 레니의 작품 속 여인은 세기의 팜므파탈 클레오파트라다. 기원전 30년, 천하를 호령하던 이집트 여왕은 지금 막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는 중이다. 독사는 시중을 들던 여인의 과일 바구니를 통해 몰래 들여온 암살자로,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에 죽음의 입맞춤을 선사하고 말았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 혈통을 물려받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에서 태어나 호메로스를 비롯한 그리스 문학과 헤로도토스를 비롯한 역사, 수사학, 천문학, 의학 등 방대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했고 그림과 악기 연주, 체육까지 연마했다. 그녀의 남성 못지않은 학구열과 재능, 언변과 쾌활한 성격은 훌륭한 통치자가 되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매력적인 여성으로서 동시대 남성들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권 당시 이집트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대기근으로 굶주린 농민들의 반란이 속출했고, 산적 떼가 출몰해 농촌은 황폐화되었다. 더 심각했던 것은, 지중해의 패자로 떠오른 로마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전락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로마와의 충돌을 피하면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발군의 외교능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녀가 로마의 실력자인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에게 차례로 접근했던 것도 사랑 그 자체보다 여성이라는 점을 무기로 활용한 정치술의 결과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녀의 통치 기간 중 이집트는 영토를 확장하고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할 수 없음을 직감한 그녀는 먼저 생을 마감한 안토니우스의 묘 곁에서 죽기로 결심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야망과 사랑 모두를 위해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던 여인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차치하고라도 적국의 노리개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한 것은 일국의 여왕의 지위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백성들도 존엄한 여왕의 치욕스런 삶보다 거룩한 죽음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자존심이나 품위를 지키기 위한 대가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소수이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진정한 웰빙(well-being)은 웰다잉(well-dying)에서 나온다며 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려는 시도가 조금씩 일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끝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병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시킨다는 개념의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기사입력 2009.01.09 (금) 01:05, 최종수정 2009.01.09 (금)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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