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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이름은 박미산이다. '渼山', 물결무늬 미에 메 산이다. "여자 이름에 山은 너무 세다"고 하자 이름을 지어준 스승은 "물에 비친 산 그림자라는 뜻이니 그대로 쓰라"고 했다. 2008년 나이 쉰 넷에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까지 50년 넘도록 박미산은 그림자로 살았다. 본명 명옥(明玉)은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이름에 한(恨)이 너무 많았다.
명옥은 인천 명문 인일여고에 입학했다. 밤이면 중학생들 가르쳐 번 돈으로 손아래 두 남동생과 여동생을 먹여 살렸다. 곧잘 쓴 글로 백일장에 뽑힌 적도 많았다. 대학은 일찌감치 잊었다.
1973년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갔다. 경인선 열차 속에서 마주친 대학 간 고교 동창들이 미팅이며 스터디 이야기를 하면 주눅이 들었다. 그걸 잊으려 악착같이 일했지만 가끔 울컥, "내 인생 이렇게 살다 끝나면 어떡하지"하고 겁이 났지만, 오래 고민하기엔 세상은 모질고 금방 포기하기는 쉬웠다.
부잣집 착한 남자 만나서 결혼을 했다. 1977년 6월이었다. 부잣집에 시집가서 마당 깊은 서울 성북동 대저택에 살았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남편이 주는 월급봉투 모으는 재미로 살았다. 딱 넉 달 그렇게 살았다.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크게 세 번, 작게는 셀 수 없이 망했다. 시댁이 워낙 부자여서 10년은 갔다. 딸 둘 낳고 살면서 결국 1986년 2년 동안 카페를 운영하며 남편 빚을 다 갚았다. 그래도 모자라 1995년 마침내 집을 팔고 아랫동네 작은 빌라로 내려왔다. 두 딸이 물었다. "왜?" "응, 아빠 사업이 잘 안 돼서 그래. 반드시 다시 올라갈 거야." 그사이 너그러운 시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착하고 지성적이던 시어머니는 치매를 앓게 됐다.
큰딸이 고3이던 1996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나는 없다." 집안일에 아이들과 시어머니 병 수발로 살아온 세월, 까맣게 잊고 있던 공부가 떠올랐고 문학이 떠올랐다. 1997년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골동품 관련 사업을 하던 남편이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집안일을 끝내면 하루 이용료 100원인 시립도서관으로 갔다. 졸업이 다가오자 점점 욕심이 커졌다. 그래, 이제 글을 쓴다.
갠지스가 흐르는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박미산은 시(詩)를 보았다. "활활 타는 시체 옆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있고 그 옆에서는 명상을 하고 옆에서는 구걸을 했다. 돈 없어서 장작 모자란 시체는 타다 말고 강물에 버려졌다. 아, 이게 바로 시(詩)구나! 정말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다시 살아나는 거 같았다." 새벽 강변에서 그녀가 부활했다.
2002년, 박미산은 고려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에 합격했다. 나이 48세로, 웬만한 교수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입학 첫날, 대학원 지도교수인 최동호 선생이 학생들에게 지시했다. "자작시 10편씩 가져와라." 박명옥이 말했다. "저는 시를 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수필을 제출했더니 교수가 세 번을 거듭 물었다. "열심히 할 것인가." 세 번을 똑같이 대답했다. "이 나이에 공부하러 온 사람이에요. 끝까지 하겠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시 합평회(合評會). 자기 시 한편씩 낭독하고 박 터지게 비판당하는 자리다. "남들 앞에서 저절로 눈물이 나도록 깨지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듬해에 시어머니까지 병세가 악화됐다. 100원짜리 도서관도 갈 수 없을 정도로 병 수발에 매달렸고 논문은 결국 제때에 쓰지 못했다. 최동호 교수가 그녀를 불렀다. "열심히 한대서 붙여줬더니 뭔가.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끝나는 거다." 남편에게 말했다. "반드시 다시 모실 테니 6개월만 형님 댁에 어머니를 모시게 해주시라." 이듬해에 박명옥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주제는 월북 시인 백석의 동화시 연구였다.
박명옥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 도전해 합격했다. 2006년 어느 합평회 날 발표한 시에 대해 아무도 박 터지게 비난을 하지 않았다. 시 공부 4년 만의 일이었다. 박명옥은 '유심'이라는 문예지에 시를 보냈고 첫 등단의 꿈을 이뤘다. 제목은 '늙은 호수'. 소식을 들은 지도교수가 불같이 화를 냈다. "일간지 신춘문예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왜 딴 길로!" 박명옥이 대답했다. "재(再) 등단하겠어요, 선생님."
그리고 지난해 마침내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너와집'이라는 시로 당선됐다. 오십 년을 에둘러 도착한 세월이다. 첫 시집도 냈다. 제목은 '루낭(淚囊·눈물 주머니)의 지도'. 가난한 여인 박명옥, 시인 박미산은 모교인 방송대와 안양대에서 강의를 하며 눈물의 세월을 들려주고 있다. 방송대에서는 학교를 빛낸 대표적인 일곱 인물 가운데 박미산을 선정했다.
입력 : 2009.01.10 03:19 / 수정 : 2009.01.1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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