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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김유정(민주당 대변인)

눌재 2009. 1. 19. 11:58
[나의 애독서] 열하일기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의 기행문
웅장한 필체·솔직한 감정표현 돋보여
  • 어느 지방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적 특색을 알리는 데 있어 기행문만큼 실감나는 글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지방을 여행하려고 할 때 포털 사이트에서 그곳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소감이다.

    여행지에 대한 소감은 일종의 작은 기행문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이 청나라 고종의 고희 축하 사절을 따라가서 청나라의 성경(盛京), 북평(北平), 열하(熱河) 등을 지나면서 새로운 문물을 기록하고 현지의 친구들을 사귀면서 필담으로 대화한 기록을 정리하여 쓴 일종의 기행문이다.

    그 필체가 웅혼하고 거침이 없으며 감정을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하여 현 세대의 우리가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준 높은 감각을 지니고 있다. 발간 당시에는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문장 때문에 보수적인 유학자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조그마한 문고본이었는데 청나라를 가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며 겪는 어려움이 첫 장부터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향후의 여정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매력에 끌려 결국 그 자리에서 일독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단순한 기행문을 뛰어넘어 문화와 문명사의 비교 분석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새로운 문물을 대할 때마다 조선의 것과 비교하여 이것은 어떠어떠한 점이 우리 것보다 더 낫기 때문에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을 수없이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벽돌의 유용성이라든가 청나라 온돌과 조선 온돌의 차이, 굴뚝 높이의 효율성 등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그런가 하면 민족사학의 문제도 깊이 있게 다루었다. ‘도강록(渡江錄)’에서는 고조선 시대에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여러 가지 문헌적 근거와 현지에서 불리는 지명 등을 따져서 자세히 고찰하고 있다.

    한사군의 위치가 요동 땅에 있었으며 요동은 원래 우리나라의 영토였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어서 후대의 혼란을 일소해주고 있다.

    책에는 또한 두 개의 단편 소설이 들어 있다. ‘양반전’과 아울러 박지원의 3대 풍자소설이라 할 수 있는 ‘허생전’과 ‘호질’이 그것이다. 소설들은 양반사회의 비리와 가식을 뛰어난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내고 있다.

    약 200년 전의 소설이지만 현 시대에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비유해도 하나도 다를 게 없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자세가 바르게 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힘이 있다.

    ‘허생전’은 간단한 매점매석으로 큰 돈을 번다는 내용으로 당시 조선의 취약한 경제 구조를 고발한다. 부국이민(富國利民)의 건전한 경제사상을 내세우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책은 정치·경제·문화·기술·역사 등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분야를 많이 다루고 있지만, 원래 기행문으로 여행자로서의 고달픔과 새로운 견문의 즐거움을 2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어서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민생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절실히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연암의 애민사상과 사회적 비리에 대한 통렬한 풍자는 현재까지도 내 마음의 나침반이요 귀중한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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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8.10.17 (금) 17:43, 최종수정 2008.10.17 (금)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