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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번성했던 메소아메리카 최대의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의 전경. 4㎞에 달하는 중앙 도로와 왼쪽에 보이는 세계 2위 규모의 태양 피라미드가 위용을 자랑한다. 전성기 때 인구는 20만명에 달했다 하며, 이 문화는 수백년 후에 출현한 아즈텍 제국에 영향을 주었다. 멕시코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또는 우스개로 하는 말 중에 "신(神)은 너무 멀리 있고, 미국은 너무 가깝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그 만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국경 지대나 북부 대도시를 가보면 이 말이 맞다. 동굴 주거지 외에는 이렇다할 고대 유적지는 없고, 미국식 빌딩, 영화관, 쇼핑센터 같은 것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부터 시작하여 남쪽을 향해 엘살바도르까지 가다보면 곳곳에 수없이 세워져 있는 신비한 고대 도성이며 크고 작은 피라미드 군에 입이 벌어진다. 지금도 궁핍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신은 멀리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래전부터 옥수수와 같은 작물의 풍요를 빌기 위해 피라미드를 쌓고 꼭대기를 제단으로 장식해 태양신을 모셨다. 피라미드의 모양은 수천년의 세월 동안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지만 대체적 윤곽은 이집트 피라미드를 닮았다. 다른 점은 이집트 피라미드는 넓은 사막에 띄엄띄엄 위치한 왕의 무덤인 반면, 메소아메리카의 피라미드는 종교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이기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주변엔 제례 의식을 거행하던 광장과 신관과 관리들의 거처가 있다. 하나의 공동체 마을이자 도시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중앙 피라미드, 부속 건물군 및 광장, 제례용 구기장(球技場)을 기본으로 하는 도시 형태는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올메카 문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3천여년전 멕시코만 중남부 연안 지역에서 발생하여 1천년간 지속되었던 올메카 문명은 기원전 800년경부터 꽃피우기 시작했는데, 신전으로서의 피라미드를 세우는 전통의 흔적은 지금도 라벤타(La Venta) 지역에 가면 볼 수 있다. 이 올메카 문명은 기원전 300년경에 쇠퇴하지만 이어서 중부 고원지대에서 발현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문명, 태평양 연안의 몬테알반(Monte Alban) 문명,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밀림지대 및 저지대에서 번성한 마야 문명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마야인들은 무려 1천500여년에 걸쳐 부침을 거듭하면서 한반도보다 몇 배나 더 넓은 지역의 이곳저곳에 도성을 건설하고, 1천개도 넘는 피라미드를 건축하였다. 14세기에 메소아메리카 일대를 거의 평정한 아즈텍 제국과 달리 마야인들은 한번도 통일된 국가를 이룩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마야 제국이나 마야 황제란 말은 성립이 안된다. 마야 문화는 고대 그리스처럼 일종의 도시국가들이 여러곳에 분포되어 상호 협력 또는 경쟁하는 그런 구조였다. 이들 도시 국가들은 제례용 인신공양을 위한 희생물 획득을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상호 전쟁을 벌였다. 마야에서의 도시간 투쟁은 상대 영역의 점령을 목표로 하지 않았는데, 이는 영토 국가의 개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마야인들은 인근 도시와 동맹을 맺기도 하고, 한 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기도 하였다. 후기에 들어서는 이러한 도시들이 기후 변동, 전염병, 자원 고갈 등으로 상호간 파괴와 약탈을 하고 제사장의 권위도 떨어지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조각상들이 수백년 동안 정글이나 흙속에 묻혀서 잊어졌다가 유럽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마야인들은
원숭이가 여기저기 뛰노는 우거진 밀림을 뚫고 우뚝 솟은 피라미드를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경외감이 들고, 더운 열기 속에 헉헉거리며 꼭대기에 올라가보면 사방으로 펼쳐진 끝없는 평원의 서쪽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석양 모습에 희열을 느낀다. 강을 역류해서 힘들게 찾아가 상형문자로 장식된 정교한 비석과 화려한 색채의 벽화를 보노라면, 옛 사람들의 그 놀랄 만한 지혜와 기술에 진한 감동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시와 석조 건축물을 짓는데 동원된 평민과 노예들의 희생을 상상하며 가슴을 저린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진출 이전엔 그곳에 소도 말도 없었다. 순전히 인력으로만 애써 이룩한 도시를 이런저런 이유로 버리고 떠나 새 터전을 건설하거나 숲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던 그들의 후손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민주주의가 반영되었다는 열주랑도 한낱 부질없는 사치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마야인들이 쇠락하고 흩어진 뒤를 이어 더 넓고 강력한 제국을 이룩한 아즈텍인들도 소수의 스페인 군인들에게 허망하게 무너진 후 주인 자리를 백인에 내주고, 그 후손들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의 변방에 머물며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그들 조상이 남긴 유적지에서 기념품 가판이라도 하고, 전통 춤과 음악으로 몇 푼의 수입이라도 거둘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백인과 혼혈이 되어 새로운 인종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된 메스티조라는 것이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일까? 메소아메리카의 그 찬란한 고대 문화 유적지를 갈 때마다 놀라움과 함께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늘 찜찜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도 그들의 쌍꺼풀진 크고 착한 눈망울을 보면 한편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경제적 우월감으로 으쓱해하며 빨리빨리를 외치던 내 자신이 어느 순간에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 그리운 눈망울을 찾아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피라미드의 신비한 세계로…. ◇메소아메리카 : 고고인류학에서 쓰는 용어로 오늘날의 멕시코 중부에서 시작하여 중미 일대까지 퍼진 고대 문명권을 일컫는 말이다. (대구가톨릭대 국제실무학부 교수) | |||||||||||||||||
2009-01-22 08:06:12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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