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여행▶/세계풍정

[김우중 교수의 중남미 여행]프롤로그-거대한 문화의 비빔밥

눌재상주사랑 2009. 1. 22. 15:04

[김우중 교수의 중남미 여행] 프롤로그-거대한 문화의 비빔밥
 자연·인종·문화, 나라마다 색다른 '매력적 대륙'
아르헨티나 탱고의 발상지인 보카 항구의 길거리 쇼.
아르헨티나 탱고의 발상지인 보카 항구의 길거리 쇼.
우리가 말하는 중남미는 원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라틴아메리카라고 해야 맞지만,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북미에 속한 멕시코와 별도의 개념인 카리브 지역까지 포함해서 중남미라 일컫고 있고, 외교통상부 직제에서도 그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 연재물에서도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다만 독자 여러분께서 원 뜻은 알고 읽어주기를 바란다. 김우중


세계 6개 대륙 중 한국에서 가장 잘못 알고 있고, 장님 코끼리 만진 것보다도 못한 정도의 지식이나 경험만으로 도매급으로 평가받는 대륙은 아마도 중남미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동북, 동남, 서남, 중앙, 중동 등 다양한 지리적 환경과 문화를 포괄하고 있는 아시아를 놓고 한 마디로 이렇다라고 하기가 불가하듯이 좋은 뜻이건 나쁜 뜻이건 한 마디로 '중남미 현상 운운'하는 것은 애시당초 성립이 안되는 말이다.

우리에게 중남미라고 하면 축구, 낙천성, 라틴 음악, 파나마 운하 같은 긍정적 이미지보다는 불안, 부패, 가난, 더위, 마약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러한 이미지 중 일부는 맞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남미내 특정 국가 또는 일부 지방의 어떤 사례가 일반화되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중남미의 부정적 이미지는 1960~70년대의 마카로니 웨스턴 또는 미국인의 우월적 시각으로 그린 서부 영화에 나오는 멕시코의 모습이 투영되어 그려진 것이 많다. 그것도 150년전 텍사스나 애리조나 같은 황량한 국경지방이 배경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로 3시간은 걸리는 저 북쪽 먼 곳의 모습이다. 게다가 그 영화라는 것이 구레나룻에 큰 모자를 쓰고 탄약을 몸에 걸친 사나이들이 모랫바람 날리며 선인장 사이를 말타고 누비면서 약탈이나 하는 장면이 다반사이니, 현대의 멕시코까지 온통 산적떼의 나라처럼 보이고, 그게 중남미 전체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또 우리들이 대체로 어떤 지역을 경제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버릇이 있어, 우리보다 평균 소득 수준이 못한 중남미에 대해서 도매급 부정적 편견이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잘 살면 문화도 우수하고, 소득이 높으면 치안도 좋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많이 작용하기도 한다. 생활수준과 문화수준, 소득과 치안이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찬란한 고대 문화권에 유럽인이 들어와 식민지로 삼았던 중남미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쿠데타·마약·가난 등

부정적 이미지 벗어나

기회의 땅으로 변신

중남미의 최북단인 멕시코의 티후아나(Tijuana)에서 남쪽 끝 도시인 아르헨티나의 우슈아이아(Ushuaia)까지의 거리는 대략 1만3천㎞에 이르고, 제트 여객기로 쉬지 않고 가도 15시간은 족히 걸린다. 서울서 남아프리카 희망봉까지 가는 거리다. 서부 영화의 그 황량한 경치 말고도 스위스같은 호수, 안데스 같은 거대한 산맥, 자동차로 20시간을 달려도 끝날 줄 모르는 대평원(pampa), 그랜드캐니언을 능가하는 협곡, 지평선만 보이는 하얀 소금밭, 길이만 2천㎞가 넘는 모래 사막, 밀림 지대, 빙하 등이 공존하는 곳이다. 인구가 2억명에 가까운, 브라질 같은 나라가 있는가하면, 30만명도 안 되는 벨리즈 같은 곳도 있다. 남한보다 작으면서도 생태계는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것보다 더 다양한 코스타리카와 다윈의 진화론이 나왔다는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섬은 생태 관광의 보고이다.

이름이 비슷해 그게 그것같이 보이지만 파라과이(Paraguay)는 인디오와 혼혈 메스티조 일색이고, 우루과이(Uruguay)는 100% 백인국이다. 멕시코나 페루를 보면 같은 인디오라 해도 수천년간 여기저기에 놀랄 만한 고대 문명을
마야 후기의 피라미드-치첸잇사.2
마야 후기의 피라미드-치첸잇사.
페루 쿠스코의 태양제 가는 길의 노천 식당.3
페루 쿠스코의 태양제 가는 길의 노천 식당.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며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인 티티카카(Titicaca) 호수.4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며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관광객을 상대로 수공예품을 파는 잉카족 여인.5
관광객을 상대로 수공예품을 파는 잉카족 여인.
칠레 북부의 달표면과 닮은 계곡. 하얀 부분은 염분이 나타난 모습임.6
칠레 북부의 달표면과 닮은 계곡. 하얀 부분은 염분이 나타난 모습임.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운 아르마스 광장과 예수회 성당.7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운 아르마스 광장과 예수회 성당.
8
이룩한 종족이 있는 반면에, 저 한편 아마존 오지에는 아직도 사냥과 낚시 만으로 먹고 사는 원시 부족이 있다. 지도상으로야 조그만 나라로 보이지만 중미의 과테말라 면적은 남한보다 크고 원주민 언어만 23개에 달한다. 같은 남미라 해도 베네수엘라는 석유 부국이고 미녀의 나라이면서도 세계에서 인구 대비 살인 사건이 두 번째로 많이 일어나는 나라인 반면, 한국과 첫 FTA체결국으로 유명한 칠레는 우리보다 몇 단계 안전하고 공무원 부패지수가 낮은 반듯한 나라다.

맘보(mambo), 차차차(cha cha cha), 살사(salsa) 같은 세계적 사교춤곡은 물론이고 고산지대 목조 관악기에서 나오는 구슬픈 곡, 강렬한 태양 아래의 경쾌한 타악기와 현악기의 조화, 우아한 탱고 선율의 원산지이자 또 그것이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지역도 이곳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모양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1천개도 넘고, 그리스 신화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로마제국처럼 광대한 지역에 놀랄만한 도로망, 관개수로, 석조 건축물이 존재하는 대륙이다. 그래서 얼마전 전세계인의 투표로 새로 결정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2개가 중남미에서 나왔다.

하나 건너 중국집이 있는 나라가 있나 하면, 쇠고기 식당이 압도적인 나라가 있다. 파라과이는 내륙국이면서 해군(정확히 표현하면 江軍이다)이 있고, 치밀한 기질로 정평이 있는 독일인, 일본인 후예들이 깨끗한 농촌을 건설한 점 또한 흥미롭다. 한 마디로 인종뿐 아니라 도시 형태면에서도 고대 원주민 문화 유적지부터, 유럽풍 도시, 초호화 해변 리조트가 곳곳에 혼재하는 종합박물관 같은 곳이다. 대체로 스페인어가 잘 통하고, 대다수 주민이 가톨릭 문화 속에 산다는 것 이외에는 나라별, 지역별로 공통점이 별로 없다. 중남미를 굳이 한마디로 한다면 여러 재료를 버무린 비빔밥이고, 제각각의 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다.

中·日 일찍부터 정성

한국도 뒤늦게 관심

제품·드라마에 '한류'

이민의 역사가 우리보다 긴 일본인들은 브라질에선 수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있고, 페루에선 대통령까지 나왔다. 중국은 일찍부터 자원 확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주석과 총리가 번갈아 중남미 방문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 5년간 점보 비행기에 매일 자국인을 꽉 채워 실어나른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 지역에 정성을 쏟고 있는 점 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늦었지만 중남미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과테말라, 도미니카 공화국,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엔 한국 섬유업체가 엄청나게 진출해 있고, 전자제품의 대부분이 한국산이라 할 정도로 시골 여인숙에 가도 국산 TV나 냉장고가 눈에 띈다. 길거리 택시의 90% 이상이 한국산인 곳도 있다.

미주 대륙의 유일한 공산국가인 쿠바는 북한 단독 수교국이지만 거리 광고판엔 남한 제품 선전 문구만 눈에 띈다. 중남미 어딜 가도 동남아와 마찬가지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유명 한국 연예인 팬클럽도 있다. 한국어 강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렇다 할 자원이 없고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곳이다.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이들이 사는 곳, 한국에게 독보적으로 무역 흑자를 안겨주는 효자이자 21세기 기회의 땅인 중남미로 안내한다. 대한민국이 변했듯 중남미는 급변하고 있다. 더 이상 쿠데타가 없으며, 전부 민간 정부가 통치하는 나라들이다. 앞으로 계속 들려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중남미를 아우르는 독주, 2중주, 합주, 교향곡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과 교수)



2009-01-08 07:50:22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