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속 여성] 목마른 산모·아기 물 못마시게 심술 부리다 개구리로 변신
200902260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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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인 피터 브뢰겔과 함께 15∼16세기 플랑드르미술의 한 계보를 이어왔던 얀 브뢰겔. ‘꽃의 브뢰겔’로 불릴 만큼 정물화와 풍경화가 그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근간이다.
마치 도감을 보는 듯 정교하고 섬세한 ‘꽃병’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울 것 같은 인생도 결국 덧없는 것이니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올바르고 착하게 살아가라는 의미의 ‘바니타스(vanitas)’ 교훈이 담겨 있다.
그 때문인지 얀 브뢰겔의 인물화에는 언제나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써 인물들이 작게 배치돼 있다. 그의 작품 중 드물게 신화를 소재로 한 ‘레토와 리키아 농부들’은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호숫가에서 무언가 호소하는 여인은 그리스신화의 여신 레토, 두 아기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다. 레토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쌍둥이를 임신하지만, 이 쌍둥이들이 헤라가 낳은 아이들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란 예언이 들리자 헤라는 지상의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레토를 받아들이지 말도록 압력을 넣었다. 덕분에 레토는 각지를 떠돌며 갖은 고생을 치르게 되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제우스가 헤라의 감시망으로부터 레토를 보호하는데 자신이 가진 자원을 십분 활용하여 천신만고 끝에 쌍둥이가 태어났다.
출산 후에도 여전히 헤라의 끈질긴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아기들을 데리고 살 길을 찾던 중 리키아 지방에 이르렀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갈증으로 기진맥진해 있던 그녀의 눈 앞에 드디어 물가가 나타났다. 하지만 아기들과 목을 축이려는 순간, 근처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달려들어 물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자연은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으며, 물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비인간적 처사라고 항변하여도 이 같은 호소를 들은 척 만 척, 누추한 모습의 모자들을 욕하며 흙탕물을 일으켜 먹지 못하게 하는 등 방해를 일삼았다.
계속되는 농부들의 폭언과 조롱을 견디다 못한 레토는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탄원하였다. “이들이 평생 샘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늘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런 소리를 내게 하소서!”
여신의 간곡한 소원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들은 지금도 물가에 살고 있다. 물속에 들어가기도, 수면에 몸을 내밀기도 한다. 물속에서도 무엇이 부족한지 시도 때도 없이 꺼이꺼이 울고 있다. 머리와 몸뚱이는 한데 붙어 버렸고, 입은 거칠고 넓게 찢어져 있으며, 부풀어 있는 목구멍을 통해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거칠다. 평생 그들이 좋아하는 연못가를 지키는 개구리로 변해 버린 것이다.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아무리 누추하고 행색이 초라하다 해도, 지친 산모와 아기들의 목을 추기지 못하게 하다니, 리키아 농부들의 행위는 인간 본성의 선악에 대한 의문이 생길 정도로 지독하다. 자기 배를 불리는 데 급급하여 이웃에 베풀 줄 모르는 불쌍한 현대인들과 많이 닮아 있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긴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나 걸렸다”고 고백하였다고 한다. 사랑을 입 발린 소리로 내기는 쉬우나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가슴으로 사랑하기는 몹시 힘든 일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을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닮고 본받아야 할 분마저 잃었으니 리키아 농부들처럼 연못가의 개구리신세가 될까 두려워진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기사입력 2009.02.26 (목)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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