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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를 쓰고 싶다면… "술마시고 연애를 하라"

눌재상주사랑 2009. 3. 6. 17:56
좋은 詩를 쓰고 싶다면… "술마시고 연애를 하라"
안도현씨 詩作法 ‘가슴으로도 쓰고…’ 펴내
“한 줄을 쓰기 전 백 줄을 읽어라”등 26가지 제시
적절하게 인용한 한국의 名詩 읽는 재미도 ‘쏠쏠’
  • 우리나라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도 드물지만 시를 써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시인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시인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도현(48·사진) 시인은 최근 펴낸 시작법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한겨레출판)의 머리글에서 이렇게 시인이 많은 데도 “날이 갈수록 비시적인 생각과 행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움직이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더 나아가 “시인이 되는 일을 단순히 개인적인 명예와 욕망을 채우는 장신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왜 또 그리 많으냐고 개탄한다. 그는 문제의 핵심을 ‘글 쓰는 자의 태도’에서 찾는다. 그래서 이 시작법에서 단순히 시 쓰는 기술에 관해 나열하기보다는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일’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싶었다고 피력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26가지 시작법을 제시한다. 이를 테면 ‘재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믿어라’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하라’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구하라’ ‘형용사를 멀리 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같은 충고들이 그것이다. 그 구체성을 끌어내는 다양한 서술은 딱딱한 시작법을 떠나, 안도현 자신의 시에 대한 애정과 시 쓰기에 대한 내밀한 고백처럼 읽힌다. 여기에다 적절하게 인용한 한국 시인들의 명편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들머리에서 그는 먼저 ‘시를 쓰는 당신’에게 세 가지를 주문한다. 술을 많이 마시고, 연애를 많이 하고,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으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섣부른 오해는 금물이다. 술을 마시되 혼자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술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지 주정을 부리기 위한 약물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애를 하되 천하의 바람둥이가 되라는 말은 아니라는데, 무릇 모든 연애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연애감정도 없이 시를 쓰려고 대드는 일은 굳은 벽에 일없이 머리를 부딪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젊은 시인들의 시를 먼저 찾아 읽으라고 충고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상식을 전복시키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안도현만의 특별한 제안처럼 들리지만, 그는 이 책에서 모호하게 타협하기를 원치 않는 듯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선명하게 내세운다.

    “젊은 시인의 시는 교과서요, 늙은 시인의 시는 참고서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는 한 끼의 밥이지만, 외국 시인들의 시는 건강보조식품이다. 제발 릴케와 보들레르와 엘리엇을 읽었다고 거들먹거리지 말라. 두보와 이백을 앞세우지 말라. 볼썽사납다. 그들 대가의 시집은 두고두고 천천히, 읽어라.”(56쪽)

    시인 지망생이나 초보 시인들에게만 유용한 책이 아니라는 점은 곳곳에 포진한 안도현의 시를 대하는 열혈에서 증명된다. 그는 “시라는 형식을 빌려 일방적인 고백을” 하는 시를 거론하며 “어두운 노래방에서 혼자만 마이크를 잡고 있는 시인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썼다. 그는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될 것을,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일 것을 왜 시로 쓰는지 답답해한다. 그는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이며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하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가 시종 목소리만 높이는 건 아니다. 자신이 시를 쓸 때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퇴고를 할 때는 얼마나 쩨쩨하고 치사한 사내가 되는지 솔직하게 고백한다. 시에 대한 곡진한 애정이 묻어나는, 짐짓 청을 높인 그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문학의 근본을 새삼 돌아보면서 신발 끈을 다시 매게 된다. 그는 “시인이란 시를 빚는 사람이면서 자기 자신을 빚는 사람”(217쪽)이라고 썼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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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9.03.06 (금) 17:32, 최종수정 2009.03.06 (금)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