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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곤의 꽃피는 문화유산-효심으로 만드는 문화 유산

눌재상주사랑 2009. 4. 22. 13:05

김남곤의 꽃피는 문화유산


|Since 2006.03.07

전 - 월간 <사람과산> 사진 기자

 




효심으로 만든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김남곤

조회수4427 등록일2006.03.10 10:12

                                                                                                        [수원화성 갤러리]

 

  수원화성은 정조의 지극한 효심에서 근원이 되었다. 세자로 책봉 받았으나 세력 싸움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회상하며 항상 슬퍼했던 정조.

 

화홍문
성내를 남북으로 흐르고 있는 수원천 북쪽문 위에 설치된 화홍문은 용연이라는 연못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화홍문 일곱 개의 아치형 수문을 지나 달빛과 조명을 받아 황홀경을 연출한다. 우측 언덕위에는 동북각루가 자리 잡고 있다.

 

 영조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지 13년 뒤,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외로운 넋을 위로키 위해 서울 청량리 밖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무덤을 당대 최고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옮긴다. 무덤을 옮긴 몇 년 뒤에 살아계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이 되는 1795(을묘)년에 아버지 무덤인 현륭원(顯隆園)을 찾아 참배를 올린다. 그것이 그 유명한 을묘원행(乙卯園幸)이다. 정조대왕의 행렬은 화려하고 장대하여 조선시대 최대의 원행인 동시에 부모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비추어 볼 수 있다. 화산부근에 수백 년 동안 삶을 이어오던 고을 전체를 지금의 수원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화성이 축성된다.

 


방화수류정
북쪽문인 화홍문과 동북각루 바깥쪽에 자리 잡은 용연(용지)라 부르는 연못으로 화성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곳 있다.

 

  수원화성은 현재 사적 제3호로 지정, 1997년 12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후 세인에게 더욱 주목 받게 된다. 화성은 조선 최고 학자인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성화주략(1793년)」 지침서로 하여 영의정 채제공의 총괄아래 화성유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2년 10개월에 걸쳐 화려하고도 웅장한 조선 최고의 건축물로 축성된 것이다.

 

화성장대
주변의 사방을 내려다보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곳으로 2층으로 오르면 사방 100리가 보여 성안에 있는 군사를 한눈에 보고 지휘할 수 있는 곳이다.

 

  수원화성은 우리나라 성곽 중 가장 과학적으로 설계 되었고 구조물 또한 치밀하게 배치되어 우아하고 장엄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특히 성벽 아래 부분은 큰 돌을 쓰고 위 부분은 작은 돌을 사용 했다. 성벽의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드나듦이 용이하게 축조 되었고 내측은 흙을 돋우어 메우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벽 위에 높이 1 ~ 1.2미터 정도의 여장을 쌓아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뿐만이 아니라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성곽에 들어가는 재료는 규격화 하고 거중기 같은 기구를 사용함은 우리나라 성곽사상 가장 특기할 만 한 일이다. 화성은 가장 최근에 축조한 성으로 동서남북 관문이 있는데 동쪽에는 창룡문, 서쪽에는 화서문(보물 제403호), 남쪽에는 팔달문(보물 제402호), 북쪽에는 장안문이 있다. 각 문 사이에는 성 바깥의 동정을 살필 수 있는 공심돈(空心墩)을 만들었고 성안에는 서장대, 동장대등 2곳의 장대를 만들어 군사 훈련도 시켰다. 또한 통신시설인 봉돈을 비롯하여 5개의 포루와 2개의 노대 4개의 각루를 설치하였다. 성 중심을 관통하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화홍문)과 남수문(유실) 등을 축조하여 아름다움을 더 했다.

 

서북 공심돈
일종의 망루와 같은 것으로 전돌로 네모지게 쌓아 다른 성곽 건축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공법으로 경관을 한층 더 아름답게 하고 있다.

 

  수원화성의 둘레는 약5.7Km, 면적은 130ha 이다. 동쪽지형은 낮은 구릉지대며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약40여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그 중 23개소는 저마다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은 한국 고유의 누각 이다. 화성은 군사적 목적보다 정치, 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에 의해 축성되었다. 화성은 18세기 동양의 성곽을 대표하는 한국 전통 건축의 완성품으로 건축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봉돈
성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봉돈은 주변 사태 상황을 인근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낮에는 연기를 올렸고, 밤에는 봉화를 올렸다. 5개의 화독 중 평상시에는 1개의 봉화를 올렸으며,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선에 접근하면 3개, 경계선을 침범하면 4개, 적과 접전 시는 5개의 봉화를 올려 비상사태를 알렸다.

 

 공심돈, 적대, 포루, 노대 등에 홈을 내어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에게 끓는 물을 쏟아 붓기 위하여 만든 현안 등은 화성만의 독특한 시설이다. 또한 화홍문(북수문)은 수문의 기능과 7칸의 수문위에 축조된 문루와 방화수류정은 우리 문화에서 만 볼 수 있는 미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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