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
폴 크루그먼-김인준 대담 전문
폴 크루그먼 美 프린스턴대 교수(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김인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 대담
김인준 교수; 노벨상 수상을 뒤늦게나마 다시 축하한다. 아마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모두 받은 첫번째 인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위기 이후의 세계 경제 질서,그리고 미국과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몇가지 경제 이슈들에 대해 질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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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 위기와 세계 경제 질서]
김 교수; 당신이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의 재정적자와 세계 경제의 불균형이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의 배경이 된 것 같다. 이같은 불균형이 완화될 것으로 보나? 그리고 누가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측면에서 미국 달러와 국제 통화시스템에 어떤 일이 생길 것으로 본다.
크루그먼 교수 : 내 생각에 미국의 재정 적자 상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금융시스템의 혼란 때문에 사람들이 미국 달러에 몰려들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지만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달러는 더 약화될 것이고 적자 규모도 줄 것이다. 그건 아시아 국가,특히 중국의 흑자가 적어진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 대가는 아시아 국가들이 지불할 것이다. 중국은 1조3000억달러의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다. 이 자산의 가치는 떨어질 게 분명하다. 이건 중국이 1조3000억달러나 투자하기 전에 생각해 봤어야 하는 대가다. 국제 통화질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지는 알 수 없다. 달러가 과거의 위상을 되찾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러다고 그 위상에 큰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김 교수 : 기축통화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뜻인가?
크루그먼 교수 : 그렇다. 기축통화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님비 현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기축통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축통화는 개방된 자본시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매우 유동적이어야 한다. 나는 유로도 달러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럽의 금융 시장은 너무 분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브레튼우즈,새로운 협약,새로운 기축통화는 내가 생각하기엔 환상에 불과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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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교수 : 굉장히 치열한 논쟁거리다. 우리는 그동안 중앙은행은 자산 가격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왔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 비율이 낮아 긴축의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품이 붕괴되면 통화를 풀어 실물경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위기를 통해 거품이 너무 크면 그런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과도한 차입이 도가 지나치면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나 유럽 중앙은행,일본은행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위기를 통해 알게됐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 쉽지 않은 문제다. 왜냐하면 당시의 상황이 거품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앨런 그린스펀은 2005년도에 주택가격 버블은 없다고 말했었다. 앨런 그린스펀이 그렇게 나오는데 다른 중앙은행들이 버블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또 다른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아닌 상태에서 금리를 올리는 것은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모든게 완벽할 수는 없다. 만약 정말 버블이라고 생각되면 빨리 터뜨려야 한다. 금리를 단번에 올릴 수도 있고 규제 등 다른 정책수단을 쓸 수도 있다. 아무튼 자산가격의 거품을 무시하는 정책은 사용하면 안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보다시피 재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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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교수 : 아니다. 그런 방법은 안된다. 그렇게까지 기계적일 수는 없다. 나는 인플레이션 타게팅은 옹호한다. 하지만 너무 경직된 타겟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자산가격에 대한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부나 중앙은행이) 소비재 가격과 주택 가격의 평균을 컨트롤해서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2%에서 2.5% 정도의 타겟을 잡고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범위다. 하지만 만약 타겟을 밑돌아도 자산 가격이 통제 범위를 벗어나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질 경우에는 금리를 올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김 교수 : 이번 금융위기는 리먼 브라더스와 같이 복잡하고 덩치가 큰 금융회사들의 실패가 전체 금융시스템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같은 금융회사들을 어떻게 규제해야 한다고 보나?
크루그먼 교수 : 룰은 굉장히 간단하다. 우리는 예금 업무를 하는 전통적인 은행들을 1930년대부터 규제해왔다. 왜냐하면 뱅크런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 경제가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걸 대공황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것을 배웠다.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회사들은 예금 업무를 하지 않지만 이들의 실패가 전통적인 은행들의 실패와 같은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따라서 만약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구제할 필요가 있는 회사라면 평상시에 은행과 똑같이 규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레버리지에 제한을 둔다던가 자본 요건을 강화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비은행업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은행 지주회사도 규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씨티은행에 대해서는 감독 및 규제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보험과 투자은행,상업은행을 모두 가지고 있는 씨티그룹에 대해서는 감독 및 규제 절차가 없다. 1930년대가 아닌 21세기 버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 : 지난 4월 열린 G20 회담에서 거시건전성 감독 강화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이런 아이디어에 동의하나? (거시건정성 감독이란 금융시스템 전반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위험 요인을 초기 단계에서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감독 방식)
크루그먼 교수 : 그렇다. 우리는 리스크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4년전 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의 대다수 사람들은 시스템 리스크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파생상품이 리스크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파생상품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우리는 원칙에 의거한 규제를 해야 한다. 이제 금융회사들이 계약서를 살짝 바꾸는 식으로 규제를 피해갈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규제 당국이 "당신이 계약서에 다른 용어를 사용했지만 나는 당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건 하면 안되는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리먼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김 교수 : 금융 당국의 경기 역행적(counter-cyclical) 규제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이같은 접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경기역행적 규제란 경기가 좋을 때 대출을 억제하고 좋지 않을 때 장려하는 식의 정책으로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담보안정비율,즉 LTV 혹은 소득수준 대비 부채 상환능력 비율,즉 DTI가 대표적)
크루그먼 교수 : 솔직히 아직 거기에 대해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스페인에서 보듯이 어떤 국가들에서는 경기역행적 정책이 상당히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페인의 경제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은행들은 그 상황으로부터 잘 격리시켜 놓았다. 하지만 경기 역행적 정책을 위한 기계적인 룰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점에 확신이 가지 않는다. 은행들의 강한 경기순환성이 지금의 문제를 만들었고 이를 피하고 싶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김 교수 ; 시스템에 위험이 있을 때 빚을 주식(equity)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규제 당국에 부여하는 것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크루그먼 교수 ; 그건 좀 더 폭넓은 이슈인 거 같다. 만약 규제당국이 구조조정을 해야 하거나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의 재산을 관리해야 할 때 그런 권한를 부여하는 건 필요하다. 정해진 툴을 강화해서 자산 스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임시적으로나마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좀 이상하게 이행되고 있다. 정부가 법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저 "이걸 하지 않으면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며 압박을 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명확한 룰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김 교수 : 그동안 유럽 국가들이 금융 위기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해 왔다. 이유에 대해 설명해 달라.또 그런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가?
크루그먼 교수 ; 유럽의 대응은 여전히 효과적이지 않다. 미국에서 첫 위기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유로존의 경제는 미국 보다 더 위축될 것 같다. 이는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보다 운신의 폭이 좁다. 미국 FRB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FRB가 그럴 수 있는 것은 국채가 있기 때문이다. ECB는 미 FRB와 같은 정책을 펼 수 없다. 유럽의 재정 정책은 조율되지 않고 부적절하다. 미국이,충분하지는 않지만,상대적으로 강한 경기부양책을 쓸 수 있는 이유다. 유럽의 어느 국가도 이같은 일을 기꺼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혜택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 버릴 것(spill over)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상황이 정책 효과를 더디게 한다. 이는 유럽이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클로드 트리셰(ECB 총재)가 번 버냉키보다 일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김 교수 : 지난 10월 초 정점에 올랐던 달러화가 유로화 대비 약 8% 가량 떨어졌다. 앞으로도 달러 약세 현상이 계속되리라고 보는가? 또 달러 약세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미국 수출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오바마 정부가 유럽에서 자금을 끌어오는데는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크루그먼 교수 : 환율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나는 확신하기 어렵다. 달러-유로 환율에 관해서는 특히 미국이 상당한 외채 부담을 지고 있는 반면 유로존에는 그런 부담이 없기 때문에 가늠하기 쉽지 않다. 또 유로화의 강세는 (펀더멘털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밀어올리는 힘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예측이 더욱 어렵다.
외부로부터의 자금 조달과 관련해 미국이 적자를 매우기 위해 많은 돈을 끌어와야 한다고 걱정하는 것은 굉장히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이다. 평상시의 상황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지금 단기 금리가 제로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저축을 원하고 있다. 고용 상황이 개선된다면 더 저축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더 이상의 외채를 조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 다른 얘기를 하자면 우리는 '절약의 역설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좋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나는 통장 잔고를 늘리기 위해 저축을 원한다. 하지만 당신이 저축을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자본을 수출하는 외국인들도 절약의 역설에 한몫 한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아무튼 사실 약 달러는 미국에게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그걸 원한다. 하지만 유럽인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과거를 쉽게 잊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고의 관성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은 위기 상황인데도 평상시의 사고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평상시의 법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시기에 살고 있다.
김 교수 : 미국 경제에 대해 묻겠다. 최근에 미국 경제가 바닥을 치고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기대가 일고 있다. 3월초에 비해 주가가 35%나 올랐다. 은행들은 놀랄 정도로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많은 경제 지표들의 악화 속도가 줄었다. 폭풍이 지나간 것인가? 아니면 성급한 낙관인가?
크루그먼 교수 : 내 생각에 '자유낙하'(빠른 속도의 경기 침체)는 끝났다. 재고 현황을 보면 약간 호전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환상만은 아니다. 주택 거품의 붕괴,저축률 증가에 따른 소비심리 저하 등은 큰 충격이었지만 한 번의 충격에 그쳤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됐다. 하지만 바닥을 쳤다(bottomig out)는 표현은 맞지 않다. 안정되고 있다(stablizing)는게 보다 어울리는 표현이다. 실제로 경기가 회복된다는 징후는 없다. 소비가 늘었다는 정보도 없다. 위기의 끝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한번 더 경기 하락이 올 수도 있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종종 즐겨 사용하는 비유는 '입원한 환자'다. 아주 심각한 상태에서는 벗어났지만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김 교수 ; 당신은 미국경제가 1990년대 일본 경기침체와 같은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 판단의 기준은? 은행 자본 확충이 실패했다는 판단에선가?
크루그먼 교수 ; 몇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은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 미국의 은행 정책은 1990년대 일본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밑그림을 그려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경기를 실질적으로 회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선 소비 수요가 계속 침체 상태로 지속될 것이다. 사실 2-3년전에는 저축률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당시의 소비 수요는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지금은 저축률이 4%다. 아마도 8%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엄청난 주택 버블을 경험했다. 주택 시장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에 달했다. 역사적인 표준은 4%다. 지금은 3%를 밑돈다. 우리는 그동안 집을 너무 많이 지었다. 그리고 그동안은 사람들이 집을 숭배했기 때문에 투자가 일어났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겠나? 나는 일본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본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났을 때 수출 붐이 찾아왔다.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나라가 동시에 문제를 겪고 있는 글로벌 경기 침체이므로 그런 식의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전반적인 상황은 미국도 일본처럼 10년 이상 장기침체(very prolonged lost decade growth)의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아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더 장기화될 수도 있다. 긴 스태그네이션 말이다.
김 교수; 최근 미국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는 낙관적인 시그널을 보여줬다. 이 결과가 신뢰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정부가 요구한 자본확충 수준이 충분하다고 보는가? 혹은 은행에 대한 자금 투입이 한번 더 있어야 하는가.
크루그먼; 스트레스테스는,전제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몇개의 메이저 회사들은 정부가 자본 투입을 위해 신용 보증을 제공했지만 자본 투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스운 일들이 일어났다. 미국 정부는 자본의 적정성에 대한 기준을 세웠다. 진정한 테스트는 금융기관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느냐는 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아직도 주요 은행들의 채권 가산금리가 매우 높다. 미국 정부가 뭐라고 말하던 간에 시장은 지급불능의 리스크가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자의적인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은행들이 그 요건을 충족했다고 하는데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은 은행들이 아직도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경제가 원하는 일을 해주기에는 너무 자본상태가 취약하다.
김 교수 ; 오바마 정부는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을 국유화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의 은행 구제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요 은행들이 여전히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고 믿는가? 여전히 국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크루그먼 교수 : 나는 그들이 말하는 '은행 구제계획(bank plan)'은 진짜 구제 계획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는 이런 수단들을 가지고 있고 민관합동투자프로그램(PPIP)를 가지고 있고 악성 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계획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진짜 은행 구제 계획은 인내심을 갖고 은행들이 문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50대 50 정도의 확률이다. 하지만 굉장히 천천히 이뤄질 것이고 당분간은 은행들이 제 기능을 복구하지 못할 것이다.
국유화와 관련해서,국유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진짜 목적은 은행들이 완전하게 안전해 지고 자본의 적정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해야하는 일은 정부가 일부 등급을 제외한 은행의 모든 채무에 대해 지급 보증을 하고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의 미래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질문은 어떻게 모럴헤저드 없이 이를 달성할 수 있느냐다. 은행은 자본 적정성을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해 계속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은행을 소유하지 않으면 자본을 투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1990년대에 스웨덴이 했던 것은 모든 은행의 채무에 대해 지급보증을 하고 가장 약한 두개의 은행을 정부가 소유한 것이었다. 이상적으로는 미국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기존 주주들의 주식은 공개매수하면 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런 일을 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김 교수 : 당신은 금융 사업을 1940년~1970년대처럼 다시 지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별한 방법론이 있나? '죽이기엔 너무 크다(too big to fail)'던지 '죽이기엔 너무 연계되어 있는(too connected to fail)' 등의 문제를 더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 은행들을 작게 만들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크루그먼 교수 : 그렇다.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too connected to fail'의 문제는 아마도 또 다시 불거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인과 같은 은행 지주사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아마 정부가 비전통적인 은행 업무를 다 없애라고 강요해도 시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여전히 계속 몸집을 키울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 레버리지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하고 자본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물론 은행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은 해줘야 한다. 과거 은행을 지루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즈니스 라인에 대해 제한을 두는 것이다. 금리를 컨트럴하고 이자 상한선을 두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더 작은 금융기관,더 큰 규제.나는 미국 정부가 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 교수 : 당신은 지난 20년간의 금융 혁신이 단지 환상일 뿐이었다고 생각하나?
크루그먼 교수 : 나는 사람들에게 금융 혁신이 정말 명확하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를 가져와 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자동현금지급기(ATM) 같은걸 얘기하더라."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의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받는다. 버냉키 의장이 몇주 전에 금융 혁신을 찬양하는 연설을 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사례가 신용카드였다. (웃음) 제발….이게 1년에 2천만 달러씩 받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그리고,복잡한 금융 기법은 장외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규제를 교묘히 빠져나가기 위한 방법이지 뭔가 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금융 혁신이라는 데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김 교수 : 오바마 행정부가 월스트리트를 개혁할 의지가 있나? 혹은 당신은 오바마 정부가 이미 월스트리트 사람들에게 사로잡혔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크루그먼 교수 : 나는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가이트너와 오바마는 월스트리트 은행들에 포섭당했다. 월스트리는 질문들을 입맞게 맞게 가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행정부와 커뮤니케이션이 잦다. 기본적으로,골드만삭스는 백악관에 정보원이 있다. 카드비도 못내는 사람들은 백악관에 정보원이 없지 않나. 의회는 더 상황이 좋지 않다. 꽤 많은 의원들이 이미 월스트리에 포섭된 상태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기로는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도 상황이 그렇게 까지 나쁘지 않다고 믿고 있고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월스트리트에 친구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건 부패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도덕성을 갖춘 정부이고 바보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실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김 교수 : 반대로 미국 법무부는 은행들에 대해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같은 시도가 재무부에 의해 무산될 것으로 보나?
크루그먼 교수 :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오바마 행정부는 진보적인 정부다.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민주당 중에서도 더 진보적인 쪽에서 선발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보다 더 진보적이다. 경제팀은 이 정부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파트다. 하지만 다른 부서로부터 압력을 받을 것이다. 나는 법무부가 재무부로 하여금 은행가들에 대해 더 회의적인 시각을 갖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무부가 모든 아젠다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요소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최소한 은행들에 대한 감시를 요구할 것이다.
김 교수 : 당신은 오바마 대통령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충분히 규모가 크지 않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 판단의 근거는 뭔가? 그리고 재정 확대정책이 이미 미국 경제를 돕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을 발견했나?
크루그먼 교수 : 부양책의 아주 일부만 시작됐다. 완전한 초기 단계다.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주정부나 지방 정부가 (각종 사업을) 줄이고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들 정부가 곧 돈이 도착할 것을 알기 때문에 원래 줄이려던 만큼은 줄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양책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숫자다. 이번 부양책은 GDP를 2%에서 2.5%정도 끌어올릴 것이다. 미국은 이미 1분기에 아웃풋갭(가능한 최대 GDP와 실질 GDP의 차이)이 7%에 이른다. 우리의 잠재 능력에 비해 7%나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나와있는 부양책은 겨우 3%밖에 끌어올리지 못한다.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저 경기악화를 다소 누구러뜨리는 조치다. 고용시장을 회복시키기에는 충분치 않다. 특히 민간의 수요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데 현재 부양책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저 문제를 조금 완화시키는 대책이다.
김 교수 : 하지만 시카고의 몇몇 경제학자들은 국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정부의 지출이 민간의 지출을 구축(crowding out)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 : 슬픈 일이다. 이미 경제학자들이 75년전에 배웠던 것들을 까먹다니.그건 잘못된 주장이다. 현재 미국과 세계 경제의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저축이 과도하다는 사실이다. 저출의 역설 시대다. 금리가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다들 저축을 원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적자재정을 통한 지출이 민간 지출을 위축시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지출은 경제를 확대시키고 경제의 확대는 다시 저축과 차입을 통한 지출로 이어진다.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경제학 교과서에서 나오는 원칙들을 잘못 이야기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충격적이다.
김 교수 : MIT의 경제학자들도 오바마 행정부가 재정확대정책에 너무 많은 돈을 써서 은행들의 자본확충이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돈이 남아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크루그먼 교수 :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여유가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예산 비용(net budget cost)은 사실 그렇게 크지 않다. 예를 들어 은행에 추가로 500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한다면 그 예산 비용은 1500억 달러면 충분하다. 별 문제가 안된다. 자본확충의 문제는 사실 의회 승인이다. 돈은 이슈가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가 더 이슈다. 그리고,주택 문제와 관련해서는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미국의 주택 가격은 여전히 비싸다. 지금도 소득 대비,혹은 렌트비 대비 집값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집값이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은행에 자본 확충을 한다고 경기회복으로 이어질 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재정지출을 통해 인프라에 투자한다면 확실히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더 좋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경기부양 패키지가 정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김 교수 : 한국 경제에 대해 질문하겠다. 한국은 2000억달러나 되는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고 경제의 체질은 1990년대 후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그런데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부터 원달러환율이 30%나 상승하는 등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크루그먼 교수 : 한국이 타격을 입은 건 금융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 중심의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제조업 수출국들이 위기로부터 타격을 받았다. 한국,일본,독일 모두 비슷한 형태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건 금융적인 측면의 위기가 아니라 무역이 영향이다. 세계의 무역량이 모든 사람들의 예상보다 더 많이 위축됐다. 대공황 때 보다더 더 큰 폭으로 무역량이 줄었다. 한국은 수출의존형 국가다. 세계 무역의 위축은 한국과 같은 수출국에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원화가치도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원화 가치를 올리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실 원화하락은 한국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외화부채가 많은 것도 아니고 재정상태는 1990년에 비하면 훨씬 좋다. 게다가 원화의 급락은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근민궁핍화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 ·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는 정책)'에 도움이 됐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경제이고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큰 경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잘 헤쳐나가고 있다.
김 교수 : 지난 3개월동안 우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흑자를 냈다. 그리고 올 한해 20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크루그먼 교수 : 그렇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와 비슷하다. 당시 가장 먼저 회복된 국가들은 모두 금본위제를 이탈해 통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던 나라들이다. (화폐가치를 높게 유지하려고 금 본위제를 고수한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회복 속도가 느렸다. ) 지금 금본위제는 없지만 한국도 비슷한 케이스다. 내가 생각하기에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진 국가들이 먼저 회복할 것이다. 한국,그리고 유럽에서는 영국 정도다. 파운드화가 급락하자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 했지만 이건 사실 굉장히 좋은 일이다.
정리=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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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5-21 14:43 / 수정: 2009-05-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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