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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속의 여성]피에르 쉬블레라스 - 다이아나와 엔디미온永眠에 빠진 미소

눌재 2009. 10. 16. 03:13
[명화속의 여성]피에르 쉬블레라스 - 다이아나와 엔디미온
永眠에 빠진 미소년 사랑한 여신의 애틋함
  • 한때 대학생 아들과 친구 사이처럼 보일 정도로 젊은 외모를 가진 주부가 안방극장과 서점가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었다. 그녀가 즐겨 먹는 음식과 운동법, 심지어 목주름 관리를 위해 신경 썼던 베개의 높낮이까지 따라 하려는 뭇 여성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해도 ‘나이듦’은 ‘철듦’을 의미했고, 어려 보인다는 것은 미성숙하다고 간주돼 나잇값을 못한다고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역전되었고, 바야흐로 ‘어려 보임’이 더욱 철저한 자기관리와 시간적·경제적 부(富)를 입증하는 척도로 추앙받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 여성들은 마치 고대 중국의 진시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젊음을 되돌려 줄 묘약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런 그녀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청춘의 비밀이 그리스신화 속에 있었으니, 잠자는 소년 엔디미온의 이야기이다.
    신화 속 엔디미온은 대부분의 삶을 잠을 자면서 보낸 불운의 미소년이다. 그 이유는 여러 유래를 통해 전해지나, 너무 잘생긴 그가 어느 날 올림포스산에 오게 됐는데, 감히 헤라를 넘보다가 제우스가 벌을 내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우세하다. 제우스는 그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대신, 영원한 젊음을 주었다. 365일 잠만 잔다면, 그 미모를 가지고 여성을 유혹할 수 없으리란 계산이었겠으나, 불행히도 그의 딸 아르테미스가 엔디미온에게 마음을 빼앗기리란 것은 예상치 못했다.
    아르테미스는 처녀의 수호신으로 순결을 상징한다. 처녀성을 훼손하려는 남성들에게는 ‘악타이온의 저주’처럼 무시무시한 형벌을 내릴 정도로 정의로 무장했던 그녀도, 준수한 데다 늙지도 않는 소년이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있는 모습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매일 밤 엔디미온이 잠들어 있는 라트모스 언덕 동굴로 찾아가 그와 밤을 지새웠다.
    다이아나는 아르테미스의 로마식 표기다. 많은 화가들이 다이아나가 어두운 밤에 엔디미온을 찾는 로맨틱한 광경을 작품화하였다. 프랑스 로코코 화가인 피에르 쉬블레라스는 영면(永眠)에 빠진 엔디미온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다이아나의 모습을 화폭에 그려냈는데, 옷깃을 헤치고 가슴을 드러내며 소년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여신이 왠지 가엾다.
    엔디미온은 누구나 잃고 싶지 않은 영원한 청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그 청춘은 눈을 떠 자신을 쓰다듬는 여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늘 꿈속에서 헤매는 나날들로 채워진다. 그저 사지를 내뻗은 채 숨쉬기만 할 뿐인 영원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다이아나의 방문이 위로가 될 따름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 그래서 젊음을 사로잡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몸짓이 더욱 서글프게 보인다. 그러나 불혹의 나이에도 주름 한 점 없는 달걀과 같은 얼굴보다 눈가며 입가에 엷은 미소와 함께 슬며시 번지는 인생의 깊이가 더욱 멋지다는 걸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살아온 삶에 대해 인생이 내려주는 훈장을 유산으로 잘 간직할 줄 안다면, 잠이든 젊음의 묘약이든 어떤 처방도 필요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진심 어린 존경도 동시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기사입력 2007.10.06 (토) 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