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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하고 정겨운…여전히 곡선 짓는 그 경계가 자못 경이롭다
"하얀 창 앞에/ 마구 피어 오르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다.// 바다 앞에/ 날리운 모닥불 같은 것으로/ 스스로 전율(戰慄)에 이어 온/ 사랑// 여기 아무도 반거(磻居)할 수 없는/ 하나의 지역에서/ 가을의 음향을 거두는 것이다." (임강빈의 '코스모스' 전문) 먼발치서 소백의 그림자가 가을의 음향과 더불어 점점 다가온다. 제 철을 만난 포도밭. 빗속에서도 활기차다. 송이들이 온전히도 주렁주렁 매달려 입안의 침샘을 자극한다. 시큼 달짝. "네 입술을 장난스럽게 깨물면/ 입 안에 가득 고이는/ 감미로운 후회같은 것./ 흑진주, 네 곤혹(困惑)의 눈빛을 피해서,/ 넝쿨 사이로 빠져나오면/ 짙은 방향(芳香)/ 어깨 너머로/ 앵도라진 눈을 모으네"(김후란의 '포도밭에서' 전문) 순흥면사무소에서 배점못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정표가 뚜렷하다. 배점못은 초암사와 성혈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초암사는 약 6㎞. 성혈사는 5㎞ 남짓. 길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곳곳에 좁은 길이 불쑥 나와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앵도라진 마음으로는 곤란하다. 마음이 풀어지면 하는 일이 가볍다고 했거늘. 하물며 절집을 찾는 마음이야. 오죽 풀어야 하련만. 간혹 삐뚠 마음이다 싶으면 지금 한창 웃는 들꽃으로 마음 치장하고 절로 들면 어떨까. 성혈사는 작은 고찰이다. 나한전의 꽃살문으로 꽤나 알려져 있다. 대웅(大雄)을 뵙고 나한전으로 발을 옮기면 떡하니 맞아 주는 저 꽃살문. 정면 3칸. 6짝의 문짝 가운데 중간의 두 짝이 특히 바래 보인다. 바래도 너무 바랬다. 색감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그런대도 희한하게도 화려하다는 느낌이다. 온갖 색깔들이 엉켜 화려한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읽히는 색깔 때문이다. 왜 그럴까. 세잔느는 "색채가 풍부해 질 때 형태도 풍부해 진다"고 했지만 이 꽃살문은 목질이 드러날 정도로 단청이 퇴색됐다. 역사도 역사려니와 그 옛날 단청을 입힐 때의 그 화려함이 새삼 떠올려진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곱고 아름답다. 그러다 끝내 화려하다. 다가가 찬찬히 들여다본다. 통판투조연지수금꽃살문이라는 이름도 있지만 너무 복잡하다. 조각된 그림들이 복잡하다고 이름까지 그렇게 복잡하게 부를 이유는 없다. 그저 투조된 연꽃 밭 문이라면 족할 것을. 널찍하고 활달한 연잎들이 군데군데 자리해 전체의 균형을 잡고 있다. 두툼한 입술 같다. 속세라면 앵 토라져 심술궂은 입술 모양이거나 섹시하게 보일 연잎이랄 수도 있지만 소백산 기슭에서는 전혀 그런 낌새가 없다. 연잎 사이로 재주 좋게 조각 된 온갖 동식물과 어패류. 학이 그려져 있고 소라가 부드럽게 몸체를 감아 도는 듯, 마치 슬그머니 움직이는 듯 살아 있다. 게는 어디로 엉금엉금 가는 길일까. 기러기, 물고기, 자라, 물총새 같기도 한 새며 옆 문짝에는 모란도 활짝 피어 우리를 반기는 모습이 전혀 무리가 없다. 선인이 훨훨 걸음도 가볍고, 만개한 연꽃은 또 어떻고. 연꽃 줄기를 만지작거리며 동자상은 명상의 시간을 기다리는 듯 여유롭다. 통나무로 어떻게 저런 형상들을 새겼을까. 그 곡선들. 자유자재로 새긴 선, 곡선들을 따라 가다보면 절로 꽃살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소곤거리듯.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는가. 성혈사의 꽃살문을 한동안 바라보면 누구나 저절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스스로와 이야기 하거나 문살과 이야기 하거나. 교천언심(交淺言深)이랄까. 사귄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서로 심중을 털어 놓고 이야기 한다는 전국책(戰國策)에 보이는 글귀다. 만난 지 불과 몇 십 분 만에 꽃살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숨 막히는 영광 아닌가. 그렇다고 뭐 큰 소리로 서로의 의중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톰프슨도 "집이 화염에 싸여 있지 않는 한 서로가 큰 소리로 이야기 하지 말아라"고 했다. 하물며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법당 문에서야 누군들 큰소리 칠 수 있으랴. 더욱이 꽃살문은 불전에 바치는 공화(供花)의 마음을 담고 있으니 작은 소린들 가당치 않으리라. 자꾸 자꾸 꽃 살 들을 살핀다. 여전히 곡선 짓는 그 경계가 자못 경이롭다. 민화적인 표현들에 더 호감이 간다. 곡선이 아름다운 학의 모가지가 그냥 쭉 직선으로 뻗었다면 재미가 없다. 민둥민둥 주위를 살피지 않는 듯 살피는 그 모습이 얼마나 희화적인가. 거기에다 모두가 순박한 서민들이 선호하는 동식물들이 많다. 그러니 비록 나무로 조각되었지만 어찌 정겹지 않을까. 그러니 꽃살문에서 살아 우리들에게 들려오는 온갖 이야기들은 올바르기 짝이 없는 민중의 소리 바로 그것이다. 민심의 소리, 양심의 소리 바로 그것이다. 요즘 많이 들어야 하는 그런 소리들이지만 요즘이 어디 그런 소리 듣기 쉬운 세상인가. 훌쩍 어디론가 떠나 버릴 것만 같은, 곡선이 잘 살아 움직이는 동자상도 그래서 자그맣게 조각되었지만 알게 모르게 굉장한 힘이 느껴진다. 연꽃에 내려앉으면 흔적도 없이 싸여 버릴 동자상이지만 가볍고도 연하지만 결코 대수로운 형상은 아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 예사로 봐야 할까. 아니면 엉거주춤 멋쩍은 포즈 다음에 오는 포즈를 기다려야 할까. 기다린다면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 그러나 퇴색 된 꽃살문은 여전히 나무 색 본래의 색깔로 지금도 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화려한 단청들은 다들 떠났건만. 성혈사 나한전의 꽃살문을 뒤로 하고 소백산을 내려오는 길은 더없이 고즈녁했다. 초암사 계곡과 복간터골 사이를 내려오는데 아른거리는 온갖 물고기와 게와 학이며 연꽃 밭. 그들이 소곤거리며 또 오늘 밤을 근사하게 보낼 것을 생각하니 부럽다. 그 소곤거리는 이야기이 매일 계속되지만 어쩐지 오늘은 부처님을 향한 애틋한 정들이 듬뿍 담긴 이야기들일 것 같아 더 부럽다. 내려오는 발걸음이 그래서 오늘 더 가벼운 것일까. 발걸음조차 유연한 곡선을 긋는 듯하다. 협찬:대구예술대학교 |
/김채한객원기자namukch@hanmail.net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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