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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線美感 .7] 역새

눌재 2009. 10. 20. 20:00

[曲線美感 .7] 역새
'은백색 물결' 하느적 사각 서걱거리며 수다스럽다
(제자: 一思 석용진)곡/선/미/감 3부·(7) 억새
바람이 분다. 가을 바람. 억새는 그 바람들을 싣느라 바쁘다. 한들한들. 서걱거리며 서로를 부딛는 소리. 가을 들녘. 그리고 산. 달성습지에서도 그랬다. 깃털 방울들이 모여서 그런지 뽀얗다. 학자들은 가득 매달린 털을 열매라 부르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꽃이라 부른다. 억새꽃. 늘씬한 줄기 겨드랑이 사이로 내민 그 꽃들은 예쁜 보자기를 포근하게 감싸 안은 술처럼 아늑하게 하늘로 퍼져 바람을 기다리거나 바람을 떠나보내거나 한다. 여전히 바람을 안고 있는 녀석들은 그저 좋아라 어쩔줄 모른다. 저희들대로 하느적 사각거리며.


"저토록 아름다운 물결을 보았는가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았는가/ 굽이굽이 산자락 굴헝을 넘어 유유자적 길 떠나는 모습/ 내를 이루어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았는가/ 분분한 세상 소리 소문 없이 바람의 발길 따라 몸을 사루는/ 속 살결 부드러운 물줄기를 보았는가/ 이부자락 펼친 듯 세상을 감싸며 넘실거려 흘러가는 비단 필의 물결/ 몸짓 황홀한 물줄기를 보았는가/ 수많은 발길 환호하며 달려와 호소해 갈구하는 사랑 둬 두고/ 기뻐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았는가/ 저 가을 억새밭을 보았는가"(윤홍조의 '가을 억새밭'전문)


가슴이 벅차진다. 햇살 좋은 날이 아니더라도 좋다. 가을 비 부스스 적시며 걷다 만난 억새풀이라도 좋다. 천황산, 재약산, 신불산, 취서산 사자평고원, 화왕산, 무등산 꼬막재, 지리산 고리봉서 만복대, 정령치로 이어지는 그 능선 길, 천관산 연대봉서 구정봉까지 십리길, 월출산 능선을 오르다 만난 억새밭이 아니더라도 좋다. 좋기만 하다. 하늘공원만 어디 장관이랴. 곧장 어둠을 불러들일 달성습지도 해가 뉘엿거릴 즈음. 억새풀들은 곳곳에서 좋다고 야단이다. 보는 이가 좋은지, 보여 지는 억새 그들이 좋은지 구별도 모호하다. 그러면서도 좋은 것을 어쩌란 말인가.


관심만 두면 지천이다. 참억새, 얼룩억새, 잎억새, 금빛이 돈다는 금억새. 밖으로 보기에는 뭐 그리 대단한 차이랴. 늘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연구로 유명한 이유미의 '한국의 야생화'에서 저자는 억새를 "이 땅의 어느 곳에서나 자라나 산딸기라도 따먹으려고 산길을 헤매는 시골 개구쟁이들의 꼬질꼬질한 종아리를 핥퀴곤 해도, 또 빳빳한 잎사귀가 날카로워 고분고분할 것 같지 않아도, 넉넉한 가을의 들녘을 마련해 주어 만나면 한 움큼 꺾어다 두고 싶은 식물"이라고 했다. 대단한 표현이다.


회초리 대신 억새가 핥퀸 꼬질꼬질한 종아리. 걷어 올린 그 종아리에 빳빳한 억새 잎사귀가 스쳐 부푼 자국에서 아이들은 자연을 익힌다. 강남의 유명하다는 학원에서 빳빳한 억새 잎사귀를 가르칠 리 없다. 하물며 그 잎사귀에 핥퀸 종아리가 있을 리 없지. 그저 빳빳한 점수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종아리가 매끄러운 가엾은 아이들. 그러니 자연을 알 리 있을까. 잉거솔은 "자연에는 보상도 처벌도 없다. 단지 결과만 있을 뿐이다"고 '몇가지 이유들'에서 언급했다. 강남의 교육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는지. 종아리가 꼬질꼬질한 아이들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글쎄.


이미 억새풀들은 그를 다정스럽게 바라보는 이들의 키를 훌쩍 넘어 서고 있었다. 바람에 묻어오는 찬 기운도 점점 드세다. 은백색 물결은 그럴수록 수다스럽다. 빗질한 듯 가지런한 녀석들이 힘 있게 빈 가을 공간을 휘젓는가 하면 흰 꽃들이 엉망으로 엉켜 밋밋하고 수더분하게 수군대는 모양새도 아름다울 뿐이다. 어찌 보면 마른 풀. 곱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곁에 있고, 가을 꽃들이 쟁쟁하게 피었지만 억새는 부러워 않는다. 그냥 풀이라는 듯. "풀--/ 너는 가을의 표정,/ 우거졌으나/ 성큼하여 휘파람같이 쓸쓸하고/ 발 아래 벌레 소리도 외따를 뿐이고나// 뚝 우엔/ 벙어리 된 가을 여신이/ 소적의 치마폭을 날리고 있다."(백국희의 '고적(孤寂)'). 그렇지만 어디 그냥 풀일까. 울란트는 "풀은 대지의 자랑이며 행복"이라고 하질 않았는가.


어떤 이는 억새를 일컬어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보다 먼저 일어선다고 했다. 바람이 없다면 억새는 어떨까. 일렁이지도 않을까. 곡선 없이 넙죽 싱겁기 짝이없게 서서 하늘만 쳐다볼까. 그것이 너무 싱거워 바람은 한오리 풀잎이나마 부여잡고 저렇게 부산을 떠는 것일까. "바람아 나는 알겠다/ 네 말을 나는 알겠다// 한사코 풀잎을 흔들고/ 또 나의 얼굴을 스쳐 가/ 하늘 끝에 우는/ 네 말을 나는 알겠다// 눈 감고 이렇게 등성이에 누우면/ 나의 영혼의 깊은 데까지 닿는 너/ 이 호호(浩浩)한 천지를 배경하고/ 나의 모나리자/ 어디에 어찌 안아 볼 길 없는 너// 바람아 나는 알겠다/ 한오리 풀잎나마 부여잡고 흐느끼는/ 네 말을 나는 정녕 알겠다"(유친환의 '바람에게').


바람. 가을바람 따라 고개를 돌리니 곳곳에 억새풀이다. 지천이다. 음악이 절로 떠오른다. 어떤 것이 제격일까. 억새풀과 어울리는 음악. 죠지 윈스턴의 솔로 피아노 '가을'은 어떨까. 나불거리는 억새에 비해 좀 너무 다듬어졌나? 애잔하게 가슴 후비는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은. 그보다는 블루지한 기타리스트 그랜트 그린의 'idle moments'는. 15분 짜리. 듀크 피어슨의 처연한 피아노에다 조 헨더슨의 황홀한 테너 색소폰이 억센 바람에 누워버린 억새풀들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충분히.


달성습지의 가을 저녁은 어느틈에 어둠을 가져 오고 있었다. 한가한 물새들이 그 모습을 감췄고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억새풀 고운 흰꽃들을 감춰버리는 시각. 억새는 그래도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며 바람에 따라 곡선으로 눕는다. 그러다 다른 바람에 질세라 부스스, 정말이지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 그러다 그리는 그런 곡선들이 너무 아름답다.


빗질한 듯 가지런한 녀석들이 힘 있게 빈 가을 공간을 휘젓는가 하면 흰 꽃들이 엉망으로 엉켜 밋밋하고 수더분하게 수군대는 모양새도 아름다울 뿐이다/ 가슴 벅차진다/ 햇살 좋은 날이 아니더라도 좋다/ 곧장 어둠을 불러들일 해질무렵 달성습지…

협찬: 대구예술대학교



/글=김채한 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사진= 포토피디 서태영 newspd@empal.com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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