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쿠바 아바나
음악과 춤이 출렁이는 ‘노인과 바다’의 무대
관련이슈 :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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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음악과 춤, 그리고 럼. 이 세 가지만 즐길 줄 안다면 오래도록 쿠바에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그들의 열정과 유쾌함을 사랑하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와 오래도록 쿠바가 그리울 것이다. 그래서 한번 더 쿠바를 찾았을 땐 온몸이 자유로워지면서 라틴 음악에 맞춰 온몸을 흔들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쿠바를 떠날 올 때쯤이면 한 손엔 럼 잔을, 또 한 손엔 시가를 들고 있는 내가 참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열정의 도시 아바나의 뜨거운 희망
캄캄한 밤. 아바나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센트로 아바나에 도착했을 땐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이미 알고 있긴 했으나 낡고 오래된 가난의 풍경과 지저분한 거리, 그리고 부드러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회주의의 기운. 더운 나라이지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스산함.
◇어느 거리에서든 노래하며 춤추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늘 함께 춤을 추자며 손을 붙잡는다.
첫째 날 밤엔 대성당 광장의 좁은 골목에 있는,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 속에서 밤늦도록 ‘모히토’를 마셨다. ‘모히또’는 럼에 허브를 넣어 만든 칵테일로 헤밍웨이가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 있다’라는 말을 남겨 여행객들이 찾아드는 곳.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밤에 취해간다.
다음날, 창밖으로 내다 본 쿠바 거리는 어느새 낯설지 않았다. 인사하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는, 마치 첫 대면에 먼저 웃으며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는 수다쟁이 여인 같았다. 지난밤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낯선 이방인을 소외시키지 않는 그들의 성품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길에 나서자 모두, 마치 아는 사람들처럼 손을 흔들었다.
◇카피톨리오 계단에 앉아 있으면 아바나의 삶이 한눈에 들어찬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선 음악과 춤과 럼 그리고 쿠바인들의 열정에 취한다.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네가 부러워. 우린 아무 데도 갈 수가 없거든.”
그때마다 미구겔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안 되겠는가, 어느 날 이탈리아 여인이 쿠바에 여행 왔다가 미구엘에게 한눈에 반하는 것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는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하게 흘러갈 것인가. 나는 미구겔의 희망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또 믿는다고, 그에게 말해주지 못한 걸 오래도록 후회했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만남, 그것이 내가 아바나를 좋아하게 된 두 번째 이유다.
어둠을 향해 파도치는 말레꼰 해변
말레콘 동쪽 끝의 지하터널을 지나자 모로성이다. 그곳을 지나면서부터는 나른한 바닷가 풍경이 이어진다. 그 중 한적한 어촌 마을인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를 제공한 곳. 고요한 바닷가엔 헤밍웨이의 흉상만 덩그러니 있는데, 그 곁을 지나가던 마을의 소년이 마치 ‘노인과 바다’ 속의 소년인 것처럼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것이 어느 먼 곳으로의 희망을 꿈꾸는 것만 같아 나는 얼른 고개 돌려 말레콘 해변으로 돌아왔다.
◇모로성을 지나면 그림 같은 한적한 해변이 끝없이 펼쳐진다.
아주 오래도록. 그것이 마치 하루일과의 마지막 순서라는 듯이. 열정적이지만 그 가슴에 고요를 품고, 왁자한 웃음 중에도 눈물을 품고 살아가는 쿠바인들의 삶이 그곳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나도 그들 곁에 앉아 어둠이 단단해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때 내 두 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하나는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그림자, 또 하나는 가만히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는 그림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두 개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아바나를 사랑하게 된 세 번째 이유다. 이 세 가지 이유는, 내가 아바나에서 즐기게 된 음악과 춤과 럼을 닮았다.
시인·여행작가
〉〉파르타가스 시가 공장
아바나 여행 내내 사람들이 등 뒤에 따라붙어 가짜 시가를 사라고 강요한다. 그들을 따라나섰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시가 공장에서는 정품 시가를 살 수도 있고 시가 만드는 과정을 견학할 수도 있다. 재밌는 것은 공장 직원들을 위해서 책 읽어주는 남자다. 그는 매일 다른 소설책들을 흥미진진하게 읽어준다. 4층이나 되는 공장 안의 사람들이 스피커를 통해 그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일하는 모습이야말로 정말 소설 같다.
- 기사입력 2009.12.10 (목) 22:56, 최종수정 2009.12.10 (목)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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