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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쿠바 아바나음악과 춤이 출렁이는 ‘노인과

눌재 2009. 12. 13. 02:40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쿠바 아바나
음악과 춤이 출렁이는 ‘노인과 바다’의 무대
  • 라틴 음악과 춤, 그리고 럼. 이 세 가지만 즐길 줄 안다면 오래도록 쿠바에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그들의 열정과 유쾌함을 사랑하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와 오래도록 쿠바가 그리울 것이다. 그래서 한번 더 쿠바를 찾았을 땐 온몸이 자유로워지면서 라틴 음악에 맞춰 온몸을 흔들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쿠바를 떠날 올 때쯤이면 한 손엔 럼 잔을, 또 한 손엔 시가를 들고 있는 내가 참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열정의 도시 아바나의 뜨거운 희망

    캄캄한 밤. 아바나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센트로 아바나에 도착했을 땐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이미 알고 있긴 했으나 낡고 오래된 가난의 풍경과 지저분한 거리, 그리고 부드러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회주의의 기운. 더운 나라이지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스산함. 

    ◇어느 거리에서든 노래하며 춤추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늘 함께 춤을 추자며 손을 붙잡는다.
    그러나 친절한 숙소 주인을 만나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거리로 나와 골목을 하나 돌았을 때, 무장 해제됐다. 늦은 밤, 길에 나와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춤추는 아이들. 그들은 내가 지켜보고 있자 부끄러워하면서도 다가와 손을 붙잡고는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하는 이들, 놀랍고도 정겨웠다. 그리고 골목을 하나 더 돌아 대성당 광장에 도착했을 땐 여기저기서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아바나를 사랑하게 된 첫 번째 이유다. 어디서든 누구든 손 붙잡으며 함께 춤을 추자고 하는 쿠바인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리듬을 타는 엉덩이들 틈에 끼어 춤이라곤 춰보지도 않은 막대기 같은 몸을 생에 처음으로 움직였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첫째 날 밤엔 대성당 광장의 좁은 골목에 있는,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 속에서 밤늦도록 ‘모히토’를 마셨다. ‘모히또’는 럼에 허브를 넣어 만든 칵테일로 헤밍웨이가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 있다’라는 말을 남겨 여행객들이 찾아드는 곳.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밤에 취해간다.

    다음날, 창밖으로 내다 본 쿠바 거리는 어느새 낯설지 않았다. 인사하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는, 마치 첫 대면에 먼저 웃으며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는 수다쟁이 여인 같았다. 지난밤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낯선 이방인을 소외시키지 않는 그들의 성품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길에 나서자 모두, 마치 아는 사람들처럼 손을 흔들었다.

    ◇카피톨리오 계단에 앉아 있으면 아바나의 삶이 한눈에 들어찬다.
    아바나에선 곧잘 길을 잃는다. 카피톨리오와 대극장을 지나 중앙 공원을 지나 대성당으로 가는 동안 그리고 아르마스 광장을 찾는 동안, 그 수많은 골목을 걸으며 길을 잃고 또 잃었다. 그러나 문제될 것은 없었다. 골목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그 어느 풍경보다 정겨웠으니까. 어느 골목에선 계단 아래에 주저앉아 있는 미구겔이란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아바나에 머무는 동안 몇 차례 그를 마주쳤는데, 그는 늘 이탈리아어학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도 안 하고 하루에 열두 시간씩 공부한다는 미구겔은 내게, 이탈리아에 가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결혼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구겔은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쿠바인. 게다가 그건 그저 미구겔의 꿈일 뿐이지 현실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선 음악과 춤과 럼 그리고 쿠바인들의 열정에 취한다.
    미구겔은 자신이 언제쯤 이탈리아에 가게 될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갈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다. 그가 어떤 이유로 이탈리아를 꿈꾸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쿠바를 여행하며 많은 젊은이를 만날 때마다 그들은 말했다.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네가 부러워. 우린 아무 데도 갈 수가 없거든.”

    그때마다 미구겔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안 되겠는가, 어느 날 이탈리아 여인이 쿠바에 여행 왔다가 미구엘에게 한눈에 반하는 것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는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하게 흘러갈 것인가. 나는 미구겔의 희망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또 믿는다고, 그에게 말해주지 못한 걸 오래도록 후회했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만남, 그것이 내가 아바나를 좋아하게 된 두 번째 이유다.

    어둠을 향해 파도치는 말레꼰 해변

    말레콘 동쪽 끝의 지하터널을 지나자 모로성이다. 그곳을 지나면서부터는 나른한 바닷가 풍경이 이어진다. 그 중 한적한 어촌 마을인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를 제공한 곳. 고요한 바닷가엔 헤밍웨이의 흉상만 덩그러니 있는데, 그 곁을 지나가던 마을의 소년이 마치 ‘노인과 바다’ 속의 소년인 것처럼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것이 어느 먼 곳으로의 희망을 꿈꾸는 것만 같아 나는 얼른 고개 돌려 말레콘 해변으로 돌아왔다.

    ◇모로성을 지나면 그림 같은 한적한 해변이 끝없이 펼쳐진다.
    저녁,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말레콘 해변에서 아바나 사람들은 하염없이 해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무엇을 하기 위한 것도 누구를 만나자는 것도 아니다. 오후 내내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던 사람들도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도 돌아간 자리에서 젊은이들은 럼을 마시며 춤을 추고 연인들은 키스를 나누고 노인들은 말없이 바다만 바라본다,

    아주 오래도록. 그것이 마치 하루일과의 마지막 순서라는 듯이. 열정적이지만 그 가슴에 고요를 품고, 왁자한 웃음 중에도 눈물을 품고 살아가는 쿠바인들의 삶이 그곳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나도 그들 곁에 앉아 어둠이 단단해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때 내 두 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하나는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그림자, 또 하나는 가만히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는 그림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두 개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아바나를 사랑하게 된 세 번째 이유다. 이 세 가지 이유는, 내가 아바나에서 즐기게 된 음악과 춤과 럼을 닮았다.

    시인·여행작가

    〉〉파르타가스 시가 공장

    아바나 여행 내내 사람들이 등 뒤에 따라붙어 가짜 시가를 사라고 강요한다. 그들을 따라나섰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시가 공장에서는 정품 시가를 살 수도 있고 시가 만드는 과정을 견학할 수도 있다. 재밌는 것은 공장 직원들을 위해서 책 읽어주는 남자다. 그는 매일 다른 소설책들을 흥미진진하게 읽어준다. 4층이나 되는 공장 안의 사람들이 스피커를 통해 그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일하는 모습이야말로 정말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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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9.12.10 (목) 22:56, 최종수정 2009.12.10 (목) 2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