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월]서양화가 장태묵(하) 채우기보다 어려운 건 ‘비우는 공부’ 기교`기술 버리고서야 진정한 그림 | ||||||||||
“어릴 땐 기술로, 기교로 그리는 줄 알았어요. 나이 들어서야 영혼과 가슴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알게 되는데, 그걸 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다른 문제, 그러니까 깨달음과 비슷한 문제입니다.” 그는 기교와 기술을 버리고 나서야 진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람이 부는 들판, 흔들리는 나무, 발이 젖는 물 그러니까 ‘살아있는 그림’ 말이다. 자작나무와 풀, 물을 그리는 화가 장태묵은 여태 조직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줄곧 그림만 그렸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떠나고 싶을 때 언제라도 훌쩍 떠난다고 했다. 온다 가다 말도 없고, 휴대전화도 꺼버린다. 그래서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답답할 수 있다. 그러나 장태묵은 ‘얽매이지 않고 떠나는 것은 자신이 받아야 할 보상이자 치러야 할 의무’라고 했다. “화가는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니, 늘 새로운 게 눈에 들어옵니다. 다 같은 물밑 그림 같지만, 제 그림의 물밑은 모두 다릅니다. 나는 그 다름을 알고, 그 다름을 받아들여 드러내야 합니다. 내 심상의 눈에 보이는데, 내 심상의 눈이 본 대로 그려내지 못할 때 화가는 고통스럽습니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때 내 마음이 본 것을 그릴 수 있습니다.” 조직생활을 거부한 탓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 당시에는 그게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리는 것이지, 입상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는 2001년 늦은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30번 개인전을 했다. 모두 초대전이었다. 장태묵은 화가에게 가장 값진 것은 수상이 아니라 개인전이라고 했다. 미국전시, 일본전시 등 다양한 해외전시도 했지만 어디서 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화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술의 본질 즉, 대중과 공감이라고 했다. “작가주의에 집착하는 예술가들이 많은데, 그림은 혼자 보려고 그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내 그림 속에 담긴 내 철학을 남들이 알아줄 때이겠지요. 그럴 때는 정말 행복합니다. 하지만 몰라줘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 그림을 통해서 관객이 본인 삶의 한 부분, 자기 철학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이 내 그림에서 그의 철학도, 나의 철학도 알 수 없다면 아쉽지요.” 장태묵은 예술이 은둔적 가치, 신비주의를 높이 사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그 역시 대학시절 ‘작가주의’ 그림을 그렸다. 대중이 알든 모르든 자기만의 그림을 그렸다. 홍대 재학시절 동기들 중에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작가는 자신의 눈을 가져야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화가는 통찰력과 창의적 충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표현들을 통해서 관객은 또 다른 통찰과 창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10년 02월 0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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