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홍콩, 골목골목마다 눈요기·입요기 거리 천국
홍콩은 언제든 누군가와 스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또다시 어디서든 그를 마주칠 것만 같은 곳이다
또다시 어디서든 그를 마주칠 것만 같은 곳이다
관련이슈 :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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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첨밀밀’에서 여명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침사추이의 캔턴로드, ‘중경삼림’에서 임청하가 레인코트를 입고 들어서던 ‘청킹맨션’과 왕정문이 ‘마마스앤파파스’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던 란콰이펑의 패스트푸드점인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아비정전’의 장국영이 앉아 있던 코즈웨이베이 거리의 ‘퀸스 카페’,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이 마주 앉아 저녁을 먹던 ‘골드핀치 레스토랑’. 홍콩영화에 흠뻑 빠져 지내던 여고 시절, 영화 속 주인공은 설렘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살고 있는 홍콩이란 곳이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영화를 찍은 장소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홍콩에선 영화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사랑이 불현듯 내게 찾아오듯 영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위로를 선물해 주는 골목들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건물과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창문들, 좁은 길을 누비는 이층버스와 낡은 트램과 빨간 택시들, 그리고 그 간극까지도 메워 버리는 부산한 사람들. 그래서 홍콩은 언제든 누군가와 스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또다시 어디서든 그를 마주칠 것만 같은 곳이다. 설레고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늦은밤까지도 잠 못 드는 곳이다.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홍콩에선 모든 것이 높고 촘촘하다. 건물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 높다랗게 솟아 있고 창문들은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이층버스와 이층트램(노면전차)이 모든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우리나라 인사동이나 황학동 같은 캐츠로드는 추억의 거리다. 간단한 기념품을 사기에도 좋고 이소룡을 비롯한 왕년의 스타들 사진 구경도 쏠쏠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정감 있는 곳은 우리나라 황학동처럼 골동품을 파는 캐츠로드다. 그다지 길지도 않은 이 길에선 추억의 사진들이나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이소룡을 비롯한 옛날 배우들의 낡은 사진들, 전통 장신구들, 오래된 가구들. 그 길에서 낡은 의자를 고치고 있는 골동품 가게 주인을 만났다. 곁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의자 고치는 걸 바라보고 있는 내게 그는 말했다.
“이 의자는 팔지 않아요.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쓰고 있는 의자거든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대도 팔 수 없어요.”
이것저것 사가라고 손을 붙잡는 상인들과는 달랐다. 돈이 된다면 뭐든 훔쳐다가 팔아 치우려 드는 골동품상 주인들과도 달랐다. 출세를 위해 양심도 팔아버리는 사람들이 아등바등대는,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감정도 필요에 의해선 지워버리는 세상. 배신이 너무도 흔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혈육도 끊고 사는 세상에,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집안에서 내려오고 있는 의자는 팔지 않겠다며 다문 그의 다부진 입매가 믿음직해 보였다. 세상의 모든 골동품 가게 주인들이 다 그처럼 추억에 값을 매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래도록 추억의 골목을 거닐었다. 그 의자를 처음 사거나 만들었을 그의 선조를 떠올리면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믿음의 물건들
만모 사원(文武廟)에서 내 또래의 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가방에서 빨간 사과 한 알을 당당하게 꺼내 시주로 놓더니 향을 한 움큼 움켜쥐고는 오래도록 기도를 했다. 손에 쥔 것이 너무 적고 보잘 것 없다고 늘 돌아서거나 포기해 버리는 나와는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듯 보이는 사과 한 알이 그토록 커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처럼 마음으로 바치는 사과 한 알이라면, 세상의 어떤 신이든 그녀의 소원을 다 들어줄 것만 같았다. 기도란 그런 것이 아닐까,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의 다짐,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약속의 다짐. 그것이 우리가 기도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그러니 단 위에 올리는 것이 커다란 금붙이든 사과 한 알이든 상관없이 믿음의 문제가 아닐까.
◇구룡반도 몽콕엔 홍콩 사람들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꽃과 새와 금붕어 시장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금붕어가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늘 금붕어를 바라보며 그들을 기분 좋게 하고 노력하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늘 지니고 다니면서 위안을 받게 되는 그런 소중한 물건들처럼 말이다. 그러니 누구든 자기만의 물건들을 지니는 게 아닐까. 약속의 반지를 나눠 끼고 추억의 물건을 선물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은 팔지 않는 게 아닐까. 값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담긴 믿음의 물건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니까. 새를 사들고 가는 한 할아버지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미 소원을 다 이루기라도 한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꽃 시장에서 장미를 한 송이 샀다. 그리고 사원으로 들어가 단 위에 그 꽃을 올리고 오래도록 기도했다. 사원을 나올 땐 내 모든 바람들이 다 이뤄지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그러고는 홍콩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란콰이펑의 아름다운 밤 속으로 스며들었다. 라이브 음악과 맥주와 웃음소리로 꽉 찬 그곳에서 흔들리는 영혼들과 만나 잔을 부딪쳤다. 홍콩의 밤은 술에 취해 몸을 흔들기에 좋으니까. 그렇게 신나게 웃고 소리치며 서로 행운을 빌어주기에 더없이 좋은 밤이니까.
시인·여행작가
〉〉 홍콩에서 꼭 먹어봐야 할 디저트
◇‘타이청 베이커리’의 에그타르트는 홍콩 여행 중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음식이다. ◇홍콩 사람들이 디저트로 즐겨먹는 금붕어 모양의 망고 푸딩.
■망고 푸딩=침사추이에 있는 미라마 쇼핑센터 6층의 ‘하카훗’ 식당은 맛있는 딤썸과 망고 푸딩으로 유명하다. 두 시부터 네 시 사이에 가면 모든 것이 반값이다. 맛도 가격도 만족스러워서 기분이 좋아지는데 디저트로 먹는 망고 푸딩이 그 즐거움을 배가시킨다기사입력 2010.02.18 (목) 21:37, 최종수정 2010.02.18 (목)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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